[2024 신춘문예] 벽

추성은 2024. 1.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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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당선작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까운 음악이고

아마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이라는 제목일 것이고

새장으로 돌아가라고……

아마 그런 의미겠지

연인은 나 죽으면 새 모이로 던져주라고 한다

나는 알이 다 벗겨진 옥수수를 손으로 쥔다

쥐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컵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

노래도 아니고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도 아니고

진화한 새라는 것

위구르족의 시체라는 사실도

새의 진화는 컵의 형태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사람이 잡기 쉬운 모습이 되겠지

손잡이도 달리고 언제든 팔 수 있고 쥘 수도 있게

새는 토마토도 아니고 돌도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갈 것이다*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건 어디서 들어본 노래 같고 나는 창가에 기대서 바깥을 본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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