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자유무역 시대와의 기약없는 이별
과거와 달리 타협 어려워 무역 갈등은 더 거칠어질 듯
1985년 9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경제·산업계 주요 인사들을 백악관에 초대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G5(주요 5국) 재무장관들이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는 ‘플라자 합의’를 맺은 다음 날이었다.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던 레이건은 이날 자신의 무역 철학을 꽤 소상히 밝혔다. 그는 자유무역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면서도 “자유무역은 ‘공정한 무역’이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나라가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그 기업이 해외에 덤핑할 수 있도록 하거나 미국 제품을 위조·복제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라고 했다. 그건 “우리 미래를 훔치는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는 산업 경쟁력 약화에도 원인이 있지만 비관세 장벽 등 다른 나라의 불공정 행태가 주범이라고 레이건은 봤다. 해결책을 놓고 협상국 간 갈등도 있었지만 상황은 지금보다 나았다. 고민을 털어놓고 머리를 맞댈 수 있는, 협상 가능하고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자유무역을 향해 더 전진했다.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이론 체계를 완성했고, 곡물법 폐지(1846년)로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자유무역은 21세기 들어 만개했다. 1991년 소련 붕괴에 이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화룡점정이었다. 지구촌은 하나로 묶였고 풍요로워졌다. 리카도 자유무역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이런 분위기는 20년도 안 돼 급변했다. 2016년 미 대선을 기점으로 인정사정 안 봐주는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이 부상했다. 몇 년이 지났어도 상황은 악화 일로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은 물론이고, 일본·인도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정부 지원금이 기업에 쏟아진다. 과거와 다른 건 대화와 타협이 어렵다는 점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진영이 생존을 놓고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격변이 트럼프 탓이란 주장도 있지만 근원적 분석은 아니다. 미 대통령이 바뀌어도, 인류에게 공포를 줬던 코로나 팬데믹이 물러가도 보호무역 경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중국 국가자본주의가 몰고 온 분노와 불안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이 글로벌 자유무역을 악용, 각국의 산업과 기업, 시장을 장악하고 무너뜨려왔다는 것이다. 트럼프 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자유무역 어젠다가 지배했던 지난 20여 년은 역사적 비정상 상태였다”고 했다. 문제는 앞으로 중국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화공상시보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전체 민간 기업 중 공산당 조직이 설립된 곳은 27.4%였는데, 2018년 48.3%까지 늘었다.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동안 공산당의 기업 지배는 더욱 강화됐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2018년 말 ‘중국공산당지부공작조례’를 발표했다. 기업 등 모든 조직에 공산당원이 3명 이상일 경우, 당 지부를 설립하라는 내용이다. 최근 통화한 한 중국 전문가는 “지금은 거의 모든 기업에 당 조직이 들어섰을 것”이라고 했다. 남방도시보는 “2021년 현재 텐센트 직원 6만명 중 1만명 이상이 공산당원”이라며 “회사엔 14개 당 총지부, 275개의 당 지부가 있다”고 했다.
자유무역의 기본 철학은 정부가 기업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와 당과 기업이 한 몸”인 중국 체제와는 양립이 어렵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식 현대화’를 강조한 데서 보듯 공산당 독재의 중국이 기업 지배를 포기하는 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뜻 맞는 국가끼리 협력은 가능해도 지구촌 전역에 자유무역이 다시 꽃피는 시대는 기약 없는 먼 미래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변하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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