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배꼽이 사라졌다

김아름 2024. 1. 1.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화 당선작
일러스트=박상훈

아침에 일어나보니 배꼽이 사라졌다. 세수를 하고 잠옷을 벗었는데 배 한가운데가 밋밋했다. 순간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왜? 무슨 일이야?” 욕실에서 씻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배, 배… 꼽이…….”

“뭐 꼽등이가 있다고? 지금 아빠 바빠서 이따 잡아줄게.”

아빠는 요즘 회사 프로젝트 때문에 잠이 부족하다. 어젯밤 회사 동료와 통화하는 것을 엿들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빠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다. 아빠는 분유와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다. 나를 키우면서 일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을 아빠. 그런 아빠가 출근 전에 충격을 받으면 일을 제대로 못 할 거고, 그러면 승진도 못 할 테고, 당연히 재혼도 미뤄질 거다. 아빠가 어서 빨리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재혼했으면 좋겠다. 그래, 배꼽이 사라진 사실을 비밀로 하자.

“먼저 출근하세요. 저는 숙제를 깜박해서 얼른 하고 학교 갈게요.”

“너는 열두 살이나 됐으면서 그런 걸 깜박하냐? 달력에 꼼꼼히 쓰라니까. 꼼꼼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아빠 먼저 간다.”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말을 검은색, 진회색 짝짝이로 신고 나갔다. 이제 어쩌지? 약상자에서 밴드를 찾아서 배꼽이 있던 부위에 붙였다. 밴드는 접착력이 없어서 금방 떨어졌다.

두 손을 들어 만세를 해보았다. 허옇게 드러나는 배 한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 마치 수염 없는 고양이 같다. 고양이에게 수염은 없어서 안 될 중요한 건데 나는 쓸모없는 배꼽이라니……. 그 쓸모없는 배꼽이 사라졌는데도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사라진 배꼽을 꼭꼭 숨기려고 긴 티셔츠를 입었다. 바지 안에 티셔츠를 넣고 일부러 벨트까지 잠갔다.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내 배만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짝꿍인 마예지가 나의 옷차림새와 표정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요즘 미술학원에서 관찰하는 법을 배운다더니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샅샅이 나를 관찰했다.

“너 그 벨트는 뭐냐?”

마예지가 말하자 뒤에 앉은 재영이도 덧붙였다.

“민준이 우리 아빠랑 옷 입는 게 똑같네.”

“살 빠져서 그래. 신경 쓰지 마.”

나는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의심받지 않으려고 그랬는데 아이들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조심해야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1교시부터 체육이라니…….

통통통. 강당 구석에서 눈에 띄지 않게 농구공만 튕겼다. 선생님께서 슛 연습을 하라고 하셨지만 레이업슛도 삼점슛도 하지 않았다. 재영이와 패스 연습과 드리블 연습만 했다.

“자, 이제 슛도 해봐. 시작!”

슛을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건만. 마예지가 등 뒤에서 갑자기 떠미는 바람에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얄미운 마예지…….

선생님께서 슛 잘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틈을 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얼른 농구공을 던졌다.

“김민준! 너 배꼽이…….”

골대 밑에서 마예지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내 배를 가리켰다. 분명 내 뒤에 있었는데 언제 골대 쪽으로 간 거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나는 황급히 예지의 입을 막았다. 왼손 검지를 들어 비밀로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자 예지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눈꼬리를 반달로 만들며 씨익 웃었다.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이 말이다.

“너희 둘이 연애하니?”

재영이가 짓궂게 놀려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지를 강당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진짜 봤어?”

“어떻게 배에 배꼽이 없어? 어쩐지 아침부터 수상하더라니.”

역시 마예지는 끈질기다. 전에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도 내 지우개를 전부 따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자고 일어나니까 없어졌어. 이따 양호실 가서 물어보려고.”

“양호 선생님이라고 별수 있니? 배꼽이 없어졌다고 하면 인체 실험 당할걸?”

순간, 내가 어느 연구소에서 손발이 꽁꽁 묶인 채 파란색 액체가 든 주사를 맞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끔찍하다.

“배꼽 스티커 우리 동네 문방구에 팔아. 그거 붙여.”

“그런 게 있다고?”

“물 묻혀서 붙이는 타투야. 요즘 다리 길어 보이려는 여자들이 배꼽 위에 붙이고 크롭티 입잖아.”

학교가 끝나고 예지를 따라서 문방구에 갔다.

“배꼽 스티커 다 팔렸다. 다음 주에 들어와. 너도 댄스 대회 나가니?”

주인 아저씨가 말했다. 실망한 나는 멍하니 필기구 진열대를 보다가 말했다.

“그냥 그릴까?”

“그래, 너 그림 잘 그리잖아! 일단 그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 하마터면 예지의 손을 잡고 방방 뛸 뻔했다.

“그런데 뭐로 그려? 너 물감 있어?”

“물감은 다 지워지지. 바보야? 내가 만화 그릴 때 쓰는 사인펜 빌려줄게. 물에 안 지워져. 좀 비싼 건데, 짝꿍이니까 특별히 빌려준다.”

웹툰 작가가 꿈인 예지는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더 잘 그린다. 나도 미술학원에 가고 싶지만 차마 아빠한테 말하지 못했다. 아빠는 항상 바쁘니까.

예지와 은행나무 둥치로 갔다. 이 은행나무는 오백 년 된 보호수다. 왠지 이곳에 오면 신비한 기분이 든다.

“너 손거울 있어?”

“한 번 빌리는데 오백 원.”

은행나무 뒤에서 예지의 손거울로 배를 보면서 배꼽을 쓱쓱 그렸다. 혹시라도 누가 올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망 잘 보고 있지?”

“걱정 마. 김민준, 근데 그 사인펜 딱 봐도 고급스럽지 않냐? 그거 이탈리아에서 만든 거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 알지?”

예지는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쫑알쫑알 떠들어 댔다. 그 목소리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배꼽을 그려 넣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다 했어?”

“아직.”

“너 근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해부학이랑 수학, 과학, 건축학, 또 뭐지?”

“천문학, 음악.”

“그래, 그걸 다 잘하던 천재였던 건 알아? 레오나르도 다빈치랑 그 라이벌 조각가 누구였더라?”

“미켈란젤로.”

“맞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는데 미켈란젤로가…….”

예지는 신이 나서 누구나 아는 지식을 한참 동안 쏟아냈다. 그림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다 알게 되는 내용인데 목도 안 아프나?

“다 했어?”

“거의 다 했어.”

“너 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다. 다빈치가 그림 그리는 데 오래 걸렸다잖아. 오래 걸린 만큼 완벽했대. 너도 혹시 완벽주의자 뭐 그런 거야?”

“다 했어.”

“봐봐.”

보여줘야 하나? 진짜 내 배꼽도 아닌데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도 티가 나는지, 안 나는지 궁금해서 꾹 참고 보여줬다.

“야, 진짜 같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의 인사는 크림빵 하나면 됐고, 그나저나 배꼽은 언제 찾을 건데?”

“뭐? 그걸 어디서 찾아?”

“그거야, 나도 모르지. 너 어제 뭔 일 있었어? 배꼽 빠지도록 웃었다거나 배꼽에 연고 같은 거라도 발랐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피가 날 정도로 배꼽을 팠다거나.”

‘유머 교실’이라는 책을 읽고 조금밖에 안 웃었는데. 혹시 밤에 자는 동안 아빠가 내 배꼽에 뭘 발랐나? 나는 가짜 배꼽을 엄지로 쓱 문질러 봤다. 정말 번지거나 지워지지 않았다. 침을 발라 봤지만 끄떡없다.

“김민준, 사실 나도 그런 적 있어. 왼발 새끼발톱이 완전히 빠졌었거든. 자고 일어나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다니까?”

“그래도 발톱은 열 개 중에 하나니까 배꼽보다 티가 안 났을 거 아니야?”

“어머, 어머 얘 봐라? 새끼발톱도 진짜 중요한 부위야.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배꼽이 도망간 거야.”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어쨌든 집으로 빨리 가서 배꼽을 찾거나 다시 생겨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예지가 따라왔다. 언제까지 따라오는 거지?

“너 집에 엄마 계셔?”

“아니, 그건 왜 물어봐?”

“우유라도 한잔 얻어 마시려고 했지. 크림빵 먹을 때 목 막히니까.”

마예지가 너무 귀찮다. 하루 종일 배꼽을 숨기느라 피곤해서 말이 툭 나왔다.

“우리 엄마는 나 태어날 때 돌아가셨어.”

참새처럼 떠들던 예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슬쩍 보니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니?”

예지는 주저앉았다. 울어야 하는 건 난데.

“사과해!”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사람도 난데……. 여자의 마음을 진짜 모르겠다.

“미안. 난 그냥 사실을 말한 거야.”

“그렇게 말해서 나 나쁜 사람 만들려고?”

“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말한 건데…….”

“거짓말 하지 마.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잖아!”

예지는 노려보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작게 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괜찮은 척 했는데 가짜였어. 엄마 아빠 헤어지고 씩씩한 척, 별일 아닌 척 다 해봤는데 그건 다 거짓말이었다고. 너도 알잖아, 내가 네 지우개도 다 땄지만 뻥 뚫린 마음에는 소용없다는 거.”

우는 예지를 두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띠딩. 핸드폰으로 아빠에게 메시지가 왔다. 회식이 취소되어서 집에 빨리 올 수 있다고, 꼽등이 바로 잡아주겠다고.

사실 어제 아빠와 통화했던 회사 동료는 어떤 아주머니였다. 요즘 들어 자주 통화하는 것 같았다. 누구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늘 아빠에게 괜찮다는 말만 하고 지냈다. 아빠가 학부모 공개 수업을 못 올 거 같다고 했을 때도 괜찮다고 했고, 바빠서 명절에 할머니 댁에 못 갈 거 같다고 했을 때도 괜찮다고 했다. 집에 엄마 사진이 없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괜찮지 않았다. 나는 늘 솔직하지 못했다.

갑자기 기억에도 없는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 배 속에서 살던 시절, 참 따뜻하고 포근했을 텐데…….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새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울 엄마가 그랬어.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운다고. 태어났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너한테는 그게 지금인가 보네.”

예지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나는 창피해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남자가 네 번도 열 번도 울 수 있어.”

“그거야, 그렇지 뭐. 사실 난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완전히 남남이 된 다음 날에 새끼발톱이 사라졌어. 너만 알아라.”

아무런 쓸모없는 배꼽이 사라진 게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안 씻으면 때나 껴서 냄새 나고, 생긴 것도 주름만 많은 구멍이니까. 있거나 말거나 이제 될 대로 되라지.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이 평소보다 고요하게 느껴졌다. 비밀 일기장을 열쇠로 열어보았다. 엄마의 증명사진이 보인다. 어제 아빠 서재의 서랍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다. 왜 집에 엄마 사진이 한 장도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진은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엄마의 증명사진을 발견하고 배꼽 주변이 간지러워서 몇 번 긁은 거 같은데?

여섯 시 반이 되자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발가락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아빠 이 사진 엄마 맞아요?”

“이게 왜 여깄지? 맞아. 아빠가 너무 슬퍼서 엄마 사진을 다 버렸단다. 한 장이 남아 있었나 보네.”

아빠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쁘다, 우리 엄마.”

“그렇지? 네가 엄마 닮아서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거야. 엄마가 널 낳느라 더 빨리 별이 되었어.”

“저 사실은… 배꼽이 사라졌어요.”

“그래, 네가 아기 때부터 배꼽만 좋아했어. 동화책 볼 때도 배꼽 나오는 장면에서 까르르 웃고, 배꼽 숨겼다가 드러내는 까꿍 놀이도 가장 많이 했지. 마치 엄마를 기억하려는 듯.”

성교육 시간이었나? 탯줄은 아기와 엄마를 이어주는 사랑의 끈이라고 했다. 그래, 배꼽은 그걸 평생 기억하라고 하느님이 그려 주신 선물이다. 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보다. 배꼽만 좋아했다고 하니까.

“아빠 저 진짜로 배꼽이 사라졌다고요.”

벨트를 풀고 셔츠를 휙 올렸다.

“너 왜 배꼽이 두 개씩이나 있냐?”

“어라? 언제 돌아왔지?”

아빠는 내가 그린 배꼽과 진짜 내 배꼽을 보고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나는 억울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말했다. 아빠는 내 어깨에 붙은 샛노란 은행잎을 떼어주며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마예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연필을 들고 하고 싶은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썼다. 오백 년 된 은행나무에서 떨어져 나를 따라온 은행잎도 편지에 꼭꼭 붙여야지.

“아빠 주말에 엄마한테 가볼 수 있어요?”

나는 처음으로 엄마를 보러 가자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도 나도 슬퍼질까 봐 지금까지 꺼내지 않은 말이었다.

“이번 주말에 아빠 등산 간다고 했었지? 취소해 볼게. 잠깐만.”

“아빠랑 매일 전화하던 그분도 같이 가요.”

“알고 있었어?”

“엄마 계신 곳 주변에 큰 산이 보이는 멋진 카페도 있다면서요. 거기 셋이 가면 좋겠어요.”

“그, 그럴까! 알았어. 지금 연락해 볼게.”

아빠가 통화 버튼을 누르는 동안 나는 엄마가 계신 곳을 생각했다. 그곳에 가면 그동안 한 번도 못 한 말을 꼭 해볼 거다.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아참! 배꼽인사도 잊지 말아야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