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속도’가 소멸시킨 것들 살피며 기술문화·미술의 접속점 정확히 짚어내
올해 응모된 미술비평 중 가장 많은 분야는 개별 작가론으로, 거의 50%를 차지했다. 작가론은 통일된 내용 전개가 가능하지만, 왜 그 작가인지에 대한 객관적 맥락이 부각돼야 하므로, 미술계에 대한 더 거시적인 조망이 요구된다. 이중섭, 김환기, 방혜자, 장우성같이 근대 미술사의 반열에 오른 작가는 물론, 양혜규같이 세계 현대미술의 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다소간 생소한 작가나 외국 작가는 말할 나위도 없다. 만약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면, 색다른 해석이 추가돼야 한다. 한 작가에 대한 비평은 결정적인 한 번이 아니라 매번 갱신되는 것이다. 올해 응모작 중 드가에 대한 평문은 ‘아직도’ 중요한 회화의 가능성을 가독성 있는 뛰어난 문체로 해명했지만, 미술사나 미학, 학계와 현장 간의 역할 분담을 고려했다. 미술비평은 지금 여기에서 진행 중인 작가, 작품, 현상에 대한 분석을 우선시한다. 한 작가를 연구할수록 그를 규정하는 ‘이즘’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중요한 작가일수록 분류 불가능한 다양한 실험을 해왔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그 작가만이 중요하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객관성을 흐리는 요인이다. 한 해에도 수많은 전시가 열리고, 그중 소수만 비평적 조명을 받는다. 한국의 미술계에서 비평가는 결코 권력자가 아니지만, 비평은 그 자체가 특정 작가나 전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담론은 권력이다. 올해 공모 평문에서 미술계를 조망하는 여러 현상을 다룬 것으로, 공공 영역, 온라인, 아카이브 등을 장으로 한 미술문화 현상에 대한 비평이 있었다. 공예와 현대, 또는 현대미술의 관계를 다룬 논쟁적인 평문, 비평 그 자체에 대해 메타적인 차원의 비평도 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현상을 다루는 문제이다 보니 필자의 입장이나 세계관 등을 장황하게 논하면서, 정작 본론 부분이 많이 침식된 점이 아쉬웠다. 개별 분석으로 바로 들어가도 어차피 입장은 드러나기 마련이므로 논의의 효율적 전개가 중요하다. 당선작인 ‘질주하는 세계, 그럼에도 지금 여기 ‘있는’ 몸’은 근대 이후 가속도가 붙은 현실을 폴 비릴리오의 이론을 활용하여 속도가 소멸시킨 것들, 그중에서 몸에 준 영향을 살피면서 당대의 지배적인 기술 문화와 미술의 접속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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