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 셀프 보상에 중독… 고통 마주해야 행복해져”
“기쁨 위해 스스로에게 준 보상
술-SNS-쇼핑 중독 등 이어져”
“우리 주변 모든 것이 중독성을 갖도록 설계돼 있어요. 소비가 쉬워진 풍요의 시대인 동시에 누구나 나쁜 습관과 중독에 빠지기 쉬운 시대인 거죠.”
국내에서도 화제인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도파민네이션’을 쓴 렘키 교수는 25년여 동안 중독 환자를 치료해 왔다. 중독 양상은 최근 소셜미디어나 쇼핑, 게임, ‘언박싱(unboxing·택배 포장 뜯기)’ 등 ‘행동 중독’까지 매우 다양해졌다. 문제는 ‘다들 그렇잖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중독이 뇌 손상 등 심각한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렘키 교수는 “인생은 고통이지만, 이를 마주하고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위안 삼는다면 우린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NS-쇼핑 등 모든 것에 중독… 한달은 멈춰야 뇌 균형 회복”
〈1〉 ‘중독 치료 전문가’ 애나 렘키 스탠퍼드대 교수
모닝커피-술한잔 등 ‘보상’에 중독… 의사인 나도 로맨스 소설 중독 경험
아동에게 스마트폰 쥐여주는건… 해로운 음식 먹게 두는것과 같아
마주하는 인생은 고통스럽겠지만… 경험하고 맞서야 행복해질수 있어
“저도 재미로 읽던 ‘로맨스 소설’이 일상에 지장을 주는 중독을 경험했습니다. 힘들겠지만, 중독과 결별하면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얻는 능력을 다시 찾을 수 있어요.”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2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의사인 자신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중독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독서는 미덕인데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것 아니냐’고 되묻자 렘키 교수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덧 가족과의 시간을 줄이고, 계속 소설을 생각하고, 읽던 소설 제목을 감추게 되더라”며 “즐거웠던 업무조차 재미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렘키 교수는 이처럼 사소한 중독에서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중독에 이르기까지 중독에 빠진 뇌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풍요로운 고소득 국가일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이유로 우울증이나 중독 등이 꼽히는 이유다.
―우리는 모두 힘든 하루를 살고 있다. 드라마나 게임, 짧은 동영상, 술, 쇼핑으로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게 왜 나쁜가.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보상’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보상을 주는 것을 중심으로 우리의 시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마시는 카페인 음료, 끊임없이 보는 스마트폰, 퇴근 후 몰아보는 동영상, 술 한 잔 등이다. 보상을 주는 ‘물질’이나 ‘행동’은 우리의 (실제) 경험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우리 뇌는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상태의 뇌는 균형으로 돌아가려다 오히려 도파민 결핍 상태에 이른다. 우울이나 불안, 갈망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 ‘희소성의 시대’에 보상은 동기부여가 되는 특별한 것이었겠지만, 지금처럼 끊임없이 보상에 물드는 것은 뇌에 정말 좋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한 실수나 나쁜 습관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징후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중독은 통제(control)와 갈망(cravings), 결과(consequences)란 세 가지 ‘C’로 이어진다. 초콜릿을 먹거나 쇼핑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를 통제하지 못하거나, 계속 이것만 생각하거나, 결과적으로 재정 건강 관계 직업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판별법’은 거짓말이다. 드라마 보는 시간, 술을 먹는 양, 쇼핑에 쓰는 돈 등을 줄여서 말하는 것. 거짓말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인데 반복될수록 가까운 사람들과 멀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의지가 약한 사람만 중독에 빠지는 것 아닌가.
“절대 그렇지 않다. 중독을 치료하는 의사인 나도 로맨스 소설 중독에 빠진 적이 있다. 후배 의사들에게 중독 치료에서 ‘절제’를 가르치는 수업 중에 ‘환자’ 역할을 하다 나의 로맨스 소설에 대한 집착을 생각하며 결국 중독이란 걸 깨달았다. 한 달을 끊었더니 ‘소소한 보상에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끝났다 싶어 다시 시작했더니 폭식하듯 더욱 빠져들었고, 아예 1년을 끊었다. 이젠 다시 봐도 재미가 없다. 누구나 중독에 빠질 수 있다.”
―한국에선 도파민 보상 욕구를 참아보는 ‘도파민 디톡스’가 인기다. 하지만 ‘딱 한 번만 더’에 실패하는 사례가 너무 많지 않나.
“한 달은 멈춰야 우리 뇌의 보상 경로를 회복하고 균형을 찾을 수 있다. 간헐적 단식을 떠올려 보면 좋다. 또 ‘자기 구속 전략’을 추천한다. 의지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환경과 규칙을 바꿔보는 것이다. 건강한 음주 습관이 목표라면 집 안에 술을 두지 않고, 특정 친구들과만 마시는 식으로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한국은 거의 모든 약물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지만, 그럼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마약은 왜 이렇게 중독성이 강한가.
“중독성이 강한 약물은 뇌의 보상 경로에 한꺼번에 많은 도파민을 아주 빠르게 방출한다. 그다음엔 도파민이 급격히 떨어져서 도파민 결핍 상태에 이르게 하고 갈망을 심하게 만든다. 마약을 아무리 금지해도 국경 봉쇄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놀라운 공급망이 형성돼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구하기 어렵겠지만 젊은층은 온라인을 통해 생각보다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로부터 도망가려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 외모, 성취에 대한 평가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오히려 벗어나고 싶어한다. 특히 연예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집중되다 보면 약물이라는 위험한 탈출구를 택하곤 한다.”
―소셜미디어나 쇼핑 같은 행동 중독도 술이나 약만큼 나쁠 수 있나.
“디지털 콘텐츠는 곧바로 도파민을 방출하는 일종의 ‘약물’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동영상일 수록 잠재적으로 중독성이 강해진다. 특히 어린 자녀에게는 양과 빈도를 주의해야 한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에게 건강한 식단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나. 11, 12세 미만 아동에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것은 해로운 음식을 먹게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부모들은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 통제는 밀어붙여야 하는 문제다. 청소년기가 되면 통제는 더욱 어렵다. 내 경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다. 고교 입학할 때 자기들이 용돈으로 샀다. 나와 남편은 집에서 폰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을 금지하는 강한 가족 문화를 만들었다. 힘들지만 집 안에 디지털 기기가 없는 공간이나 시간과 같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 어려운 것 아닌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소셜미디어가, 특히 한국에선 직장문화와 술이 결부돼 있다.
“맞다. 중독을 집단적인 사회문화적 문제로 여기고 문화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재미와 행복이 인생 최고의 선이고, 고통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살고 있다. 그렇지 않다. 쾌락 그 자체만을 위한 쾌락은 우리를 더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마주하는 인생은 고통일 수 있지만 이를 마주하고, 경험하고, 이 같은 싸움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새해 결심이 궁금하다. 새해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
“현재 설탕 끊기에 도전하고 있다. 설탕은 곧바로 보상 경로를 강타해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물질이다. 나도 초콜릿을 좋아했기에 해낼 줄 몰랐는데 한 달쯤 끊으니 기분이 훨씬 좋다. 도파민 디톡스처럼 절제하는 것이 곧 행복을 주는 보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뇌속엔 쾌락-고통 저울… 쾌락으로 추가 기울면, 고통의 역습 뒤따라와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뇌에 고통과 쾌락을 처리하는 부위는 함께 위치해 있다.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놀이터 시소 모양의 저울을 상상해 보라고 권했다. 한쪽은 쾌락, 다른 한쪽은 고통이 자리해 있다.
우리가 ‘짧은 동영상’을 보거나 초콜릿을 먹고, 술을 마시면 보상 경로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때 저울의 ‘쾌락’ 추가 기울어지고, 뇌는 다시 평형을 만들기 위해 ‘고통’ 추로 쪽으로 저울을 기울이려 한다.
만약 한꺼번에 한쪽으로 깊게 내려가거나 평형 상태로 돌아오기도 전에 너무 자주 쾌락 쪽이 자극된다면? 렘키 교수는 “‘고통의 그렘린’들이 몰려와 평형을 만들려고 고통 쪽에서 방방 뛰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시소는 쾌락 쪽 무게가 주어진 만큼 고통 쪽으로도 기울게 돼 있다”며 “충분히 오래 기다리면 그렘린이 사라지고 항상성(균형)이 회복되지만 오랫동안 도파민에 압도되면 그렘린은 증식하고 고통 쪽에 진을 쳐버린다”고 말했다. 이 상태에 이르면 사람은 만성적인 도파민 결핍에 시달려 고통에 기울어진 저울을 짊어지고 살게 된다.
과거에는 뇌의 항상성 추구가 생존에 부합했다. 수십 km를 걷는 고통에도 ‘보상’인 먹을거리를 찾으러 나갈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시간 온라인 세상과 연결돼 있고, 각종 보상에 둘러싸인 현대인들은 중독에 취약해졌다는 게 렘키 교수의 주장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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