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고달프지만 아직 남아 있는 생에 대한 러브 레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
본심에서 만난 응모작 열 편을 보면서 좋은 소설이란 ‘인물’을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헤디 라머가 읽어준 것은’은 안정된 문장과, 누수와 연락 없는 딸의 문제를 가진 영서라는 노인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지만, 12층 여자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이 부족해 보이며 폭력으로 끝난다는 점이 아쉬웠다. ‘기수어’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캐릭터, 공간, 상징, 반전 등 소설의 거의 모든 면에서 뛰어나 보인 응모작이었다. 그러나 기교가 앞선 만큼 소설의 기본이자 진실인 인물들을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곽 이사와 금혜는 사라져 버렸으며 아이를 가진 부모는 철거를 한 달 앞둔 사무실에 자리를 잡는다. 그들에게 이 결말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러브 레터’는 얼핏 유서처럼 시작하는 성장소설이다. 자신이 한때 일한 건물의 16층 옥상으로 올라온 나는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한 노인 때문에. 소설이 끝나갈 즈음 독자는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자신이 책임지거나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들, 한때를 보낸 사람들과 아픈 시간에 대한 러브 레터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가 만난 사람들, 그들과 함께한 시간 덕분에 성장하고 삶을 지탱해 나가기도 한다. 작가는 독자를 놓치지 않으며 그 지점을 담담하고 여유와 재치 있는 진술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는 이유가 있고 필연적으로 이야기에 작동한다. 고달프지만 아직 남아 있는 생에 대한 러브 레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가 아닐까.
새해 첫날, 16층에서 보내는 이 ‘러브 레터’의 진심이 독자에게 뜨겁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 기회를 앞둔 모든 응모자께도 응원의 레터를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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