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넌 시인의 이름을 가졌어” 그 한마디가 나를 지켰다
선생님은 나에게 시인의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그 기억은 각별하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던 것 같지. 그것은 일종의 예언이기도 했으나, 시를 쓰는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시인이 된 내가 있다. 이게 나의 대답이에요. 그동안 나는 매번 다른 이름이 되어서 다른 시를 썼고, 그 사이에 선생님은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한 번도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본 적 없는 것 같다.
아주 희박한 관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느낀다. 21세기에 시를 쓴다는 것. 사랑 없는 세계에서도 아직도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현실을 호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시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믿고 싶기도 하다. 세계가 돌아가는 논리. 나의 관성. 그건 가장 가까이 있는 거라고.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지. 애호박을 살지, 상추를 살지. 그 정도에 그치는 거야. 나의 시는 멀지 않은 징조가 좋겠다. 그건 모두의 이름 같은 거다. 나를 지켜준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의 이름이었으니까. 당선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기쁘고도 충만하다. 이제 나는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해야지.
대학 강단에서는 법을 가르치지만, 나에게는 법 대신 사랑을 가르쳐준 아빠. 그리고 나를 믿어주던 우리 엄마. 오빠. 모든 가족. 전화 주셔서 고마워요. 항상 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주는 윤채. 또 금지야, 너와 함께 뜨던 뜨개실이 지금의 나를 완성한 것 같다. 수연, 시현. 언제나 내 고향이 되어주는 친구들. 그리고 승현, 우리, 서윤. 지금 우리 모두 다른 걸 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영원히 문연자의 새벽에 남아 있어. 너희가 있어 글과 함께한 기억은 기쁘고도 애틋해. 기쁜 소식은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소중한 서인, 선민, 정우. 나에게 시인의 이름을 붙여주었던 박정원 선생님. 그리고 이승하 선생님, 김근 선생님, 이수명 선생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이곳에 다 담지 못한 나의 소중한 이름들에게.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다. 나는 계속 쓸게요.
추성은
-1999년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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