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기업 투자가 살아나야 저성장 벗어난다 [사설]
(1) 경제활력 증진
2%대 성장 전망은 순전히 기저효과
성장동력·일자리 창출 관건은 투자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모든 경제주체가 힘든 시기를 보냈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가계부채가 많은 한국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해이기도 했다. 올해 여건과 전망도 만만치 않다. 최근 국내외 물가가 유가 하락 등의 여파로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 국가별·대륙별 공급망 경쟁 격화에 따른 생산비용 상승 등은 언제든 물가 재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적 소비 침체를 야기한 미국발 고금리 역시 쉽사리 향배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2.1%, 정부는 2.4%로 각각 제시하고 있지만 1%대 성장을 예측한 민간 연구소도 적지 않다. 성장률 1.8%를 제시한 LG경영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해보다 높은 것은 저성장 기저효과가 작용한 탓인데, 올해도 소비와 투자가 제대로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출이 기대한 만큼 늘어날지도 의문이다. 반도체 경기를 견인하는 인공지능(AI)의 본격 개화와 스마트폰 교체주기 도래 등은 호재다. 하지만 반도체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여전하고 일본 등의 추격도 거세다.
저성장 타개의 관건은 투자다.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아니면 제자리 걸음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역시 한은 정도를 제외한 다수 연구소와 기관이 2% 안팎의 낮은 증가율을 내놓고 있다. 건설투자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정리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향후 경기 회복기에 성장 탄력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미래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 능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상목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언한 대로 기업 투자에 대한 전면적 규제 완화로 경제활력 증진을 위한 물꼬를 터야 한다. ‘신산업 진입규제 완화’와 ‘기존 산업의 투자입지 애로 해소’ 등 방향은 잘 잡았다. 중앙·지방정부의 실행 의지와 속도에 성패가 달렸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조금씩 나타나면서 공직사회에 벌써 복지부동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많은 기업의 전언이다. 섣불리 기업 규제 완화에 나섰다가 나중에 ‘특혜론’에 휘말리거나 직무감사 등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감사원 등과 이 문제를 긴밀히 협의해 공무원들이 적극 행정으로 돌아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꾸고 법률이나 정책이 명시적으로 막지 않는 사항은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규제’를 전면 도입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애로를 호소해온 중대재해처벌법, 화평·화관법, 징벌적인 법인세·상속세 등의 제도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손질해 기업가정신과 혁신 마인드를 배양해야 한다. 특히 선진국의 자국 기업 우선주의와 배타적 공급망 정책에서 한국 기업들이 부당한 처우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제 외교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부채 관리도 시급한 현안이다. 한국의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를 모두 더한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어림잡아 60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 부채가 2200조원, 기업과 정부 부채가 각각 2700조원, 1100조원 상당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돈 풀기가 한창이던 2021년을 정점으로 경제 규모 대비 빚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었지만 한국만 역주행하는 중이다. 부채 감축은 정부의 재정지출과 통화당국의 금리정책으로 조율하되 자칫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도덕적 해이나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의 긴축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이 금리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기준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낮고 상승 속도 또한 느렸던 만큼, 부채 추이와 좀비기업·한계업종 구조조정 속도 등을 봐가며 보수적이고 유연한 금리정책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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