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비대위는 성공하지 않았다 [이상돈 칼럼]

2024. 1. 1. 00: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섰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을 두고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들어섰던 박근혜 비대위를 본받아야 한다는 주문이 있으나, 그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박근혜 비대위가 과연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도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라이벌 관계였던 박근혜가 이끈 비대위는 '쇄신'을 내세우고 그때까지 여권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모습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예측을 뒤엎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와는 다른 한동훈 비대위
탄핵의 길을 연 박근혜 비대위의 주역들
유권자 기만해선 안 된다는 교훈 얻어야
2011년 11월 27일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서 비대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영 정책위의장, 황우여 원내대표,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 박근혜 비대위원장,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동성 서울대 교수,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주광덕, 김세연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섰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여권이 마지막 카드를 쓴 형국이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을 두고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들어섰던 박근혜 비대위를 본받아야 한다는 주문이 있으나, 그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박근혜 비대위가 과연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도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오만과 독선으로 국정을 이끌어 오던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들어서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한나라당에는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들어섰고 유승민, 남경필 등 쇄신파가 최고위원으로 포진했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한나라당을 구하기에 홍 대표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유승민 등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함으로써 홍준표 체제는 무너지고 박근혜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박근혜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김종인, 4대강 사업 반대 등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던 필자를 비대위원으로 임명했다. 젊은 세대를 유인하기 위해서 이준석과 손수조를 비대위원과 문재인 대항마로 각각 발탁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함으로써 박근혜 비대위는 성공한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와 관계없이 유승민과 남경필 등이 최고위원직을 버려서 들어선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쇄신'을 기치로 삼았으며 '통합'을 추구했고 부족하나마 그것을 실천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라이벌 관계였던 박근혜가 이끈 비대위는 '쇄신'을 내세우고 그때까지 여권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모습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예측을 뒤엎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선 이어진 대선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가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 정신이 구현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비대위가 내세웠던 가치는 대선을 거치면서 형해화되었고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김기춘 같은 구시대 인물과 무능력한 측근에 의존하다가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박근혜 비대위의 한 축을 이루었던 김종인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그리고 필자는 국민의당 선대위원장으로 두 야당의 선거를 이끌었다. 새누리당은 원내 2당으로 전락했고 국회의장은 민주당 몫으로 돌아갔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국회 구도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고, 미르 재단 사건이 불거지자 정국은 탄핵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해서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유승민은 박 대통령 탄핵에 동조했고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을 탈당해서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박근혜 비대위를 발족시키고 이끌었던 사람들이 박근혜 탄핵을 위한 길을 터준 셈이다

박근혜 비대위가 활약했던 2012년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 해였다. 이명박은 여권 승리를 위해 해묵은 라이벌인 박근혜에게 "나를 밟고 가라"는 식이었다. 보수 기반이 탄탄한 박근혜는 지지층 이탈을 걱정하지 않고 '쇄신과 통합'을 내세우며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란 점에서 2012년과는 사정이 다르다. 윤 대통령이 키운 사람(protégé)인 한동훈이 이끌 비대위는 박근혜 비대위와 배경도 다르고 본질도 다르다. 2012년 봄 정국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박근혜 비대위는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을 기만했던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자 박 대통령은 물러나야만 했다. 그것이 박근혜 비대위가 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