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보호 못 받는 동물원 동물들… “학대 판단 어려워” [인사이드&인사이트]

조응형 경제부 기자 2023. 12. 3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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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사각지대 ‘동물원’
보호시설로 바뀐 청주동물원
‘갈비 사자’ 이사 뒤 건강 되찾아…부상 입은 곰, 독수리 등 안식처
동물원법, 적극 학대 행위만 금지
동물복지 주무 농식품부는 “동물원 소관 아냐” 뒷전
지난해 6월 경남 김해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사자 바람이가 우리에 갇힌 채 웅크리고 있다. 동물원 경영난 등으로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바람이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갈비 사자’로 불렸다.
《만 19세. 사람으로 치면 100세쯤 된 사자 ‘바람이’는 노년기 대부분을 굶주린 채 보냈다. 열두 살 무렵 이사한 경남 김해의 한 실내동물원에선 바람이가 주인공인 ‘사자 먹이 주기 체험’이 주요 행사였다. 84㎡(약 25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는 어린이 관람객들이 밀어넣는 2000원짜리 생닭다리를 받아먹었다. 닭다리를 먹지 않을 땐 대부분의 시간을 시멘트 바닥에 누워서 보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올해 7월부터 바람이를 돌보고 있는 청주동물원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은 “관람객이 주는 먹이에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평소에 먹이를 적게 준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겨 동물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바람이는 더욱 말라 갔다. 옆구리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바람이에게는 ‘갈비 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 동물원 옮긴 뒤 건강해진 ‘갈비 사자’

바람이가 7월 청주동물원으로 이사한 뒤 한 달여 만에 어느 정도 살이 붙고 건강해진 모습. 청주동물원 제공
올해 7월 청주동물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바람이는 매일 4kg 가까이 먹고 있다. 청년기 사자보다도 많은 양이다. 지내는 공간은 1075㎡(약 325평)로 13배가량으로 넓어졌다. 시멘트가 아닌 흙과 나무를 밟고 지낸다. 지난해 12월 28일 야외 방사장에서 만난 바람이는 통나무 위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6개월 전보다 갈기가 풍성해졌고 옆구리에는 살이 올랐다. 이따금 호박에 고기를 꽂아 만든 장난감을 건네면 한참을 굴리며 놀기도 한다. 김 팀장은 “처음 바람이가 왔을 때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요즘은 소방 호스를 꼬아 만든 장난감 등을 굴리고 물어뜯으며 갖고 논다”고 했다.
조응형 경제부 기자
청주동물원에 있는 동물 대부분은 바람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된 동물들이다.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는 강원 동해시의 한 곰 농장 출신이다. 웅담 채취를 위해 수입돼 키워지던 이들은 좁은 철창에 갇혀 있다 2018년 구조돼 이곳으로 옮겨왔다. 부리가 비뚤어지거나 날개를 다쳐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독수리들도 있다. 철새인 독수리는 한국에서 겨울을 보낸 뒤 3, 4월이면 몽골이나 티베트로 돌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농약을 잘못 먹거나 전깃줄에 걸려 다치는 경우가 많다. 청주동물원은 이런 동물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야생동물 보호시설’ 역할을 하고 있다.

수의사인 김 팀장이 처음 청주동물원에 부임한 2000년대 초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시 외곽에 위치한 데다 예산이 적었던 청주동물원은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곳 중 하나였다. 축사처럼 다닥다닥 붙은 방사장에 늑대와 하이에나를 몰아넣었고, 동물복지를 신경 쓰기보단 사육사가 똥을 치우기 편한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야생동물을 치료하고자 수의사가 됐지만, 김 팀장은 동물원에서 일하며 너무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습성에 대한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동물을 들이는 바람에 천연기념물인 따오기 수십 마리가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동사하는 일도 있었다. 죽은 동물 사체를 조각내 처리해야 했던 직원이 주고 간 편지는 아직도 김 팀장의 가슴속 깊이 박혀 있다.

김 팀장은 20여 년에 걸쳐 청주동물원을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조금씩 바꿔 왔다. 이곳에선 동물이 사람의 스케줄에 맞추지 않고 사람이 동물의 일정을 따른다. 동물원 정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수달 집 앞에는 벽걸이 시계와 함께 ‘오늘 수달 기상 예상 시간’이 적혀 있었다. 이날 수달들은 오후 2시쯤 느지막이 뒷방에서 나와 야외 방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인 운영 시간의 절반 정도만 수달을 볼 수 있는 셈이지만, 관람객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후 3시경부터 시작되는 수달 훈련은 청주동물원의 ‘명물’이 됐다. 관람객에게 재롱을 부리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엑스레이나 채혈 등 건강검진에 거부감 없이 응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 동물원엔 ‘동물원법’ 우선 적용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졌지만 동물원에 적용되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사자 바람이가 이전에 있던 실내동물원에서 좁은 공간에 갇혀 지냈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상 해당 동물원 운영자를 동물학대로 처벌하긴 쉽지 않다는 것이 동물법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동물보호법은 사육되는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 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제9조)을 담고 있다. 또 세부 시행규칙으로 최대한 각 동물의 본래 습성에 맞도록 사육하고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사자를 오랫동안 좁은 우리에 가둬 두면 해당 조항을 위반한 셈이지만 실제 처벌은 쉽지 않다. 이는 동물보호법의 특이한 조항 때문이다. 이 법 제5조는 ‘동물의 보호 및 이용, 관리 등에 대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을 경우’ 해당 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동물원에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이 적용된다. 동물원의 경우 동물보호법보다 동물원법이 우선 적용되는 것이다.
동물원법은 동물의 적절한 사육 환경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상해를 가하는 등 적극적인 학대 행위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먹이 주기 체험을 진행하거나 좁은 공간에서 지내도록 하는 정도로는 해당 법상 학대 행위라고 보기가 어렵다. 동물법 전문 한재언 변호사는 “동물원에선 동물보호법상 학대로 볼 수 있는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동물원법이 우선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에서 학대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소관 부처가 나뉘어 있어 책임이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현재 동물원은 환경부 담당이지만 수족관은 해양수산부 소관이다. 아쿠아리움처럼 동물원과 수족관이 혼합된 형태에 대해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 권익 보호 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의 최인수 활동가는 “민영 수족관 상당수가 아쿠아리움이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육상 동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며 “두 종류가 합쳐진 시설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됐을 때 어느 부처에서 도맡아서 감독하고 처분해야 하는지 애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복지 주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원 내 동물복지에 대해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농식품부는 동물복지정책과 조직을 국 단위인 동물복지환경정책관으로 승격하고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는 등 동물복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반려동물이나 축산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동물원 내 동물 관리는 환경부 업무”라며 “동물원 분야까지 업무를 확장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원 관련 업무는 야생동물 관리와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농식품부에서 이를 다루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며 “부처 간 중첩이나 충돌을 막기 위해 대통령실 내지 국무조정실 산하에 동물복지위원회를 둬서 전체 동물복지 정책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팀장은 “동물원이 사람의 즐거움을 위한 장소에서 동물을 위한 보호시설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11월 다른 실내동물원에서 구조된 독수리 ‘하늘이’의 야생 적응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동물원 한쪽에 위치한 족구장을 내주기로 했다. 현재까지 날개나 부리에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하늘이는 앞으로도 특별한 건강상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훈련을 거쳐 몽골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족구장은 동물원 직원들이 애용하는 곳이지만 하늘이를 위해 기꺼이 내주기로 했다.

조응형 경제부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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