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폐장에 보조금 5조 ‘펑펑’…눈먼 돈으로 유지되는 원전생태계
31일 매일경제신문이 입수한 대구대학교·울산과학기술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11월 경주시가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로 선정된 후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경주시에 지원하는 금액은 4조7927억원으로 집계됐다. 경주시 올해 예산이 약 2조원인 점에 비춰보면 경주시 2년 치 예산에 달하는 금액이다.
경주 지원 사업에 동원된 부처만 문화체육관광부·환경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한수원)·해양수산부·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노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10개에 달한다. 도시·교통부터 문화·관광, 산업·경제, 과학·기술 등 지원 사업 분야도 다양하다.
예산을 가장 많이 투입한 분야는 도시·교통 사업이다. 경주와 감포를 잇는 국도 건설과 감포항 종합개발 등에 1조4808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 수로만 보면 문화·관광 분야가 23개로 압도적이다. 역사가 깊고 문화유산이 많은 경주시 특성상 이를 위한 예산을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정책 효용성 등 제대로 된 분석 없이 ‘선심성 정책’이 난무했다는 점이다. 특히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려던 정부에 맞서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이른바 ‘안면도 사태’ 후유증으로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을 완공한 핀란드와 대조적이다. 핀란드의 경우 방폐장 건설 지역에 지원한 보조금 자체가 없다. 방폐장이 들어서면 지역에 일자리가 생기고 지방자치단체가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프랑스와 스웨덴 역시 보조금보단 간접적으로 방폐장 건설 지역에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은 방폐장뿐만 아니라 원전 지역 지원금도 주먹구구식으로 투입하는 상황이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계속운전에 따른 상생협력기금으로 지역에 각각 1310억원을 지원했다. 법정외지원금으로 지역사회와 합의해 한수원이 내놓은 금액이다. 한 원전 지역 관계자는 “‘계속운전’에 대한 보조금 기준이 없어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원자력안전교부세’를 도입해 원전 주변 지역까지 지원금을 달라는 요구도 곳곳에서 나온다.
현재 정부는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총괄위원회’를 구성해 이르면 다음달 11차 전기본 핵심 내용을 담은 실무안을 수립해 발표한다.
11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포함한 막바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4∼2038년 적용될 11차 전기본 실무안에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와 2038년까지의 발전원별 구성비 등 원전 정책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11차 전기본 핵심은 신규 원전 건설이 포함될지 여부다. 지난 7월 산업부는 제29차 에너지위원회를 개최하고 전력 수요가 늘고 있다며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전력 공급 능력 확충 방안을 제11차 전기본에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앞서 원전과 방폐장 지원금 정책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예산을 늘려가며 원전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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