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디젤차…우리, 헤어지는 중입니다
EU 등 친환경 규제에 점차 설 자리 잃어
현대차 울산공장, 최근 승용차용 디젤 엔진 생산 중단
특수차·대형트럭은 당분간 명맥 유지할 듯
“도쿄 시민들이 이 병에 든 것을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 도쿄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는 검은 그을음이 담긴 페트병을 들고 다녔다. 경유를 원료로 하는 디젤 트럭 1대가 1㎞를 달릴 때 나오는 매연을 담았다고 했다. 한국인에게는 ‘망언 제조기’로 알려진 극우 정치인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디젤차 퇴출을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디젤 엔진이 만들어내는 검은 매연에 대한 불만은 엔진 개발 초기부터 있던 묵은 숙제였다. 자동차·비행기 등에 디젤 엔진이 도입되기 시작한 1930년대 중후반, 당시 나치 독일은 강력한 디젤 엔진을 장착한 융커스 폭격기를 개발했다. 1만2000m 성층권을 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폭격기로 주변국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히틀러가 보는 앞에서 융커스 폭격기 부대가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가, 디젤 엔진이 만들어낸 자욱한 연기에 장파 무전기가 먹통이 돼 히틀러가 분노했다는 일화도 있다.
불꽃만 있으면 쉽게 불이 붙는 휘발유와 달리 경유는 불꽃을 갖다대도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다만 210도 이상 고온에서는 저절로 불이 붙을 정도로 발화점이 낮은 편이다. 휘발유와 공기를 충분히 섞은 뒤 점화플러그로 불을 붙여 폭발시키는 가솔린 엔진과 달리, 디젤 엔진에서는 공기를 압축해 고온으로 만든 뒤 경유를 분사해 폭발시키는 자연발화 방식이 사용되는 건 이 때문이다. 불완전연소가 많다 보니 타고 남은 경유 찌꺼기가 그을음으로 변한다.
또 엔진 내에서 질소와 산소가 고온에 반응하면서 대량의 질소산화물(NOx)도 만들어진다. 질소산화물은 산성비, 스모그, 초미세먼지(PM 2.5)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반면 엔진 내 압축비가 높아 같은 힘을 낼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상대적으로 가솔린 엔진보다 적은 편으로 평가된다.
이시하라 도지사가 그을음을 담은 페트병을 갖고 다니던 시기는 디젤의 찌꺼기를 줄이는 기술이 본격화한 때이기도 하다. 기존 디젤 엔진은 공기를 압축한 상태에서 연료를 단번에 분사해 연소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연료를 4~5회 나눠 분사해 완전연소 비중을 높이는 ‘커먼레일’ 방식이 1997년 도입돼 빠르게 퍼졌다.
디젤 엔진에서 나온 미세먼지를 필터로 걸러낸 뒤 이를 다시 연소시켜 없애는 디젤미립차필터(DPF)도 2000년경 등장했다. 배기가스에 요소수를 분사해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선택형 환원촉매(SCR) 장치를 단 경유차도 2000년대 중반부터 보급됐다. 덕분에 디젤차가 내뿜던 배기가스는 1960~1970년대 대비 5% 수준으로 줄었다. 일각에선 경유가 휘발유보다 깨끗하다는 이른바 ‘클린 디젤’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자사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미국·유럽의 배기가스 규제를 통과한 ‘디젤 게이트’가 2015년 터지면서 클린 디젤 신화도 깨졌다.
환경 문제와 각종 규제에도 디젤 엔진이 생명력을 유지해 온 건 힘(토크)과 연비 때문이었다. 디젤 엔진은 압축비가 높기 때문에 같은 양의 연료를 사용했을 때 끌어낼 수 있는 힘이 크다. 변속기의 기어비를 낮추면 스피드도 높일 수 있다. 가혹한 레이스 경기로 유명한 ‘르망 24시’에서는 2006~2014년 아우디와 푸조의 디젤 엔진 경주차가 가솔린 엔진 차량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이제는 가솔린 엔진도 토크가 향상됐고, 전기차가 내는 힘은 디젤 엔진과 비슷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이 됐다. 이제 르망 24시의 왕좌를 차지하는 차량은 디젤 경주차가 아니라,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질소산화물 등의 배출 허용량을 강화한 ‘유로 7’ 규제를 시행한다. 새로운 규제로 디젤 엔진의 원가 부담이 커지자 완성차업체들은 경유차 등 내연기관차를 줄이고 순수전기차나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차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1일 ‘개정 대기관리권역법’ 시행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고 인정되는 지역 등에서 소형 택배 화물차의 디젤차 신규 등록이 금지됐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승용차용 디젤 엔진 생산을 중단했다. 경유차 생산이 줄면서 디젤 엔진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대신 기아와 현대위아로부터 필요한 디젤 엔진을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현대차는 내수용 디젤 승용차를 연간 16만대씩 생산했지만 지난해에는 연간 2만~3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 한국지엠이 국내에서 생산한 디젤 엔진 승용차의 총합은 지난해 처음으로 10만대를 밑돌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환경 규제 등을 맞출 수 없다 보니 승용차용 디젤 엔진은 사라지는 추세”라며 “디젤 엔진은 특수차, 대형 트럭 등 큰 힘이 필요한 상용차에서는 당분간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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