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표현할 수 없는 공포"…78년 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박남주 할머니
"(공습) 당시 마음이 공포심에 차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 버렸어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박남주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재일 동포 2세인 박 할머니는 올해로 91살이지만 78년 전을 또렷이 기억했습니다. 지난 1945년 8월 6일,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 박 씨는 동생들과 함께 전차를 타고 먼 친척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박 씨의 나이 12살이었습니다.
원자폭탄 투하 직전, 박 씨는 희미하게 B29 폭격기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소리를 들은 순간, 갑작스럽게 폭발이 일고 불기둥이 솟아올랐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이었던 그날, 박 씨의 눈앞은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찼고, 안개가 걷힌 뒤 박 씨가 먼 마을을 바라봤을 때, 마을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동생들을 데리고 전차에서 내렸는지, 아닌지,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어른들이 전차에서 빨리 내리라고 했을 때, 저 혼자 내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날 날이 굉장히 맑았는데, B29가 떨어지고 난 뒤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어른들의 얼굴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나서 보니, 어른들의 머리가 전부 피투성이가 돼있었어요. 앞을 보니 전차 앞에 있는 마을이 전혀 안 보였습니다."
12살의 어린 소녀였던 박 씨는 피폭으로 화상 입은 사람들을 직접 마주했습니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한번 넘어지면 힘이 없어 다시 일어나지 못 했다고 합니다. 박 씨가 목격한 피폭 피해자들은 쓰러진 채 '뜨겁다', '도와주세요', '물 주세요'라고 마지막 말들을 어렵게 내뱉었습니다. 박 씨는 그들에게 물 한 잔 주지 못한 걸 지금까지도 가슴 아파했습니다.
"히로시마는 전부 불바다가 됐었고, 멀리서 보니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면서 왔습니다. 달려가서 보니, 손을 흔든 게 아니라 화상으로 피부가 녹아 늘어진 것이었습니다. 손이라고 생각했던 건 모두 늘어진 피부였죠. 마치 긴 소매처럼 돼있었습니다. (중략) 그때 돌아가신 분들의 마지막 말은 '천황폐하 만세'도, '어머니, 아버지 도와주세요'도 아닌, '물을 주세요'였습니다. 그때 화상 입은 사람에게 물을 주면 바로 사망한다고 해서 물을 주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말이 있었는지..."
피폭에서 살아남은 이후 삶 역시 녹록지 않았습니다. 시골에 친척이 있는 일본인들은 히로시마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일본 내 친척이 없는 재일 동포들은 갈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박 씨와 가족들은 원폭 피해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폭심지(원폭 폭발 중심지점) 인근에서 생활했습니다. 조선인을 향한 차별 역시 견디기 쉽지 않았습니다. '조센징'으로 불리며 때때로 굴욕감까지 느껴야 했던 이들은 히로시마에서 종전과 해방을 맞았습니다.
"재일 동포들은 친척이 없어서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 점이 굉장히 슬펐죠. (히로시마 내) 한국 사람들은 폭심지 2km 이내에서 지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해방 때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해방이 됐다'고 하면서 만세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해방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억압된 사람들이 벗어났다는 기쁜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조센징'이라는 굴욕적인 말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만세라고 할 때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박 씨는 피폭 이후 유방암과 피부암을 겪었습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한반도에서 강제징용 등으로 일본에 건너왔다가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피해자를 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중 3만 명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살아남은 사람 대부분은 박 씨처럼 암 등 각종 질병으로 피폭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박남주 할머니는 곧 92살이 됩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피폭 피해를 알리는 증언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핵이 얼마나 끔찍하고 파괴적인지를 알기에 더더욱 핵 사용을 막고 싶다는 겁니다. 정부가 조금 더 해줬으면 하는 역할이 있냐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남주 할머니는 웃으며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에 따로 원하는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의 '한일기자단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본 도쿄, 히로시마 등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조윤하 기자 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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