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리더라도 기어이…‘일용할 양식’이 되는 그날까지[경향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소감]
사골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뺍니다. 팔팔 끓는 물에 사골을 담그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불순물들이 올라옵니다. 밑이 넓은 국자로 기름과 불순물들을 건져내며 오래오래 육수를 우려냅니다. 뽀얀 육수가 올라올 때까지 불 앞에 오래 머무릅니다.
제가 그 과정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래 걸리더라도 기어이 따뜻한 한 끼가 되려 합니다. 새벽과 저녁이 익숙한 모든 사람이 제 은인입니다.
내 안에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기도 미안한 친구들과 선생님, 아버님, 어머님, 가족들 너무 많은 고마움을 떼어먹으며 버텨온 것 같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 영희, 우리가 늘 하는 농담처럼 꼭 갚아줄게!
엄마, 엄마 아들로 태어난 게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음을 말하고 싶어.
너무 뛰어난 사람은 하늘이 먼저 데려간다는데, 천국의 제일 목 좋은 자리에서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 아빠, 아빠 옆에는 충무떡볶이 할머니랑 인제약국 아저씨랑 홍어아저씨랑 이모랑 큰아버지랑 대웅이랑 다 있겠지요? 늘 아빠 산소 앞에 가서 서글퍼하다만 와서 죄송해요. 이번엔 아빠 산소에 예쁜 꽃이랑 좋은 술 사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끄러움 말곤 자랑할 게 없는 저에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맹재범
△ 1978년 출생
맹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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