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南, 동족 아닌 미국 식민지 졸개”…새해 고강도 도발 예고
“남한,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
무력도발 정당성 확보 나서
통전부·조평통 축소 나설듯
美대선 겨냥 위협수위 높여
군사정찰위성 3기 추가발사
초대형 핵탄두 실험 가능성
북한은 대남 핵공격 위협의 심리적·논리적 걸림돌이었던 민족·통일 담론을 폐기하고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못박았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핵탄두와 핵공격 플랫폼 확충은 물론 정찰위성 추가 발사에 의한 표적 확보 능력을 강화할 방침까지 구체화하며 연말 대선을 앞둔 미국에 대해서도 위협 수위를 높였다.
31일 북측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날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결론 발언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한미 정상 간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 출범, 미국 전략자산의 잇따른 한반도 전개 등을 세세하게 거론하며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한미에 떠넘겼다.
그는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 것들과의 관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간의 관계’로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발언에서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경멸적 표현까지 썼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2년 집권 이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전인 2019년까지는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의지를 신년 메시지에 담아왔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핵무력과 전략무기 확보를 강조하며 한미에 첨예하게 각을 세웠고 이번에 결국 ‘남북관계 포기’까지 언급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핵무기 대남 사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했다.
그는 북측이 동족 의식을 버린 것을 두고 “핵무기 실전화와 ‘우리 민족끼리’의 모순적 충돌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핵·미사일이 고도화하고 대남·대미 실전배치가 이뤄지면서 기존 통일전선 논리와 모순이 발생한 점을 의식해 입장을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다. 홍 연구위원은 “남북간 통일 논의를 포기하고 외교관계가 없는 적대적 교전국가로 정리할 경우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모순이 제거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역대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의 목표가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이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역대 민주당 계열 정부의 대북정책까지 싸잡아 비난한 셈이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통해 당 통일전선부(통전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남북관계 관련 공식 기구를 축소·폐지할 뜻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인정하면서 당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존 통전부의 남북관계 관련 기능은 적대적 기조로 전환돼 군사 관련 당·정 기관으로 이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년 전부터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했던 조평통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회의에서 “핵에는 핵,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 화답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북측은 이날 한미에 대한 핵공격 가능성을 거듭 거론하면서 무력통일을 위한 군사행동 준비에 주력하겠다며 위협했다.
특히 북측은 핵탄두 증산과 군사정찰위성 3기 추가발사, 해군 수중·수상 함정 확충과 무인기·전자전 전력 강화 등의 군사력 강화 방침도 자세하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는 한미를 겨냥한 핵공격을 위한 요소인 핵탄두와 투발수단을 운용할 잠수함 등 해군 장비는 물론 감시·정찰과 표적 확보에 쓰이는 정찰위성까지 증강하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북한은 고출력 전자기파(EMP) 공력 수단과 무인기 전력을 확대할 뜻도 밝혔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 2021년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군사무기 가운데 아직 보여주지 못한 ‘초대형 핵탄두’ 관련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7차 핵실험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회의에서 식량과 주택건설 등 경제 분야에서도 계획을 웃도는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강화된 대북제재와 만성적인 경제적 비효율성으로 인해 경기 침체가 여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은 올해의 군사적 성취를 내세워 경제적 어려움을 상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북한이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는 ‘영토완정’ 주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미일 위협에 노출됐다는 인식을 통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연말에 당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새해 1월 1일에 주요 결정내용과 김 위원장의 발언을 묶어 발표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하루 빠른 2023년 마지막 날에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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