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학전에 도착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꿈은 끝없는 것"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청량리, 청량리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안내방송을 따라 열차에서 내린 연변 출신 여성 선녀가 갈 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종착역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듯 주인공을 막아 세우지만, 약혼자를 찾으려는 선녀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9년간 대학로를 달려온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종착역인 학전 소극장에 멈춰 섰다. 1994년부터 4천257회의 공연과 73만명이 넘는 누적 관객을 모은 공연은 초연 30주년을 하루 앞두고 막을 내리게 됐다.
31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공연을 관람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들어찼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들은 '1998년 11월, 서울'이라는 문구가 적힌 무대를 사진에 담아두려고 카메라를 찾고 있었다.
이윽고 지하철 소리에 강렬한 전자기타의 연주가 더해지며 공연의 막이 오르자 무대에는 에너지가 차올랐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은 연신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은 연변 출신의 여성 선녀가 결혼을 약속한 상대인 제비를 찾아 서울을 헤매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을 배경으로 한국 사회를 풍자한다. 독일 그립스(GRIPS) 극단의 원작을 학전 김민기 대표가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하고 각색했다.
지하철에 몸을 실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는 그 시절 지하철 열차 한 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야구선수 박찬호의 부상을 헤드라인으로 뽑은 신문을 읽고,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와 성매매 집결지 '청량리 588'은 배우들의 대사 안에 살아있다.
미군에게 버려진 혼혈 고아 철수, 노점상 단속에 맞서며 억척스레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곰보 할매' 등 작품 속 인물들은 사회를 향해 날 선 감정을 쏟아낸다. 그들의 에너지와 감정이 과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온기를 찾을 수 없는 사회를 꼬집는 가사는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11명은 배역을 바꿔가며 인간군상을 연기한다. 이들은 연습량을 입증하듯 배역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동선에 맞춰 춤을 추고 호흡을 맞췄다. 배우들의 호흡을 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겼다.
선녀를 연기한 배우 서율은 "학전에서 올리는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다 보니 시원한 마음보다는 섭섭한 마음이 조금 더 크다"며 "역사적인 작품에 함께할 수 있어 앞으로도 상징적인 작품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관객들 역시 마지막 공연을 기념하려는 듯 매 순간 열띤 박수와 환호로 무대를 채웠다. 가벼운 농담에는 더욱 큰 웃음으로 화답했고,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호응을 아끼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인사를 건네기 위해 계단에 도열한 출연진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뮤지컬 1호선'의 초연을 관람했다는 50대 중반 남성 김모 씨는 "젊었을 때 자주 왔던 공연장이다 보니 옛날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며 "예전에 봤던 공연 기억도 나고 재밌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 완전히 몰입하기가 힘들 만큼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 이후로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 대표는 지난달 인터뷰에서 "이번에 학전에서 열리는 공연이 마지막 '지하철 1호선'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32년간 대학로를 지켜온 학전은 폐관 위기에서 벗어나 앞으로도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당초 김 대표는 내년 3월 학전의 폐관을 결정했으나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이곳의 공간을 재정비해 어린이극장이나 대중가요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하철 1호선'은 이날 끝났지만, 학전은 내년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와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학전 출신 예술인들의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이어간다.
작품 속 선녀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찰나에 마지막 희망을 발견하는 것처럼, 학전은 관객과 호흡할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마지막 끝날까지 꿈을 꿔야 해. 꿈이란 끝도 없는 것."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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