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개 넘게 팔리죠"…다이소 '품절 대란' 벌어진 제품
화장품 카드 결제액 역대 최저치 기록
당분간 불황형 소비 이어져…저가형 화장품 브랜드 성장 기회
"하루에 100개는 기본이죠. 수백개씩 팔립니다."
지난 27일 서울 명동의 한 다이소 매장에서 기자가 'VT 리들샷 100 페이셜 부스팅 퍼스트 앰플(이하 리들샷)' 제품 구입을 문의하자 한 직원은 이같이 말하며 계산대 뒤편에서 제품을 꺼내줬다. 해당 매장은 리들샷 제품을 진열대에 두지 않고 일반 계산대에서 손님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다. 재고 관리가 어려워 내린 특단의 조치다. 매장 직원은 "진열을 해둬도 너무 빨리 팔리는 데다, 유독 이 제품만 사재기하고선 그중 일부는 계산을 안 하고 가는 손님이 많아 이런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또 다른 다이소 매장의 직원은 리들샷을 구매하는 '팁'을 일러주기도 했다. 그는 "우리 매장에 리들샷은 주로 월, 수, 금 오전 10시에 들어온다"며 "입고된다 해도 10~20개 내외이기 때문에 개점하고 30분 만에 다 나간다. 일찍 오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이소에서 지난 10월 출시한 브이티코스메틱의 앰플형 기초 화장품인 리들샷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앞서 다이소 직원이 사재기를 걱정한 것을 방증하듯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웃돈을 붙여 파는 사례도 빈번하다.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 '당근'에서는 정가 3000원에 판매하는 다이소 리들샷 제품을 4000~4500원에 판매하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리들샷이란 화장품 원료를 모공보다 얇은 미세한 바늘 형태로 가공해 원료의 체내 흡수력을 높인 로션 타입의 기초 화장품이다. 제품 내 유효 성분의 함량에 따라 100, 300 등으로 구분된다. 제품을 실제로 발라보면 로션에 미세한 가루가 섞여 있고, 이 가루가 피부를 찔러 따끔한 느낌이 든다. 다이소 측에 따르면 리들샷 제품의 초도 물량은 2주 만에 완판됐다.
이 제품이 인기를 끈 이유는 해당 제품 제조사 공식 홈페이지나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등에서 판매하는 동일 브랜드의 리들샷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이소는 리들샷 100, 300 제품을 12ml당 3000원(ml당 250원)에 판매하고 있고, 다른 판매처는 50ml에 2만8800원, 4만3000원(ml당 각각 576, 860원) 수준에 팔고 있다. 용량으로 따져보면 최대 3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난다.
다만 다이소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다이소 전용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타 판매처에서 판매되는 리들샷과 아예 동일한 제품이라고 보기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요 성분은 같지만 원료 배합 비율과 포장 용기가 다른 제품"이라며 "다른 곳에서 유통되는 제품은 유리병으로 된 펌프형 용기이지만 다이소 리들샷은 비닐 포 형태로 제작해 다이소의 균일가 정책(5000원 이하의 제품만 판매)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이를 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용감이 따끔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체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이소 매장에서 리들샷을 찾던 20대 A씨는 "공식 홈페이지의 본품과 다이소 리들샷이 다른 것을 알고 있다"며 "피부에 안 맞을 수 있으니 다이소 제품을 써보고 좋으면 3만~4만원대의 고가 제품을 구매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수도권의 다이소 매장에서 리들샷 구매에 성공했다는 60대 이모 씨는 "화장품 속 바늘이 피부를 자극한다는 점이 고가의 피부과 시술의 원리와 비슷하다는 친구의 조언을 들었다"며 "동네 다이소를 이틀에 한 번꼴로 오전에 찾아가 세 번 만에 제품을 샀다"고 전했다.
일부 매장에선 아직도 리들샷의 공급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27일 오후 서울 시내 다이소 매장 4곳, 수도권의 다이소 매장 1곳을 둘러본 결과 리들샷 제품은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품절이었다. 오랫동안 제품이 입고되지 않은 매장도 있었고, 어떤 매장은 매일 소량씩 입고되긴 하나 오전 중 모두 동나는 곳도 있었다. 반면 다이소 매장 인근의 올리브영 3곳, 직영 매장 등에선 본품의 재고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화장품의 흥행은 화장품 업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화장품 분야 카드 결제액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6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전국에서 소비자들이 개인 신용카드로 화장품을 구매한 총액은 182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첫 통계 작성(2009년 12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던 2020년 3월의 1843억원보다도 더 낮은 수치다.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보다 화장품 시장이 더욱 위축된 것이다.
브이티코스메틱의 리들샷은 저가 화장품 중심의 중소형 브랜드에겐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브이티코스메틱은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에서 전년 동기 대비 442% 성장한 143억7700만원을 기록해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냈다. 이중 리들샷 매출 비중이 전체의 32%다.
다이소와 협력한 화장품 기업의 선전 소식도 이어졌다. 클리오는 올해 3분기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인 828억1800만원을 달성했고, 네이처리퍼블릭의 '알로에 프레시 수딩 마스크 시트'도 지난 6월 다이소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냈다. 클리오는 지난해 11월부터 '트윙클 팝', 네이처리퍼블릭은 작년 12월부터 '식물원'이라는 브랜드로 다이소에서 5000원 이하의 저가형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다이소 관계자에 따르면 다이소의 화장품 분야는 기초와 색조를 통틀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작년 동기 대비 약 180%의 매출 성장을 일궜다.
수출 중심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페슬로'를 운영하는 이다영 대표는 "중소형 브랜드의 약진을 체감한다"며 "자사 매출도 지난해 대비 150% 넘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브랜드 성장 전략으로 '가성비'를 꼽았다. 그는 "원료에 공을 들이는 대신 포장재를 유리 용기에서 튜브로 변경하는 등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한다"며 "주변의 다른 소형 화장품 브랜드들도 모두 취하고 있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화장품 시장에서 저가 제품을 찾는 불황형 소비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화장품은 제조 기술력이 좋아져 제품력에 있어 큰 편차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가 브랜드의 화장품은 과시 심리가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구매 여력이 없다면 아예 '중간 가격대 제품보단 저가 제품을 써보자'라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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