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선별진료소… 최전선에 섰던 의료진들의 이야기
“ㅇㅇ아파트인데요, 어느 집에 감염자가 있는 겁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보건소에는 감염자를 색출하려는 민원 전화가 빗발치곤 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의 정체를 알지 못해 ‘같은 장소에 있기만 해도 감염이 된다’는 얘기까지 돌던 때였다. 당시 일부 의료진은 시민들의 가정에 방문해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진행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하얀 방호복을 뒤집어 쓴 의료진을 집 주변에서 맞닥뜨린 일부 시민은 두려움에 떨며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감염자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코로나19와의 사투, 그 최전선에 섰던 보건소 선별진료소가 31일 모두 문을 닫는다. PCR 검사 건수가 감소했고, 보건소 기능을 정상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선별진료소 운영 종료를 맞아 그동안 선별진료소에서 일했던 의료진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신종 감염병의 등장…불확실성과의 싸움
선별진료소 의료진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불확실성’이었다. 코로나19는 일반 시민들 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처음 접하는 감염병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의료진들은 코로나19가 어떤 감염병인지,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 한 채, 감염이 의심되는 시민들을 대면하는 업무에 뛰어들었다.
이 때 불확실성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일으켰다.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고양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한 간호사 강혜수(28)씨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감염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전파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코로나19 대응 지침도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요인이었다. 강씨는 “변화하는 방역지침을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함에 따라 방역지침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됐는데, 의료진들은 가장 최신 상황과 지침을 습득해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했다. 강씨는 “실수 없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의료진에게 공식 지침이 내려오기도 전에 외부에 유출될 때면 진상을 파악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김씨는 “실시간으로 변화되는 지침과 PCR검사 대상자의 확대·축소에 대해 정확한 지침이 (현장에) 공문으로 시달되기도 전에 뉴스를 통해 보도되곤 했다”며 “시민의 민원을 더 키우고 현장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상황에서 무더운 날씨 방호복을 입고 주말이나 밤에도 과로에 시달린 이들은 신체적으로도 무너져갔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의료진의 스트레스를 키웠다. 최씨는 “확산 초반에는 궂은 날씨에도 방호복을 입고 외부에서 몇 시간씩 검체를 채취하거나 시민들을 안내해야 해서 신체적으로 힘들었다”며 “유행기간이 길어지면서 무력감을 느끼는 데다 개인 시간이 줄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조차 없어 우울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의료진은 자신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적절한 보상 및 휴식 미제공 등에 따라 불안과 우울감을 가졌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김씨도 “부적절한 보상체계가 의료진을 더욱 힘들게 했다”고 했다. 간호직공무원은 선별진료소에서 PCR 검사 외에도 민원 대응, 행정 업무, 선별진료소 인력관리, 물품 총괄 등을 책임졌다고 한다. 김씨는 “공무원은 주말이나 밤샘 근무를 해도 특별한 추가 수당을 받지 않는다”며 “8∼9급 공무원은 주말 야간에 근무해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피로가 누적된 보건소 의료진은 일반 시민이나 다른 의료진보다 높은 우울·불안 증상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올 8월 발간한 ‘COVID19 대응 의료진의 정신건강 및 소진’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의료진 중 우울 위험군 비중은 30.6%, 불안 위험군은 15.8%에 달했다. 2021년 7월1~14일 전국 보건소와 코로나19 전담 기관에서 근무하는 코로나19 대응 의료종사자(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영상기사, 임상병리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같은 기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일반 시민의 우울 위험군은 18.1%, 불안 위험군은 12.2%로 나타났다. 보건소에서 근무한 의료진의 우울·불안 점수는 각각 8.58, 4.27로 병원 의료진(6.79, 4.27)보다 높았다.
지쳐가는 의료진에게 가장 힘이 된 건 시민들의 응원이었다. 강씨는 “지역 내 어린이집, 복지관, 부녀회, 기업체, 일반 시민 등 다양한 곳에서 응원과 함께 손편지나 간식을 보내줬다”며 “고맙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 덕분에 힘내서 근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도 “시민들의 손편지, 칭찬 한 마디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추억했다. 그러면서 “보건소 업무에 협조해주신 모든 기관과 직원들께 정말 감사했다”고 전했다. 신속항원검사 추가, 비대면 진료, 해외입국자 검사 등 정신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다른 기관과 군의 인력지원은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또한 선별진료소 근무가 의료진의 사명감을 심어줬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된 평가다. 김씨는 “시민의 감염병 예방에 기여하고 위기에 동참할 수 있었던 모든 시간들은 의료진의 추억과 사명감으로 가슴 깊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강씨도 “이전에는 보건소 위치가 어디 있는지, 어떤 업무를 주로 하는지 모르는 분이 많았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일반 시민들이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된 것 같아 보건소 간호사로서 뿌듯했다”며 “앞으로 지역사회 건강을 위해 발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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