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명예훼손 형사처벌 조항을 개혁하자
새해를 맞아 그래도 이것 한 가지만이라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싶어 다시 말을 꺼낸다. 2022년 4월 유엔 인권위가 채택한 ‘디지털시대 매체자유와 언론인 안전강화’ 보고서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제발 공직자 비리에 대한 언론의 의혹제기를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우리 법제도를 개혁하자.
요점을 분명히 하려니, 뉴스타파 2022년 3월6일자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보도와 뉴스타파가 사후 공개한 신학림 원본 녹음파일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어째서 이 보도가 논란인지 알 수 있다. 애초에 믿을 만한지 알 수 없는 김만배의 주장을 ‘그 주장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나 ‘사안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갖춘 제3자’의 확인도 없이 이리저리 잘라서 공개한 게 문제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캠프, 박영수, 조우형, 박모 검사 등에게 확인을 구했지만, 박영수 측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문자 이외에 어떤 응답도 얻지 못했다.
그저 듣고 전해서는 존경받는 언론이 될 수 없다. 사실을 잘못 짚거나 오해를 유도하는 보도는 동료 언론인은 물론 시민의 비난이나 무시를 받게 된다. 뉴스타파의 이 보도는 장래 우리나라 언론윤리 교과서에 중요한 사례들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당사자 주장 확인, 인터뷰 기사 작성, 그리고 음성자료 편집 등 취재보도 윤리와 관련해서 반복해서 비판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사는 또한 이 기사 때문에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언론사 편집국은 물론 기자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는 역사를 함께 기록할 것이다.
뉴스타파 보도 사태는 미국이라면 공정보도특권(fair report privilege)의 적용을 둘러싼 논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보도특권이란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이 방어논리로 활용할 수 있는 보통법(common law)상의 법리다. 정부활동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전체적으로 실체적 사실에 가까우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때 정부활동이란 입법부와 행정부의 공식활동은 물론 사법부 재판, 대배심, 수사과정까지 포함한다. 실체적 사실보도란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필요는 없으며, 거칠고 빠르게 요약했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사실에 부합하면 된다는 취지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검찰수사에 대한 묘사가 정부활동에 대한 보도에 속하는지, 그리고 그 묘사가 전체적으로 보아 사실에 부합하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이 선택적으로 누락해서 일면적으로 보도할 경우 이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례도 있어, 역시 판단하기 어렵다.
내 말은 이번 뉴스타파 보도에 미국 보통법상의 공정보도특권을 적용할 만한지 따져보자는 게 아니다. 정작 미국에선 1964년 이후 공직자 쪽에서 언론이 알면서 거짓보도를 했거나 무모하게 부주의로 잘못 보도했음을 입증하지 않고선 소송을 진행하기조차 어렵다. 또한 이 정권이 부산저축은행 대출사태를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면, 저 정권에선 대장동 개발사업을 보도한 언론을 털면 된다는 취지도 아니다. 요점은 명예훼손 형사처벌 조항을 근거로 어떤 정권의 검찰이라도 언론사를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가 문제란 것이다.
선거기간 중에 대통령 후보의 공직자로서의 과거 비리의혹을 보도함에 흠결이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취재보도 윤리위반에 대한 비판을 넘어 당대 권력자의 명예를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언론을 형사처벌하겠다면 과도하다. 특히 당사자인 권력자가 침묵하는 가운데 반의사불벌죄를 이유로 검찰이 수사단계에서부터 언론사를 탈탈 털 수 있도록 만든 이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모욕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허위사실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개정하고,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 면책범위를 폭넓게 유지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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