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선택적 법치와 법치의 배신

기자 2023. 12. 3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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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펑펑 내려 묵은때를 씻고 새해가 밝았는데 대한민국의 법치는 안녕한가? 법치란 모름지기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선택적 법치가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검찰이 권력자를 위한 방탄으로 추락했다. 다시 헌법을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 있다(헌법1조). 주권은 대통령 1인이나 어떤 정치적·경제적 특수계급에 있지 않다. 또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11조). 헌법은 누구는 법치의 대상이 되고 다른 누구는 법치 위에 군림하는 식의 선택적 법치가 아니라 예외 없는 법 앞의 평등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권리 보호는 물론 죄에 상응하는 처별 측면에서도 평등하고 공정해야 함을 함축한다. 무엇보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가 있다(제34조).

이처럼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법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잘 풀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치의 의미를 놓고 논란이 많다. 법치의 의미는 복합적이며 그것들은 서로 보완재가 될 수도 있고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법학자 김도균에 따르면 법치를 둘러싼 논점은 ①왜 법의 지배인가, ②어떤 법의 지배인가, ③법의 어떤 지배인가의 세 가지로 정리된다.

①은 법치란 법의 지배로서 권력자와 강자에 의한 자의적 지배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인치는 물론 법을 지배수단으로 이용하는 권력자의 통치(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②는 법이 지향하는 가치와 실질적 내용을 묻는다. 이는 법률의 실체적 내용이 기본권 보장의 헌법 이념에 부합해야 한다는 입헌적 법치주의 원칙을 뜻한다. ③은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간의 긴장관계를 묻는다. 법치란 사법부의 통치가 아니다. 공적 사안에 대한 민주적 토의와 조정이 제자리를 잡아야 하고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위의 세 가지 어디서나 법치가 비정상이 되고 선택적 법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법의 지배란 정의로워야 하며 최고권력자를 포함해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선 더욱 철저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적 신뢰, 공공선에 대한 시민적 헌신도 살아날 수 있다.

선택적 법치를 잘 보여주는 것은 재벌과 부자의 특권적 자유는 엄청 존중하는 반면 약자의 삶의 권리는 억압하고 노동의 존엄은 가볍게 무시하는 권력의 의지일 것이다. 삼성의 이재용은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룹총수직을 부당세습하고 국정농단 최대수혜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형기도 채우지 않은 채 특혜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특별사면되어 삼성전자 회장직에 복귀했다. 한편 파업노동자에 대한 회사 쪽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기 위한 ‘노란봉투법’에 대해 재계는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며 기를 쓰고 반대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노조 때려잡기에 열심인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화답했다.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도 개악될 판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3년 유예 끝에 새해 1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는데 2년 더 유예한다는 것이다. ‘천민적 선진국’의 풍경이다.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관여 의혹을 둘러싼 그간의 경과는 선택적 법치의 또 다른 생생한 사례를 보여준다.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 2월 1심 선고가 나왔는데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 등의 주가조작 거래 시기에 김건희 여사 소유계좌에서 주식거래가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최소 세 개의 김건희 명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됐다. 재판부는 주가조작 범행을 1차 시기와 2차 시기로 구분하고 1차 거래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2차 거래는 대부분 유죄라고 적었다. 유죄로 판단한 김건희 여사 명의 2차 거래에서 통정·가장매매가 48건, 현실거래가 1건이다. 이런데도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한 차례 서면조사가 전부였고 1심 선고 이후에도 검찰은 아무런 조사도, 불기소 처분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김 여사는 명품가방을 받은 의혹으로 시민단체에 고발을 당한 처지다. 고발대상에는 신고의무를 위반한 대통령도 포함된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동훈은 특검법이 총선용 악법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공권력의 사유화가 따로 없다. 새해에 이 땅의 법치는 안녕할까?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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