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일하는 사람만 바보?

박병률 기자 2023. 12. 3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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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시행되는 두 건의 비과세가 있다. 주식을 50억원 미만 보유한 투자자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하는 자녀는 부모로부터 1억5000만원까지 증여를 받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양가 합치면 3억원까지 ‘세금 0원’이 된다.

모든 감세가 그렇듯 나름 합리적인 이유는 있다. 지난해까지 주식 보유자 양도세 부과기준은 ‘10억원 이상’이었다. 이를 50억원 이상으로 올린 데 대해 정부는 “10억원 이상 주식 보유자들이 양도세를 피하기 위해 연말에 주식을 내다 팔아 변동성이 심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5000만원이던 자녀 증여세 공제한도를 결혼과 출산을 조건으로 1억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한 데 대해서는 “5000만원은 자녀들이 전세도 못 얻는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두 감세의 공통배경에는 ‘주식 10억원을 가진 게 뭐가 부자냐’ ‘5000만원 증여는 너무 작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정부는 대주주 요건 완화로 증시 변동성이 줄어들고 큰손 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내 증시에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신혼부부 증여세 완화는 혼인을 촉진시켜 결국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기대를 계량화해 제시하지는 못했다.

정부의 막연한 기대 이면에 간과한 부정적 외부효과가 있다. 금융소득과 이전소득에 대해 우대를 해준 만큼 노동소득의 가치는 또 떨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은 주로 자산과 자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부세 감세는 고액자산가에게 수천만원의 세금 부담을 줄여줬다. 법인세 감세는 대기업이 자금을 더 유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소득의 본질은 노동소득이다. 성실하게 살며 따박따박 저축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흔쾌히 일할 수 있다. 그 노동 아래 생산과 소비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 소득에 붙는 세금은 그대로다.

최근 분양한 둔촌주공 분양가는 전용 59㎡가 10억원이다. 국민평형이라는 84㎡는 13억1000만원이다. 평범한 월급생활자라면 엄두가 안 나는 액수로 ‘영끌 대출’을 하거나 복권이라도 당첨돼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국토교통부의 ‘202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5.2년을 모아야 가능하다. 1년 전보다 1년이 더 늘어났다.

아무리 일해도 ‘티끌 모아 티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일하기 싫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노동의욕을 상실한 경제주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이 되거나 현재를 즐길 뿐인 ‘욜로족’으로 남는 것이다. 투자로는 ‘코인’에, 소비로는 ‘오마카세’에 청년세대가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라도 일을 하지 않느냐”고 아무리 질타해본들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겨냥하는 다음 감세는 상속증여세다. 결혼·출산 증여세 완화를 상속증여세 전면 개편의 징검다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상속과 증여만큼 노골적인 ‘아빠찬스’는 없다.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돈으로 집을 구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 사이에는 시작부터 자산의 차가 벌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는 더욱 커져 중장년에 이르면 그 격차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에 이를 수도 있다. 노동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격차다.

자본소득도 추가 감세가 예상된다. 대주주 양도세 완화를 볼 때 2025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도 정상적으로 시행될 것이라 자신하기 어렵다.

소득세율은 몇년째 고정됐는지 모를 정도로 감세의 기억이 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득이 증가하자 소득세도 덩달아 늘고 있다. 정부가 과표구간을 일부 완화해줬다지만 큰 차이는 없다. 물가 상승으로 월급이 올라도 살 수 있는 것은 더 적어졌는데 내야 할 세금은 많아지니 생활은 더 쪼들린다. 특히 소득세 부담이 중산층에 집중된다는 것도 문제다. 중산층이 자산을 모을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비서의 근로소득세 부담이 자신의 금융소득세 부담보다 크다며 자본소득에 대한 증세를 요구했다. 그 같은 버핏세까지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기왕 있는 자산세와 자본소득세를 깎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하는 사람만 바보인가.

박병률 경제부장

박병률 경제부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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