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기자 2023. 12. 3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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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선택은 그르쳤더라도
두 번째 선택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집권세력에 기회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 기회 놓칠 때 국민들은 투표장서
냉정한 심판자가 될 것이다

새해는 ‘선거의 시간’이다. 22대 총선까지 꼭 100일이 남았다. 그때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시계는 선거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 선거제도도 확정되지 않았고 후보를 낼 정당들의 윤곽도 불분명하지만, 총선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선거가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들 고민하실 것이다. 지지 정당과 후보가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팬덤정치도, 투표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는 정치혐오도 걸림돌이다.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멈추고 변화의 방향을 미래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구태들과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해야 한다.

20대 대선 이후 각종 사건과 시비들이 줄을 이었다. 0.73%, 박빙의 승리였다지만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의 지지도는 40%대를 밑돌았고 여당 대표들은 몇 개월을 못 버티고 쫓겨나갔다. 제1야당의 대표는 다수의 범죄 혐의를 받고 검찰과 법원에 불려 나갔다. 축제에 갔던 청년들이 순식간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정부는 진상조사도, 애도의 예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여전히 국민들의 불안거리이고, 연말을 이틀 남긴 신문에는 독도를 지운 한반도 지도가 국방부 교재를 채웠다는 기사까지 실렸다.

반성과 변화가 시급하지만, 사태를 키운 장본인들 스스로 책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실망하고 분노하지만, 소통 창구를 찾을 수 없다. 극우 인사가 공영 방송을 장악하고 비판적인 기자와 방송인을 밀어내는 사이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점점 더 추락했다. 공중파 뉴스에 등을 돌린 국민들은 유튜브와 SNS에서 정보를 얻고 위로를 구하는 처지가 됐다.

선거는 이런 사태에 대한 반성과 변화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무엇을 반성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첫째, ‘캐비닛’ 정치를 끝내야 한다. ‘검찰공화국’이란 오명을 낳은 검사 집단의 권력 독점을 중단시키는 일이다. 대통령, 금융감독원장, 방송통신위원장, 여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검사 출신 엘리트들이 차지한 정부의 문제는 그들 개개인의 약점이나 욕망에만 있지 않다. 공권력 최정상에서 정보와 자원을 독점하고 모든 사안을 법적 처벌과 규제 관점에서 처리해온 검사들이 입법과 사법, 행정부의 분리와 균형을 침해할 때, 국민은 숨을 죽이고 비판 목소리는 잦아들 수밖에 없다. 비대해진 검찰통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둘째,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혐오정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성차별적 구호가 남녀를 가르고, 페미니즘은 불온사상으로 검증 대상이 된다.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를 외면하고 여당과 야당은 일반인들도 안 쓰는 막말을 던지며 싸운다. 지식인들은 ‘좌’ ‘우’로 나뉘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정치인들은 운동권 카르텔의 주범으로 폄하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이 갈등과 소통, 협상을 통해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감으로써 발전한다. 다양성과 개방성의 토양에서 상호 이해와 존중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혐오정치 속에서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셋째, ‘떡볶이 정치’가 드러낸 편향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이 떡볶이를 먹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무엇을 먹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만나는가일 것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던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 찍은 사진을 보란 듯이 올린다. 양대 노총은 멀리한 지 오래이고 노동자 가족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노란봉투법도 거부했다. 과거 같으면 ‘정경유착’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을 법도 한데, 애꿎은 떡볶이만 나무람의 대상이 되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의 미래는 위험하다.

다행히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선거를 통해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고 방향키를 다시 조정할 수 있다. 평생 피의자 조사와 처벌로 몸과 마음이 굳어져온 검사들에게 처음부터 사회적 합의나 국민과의 수평적인 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는 신이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선택은 그르쳤더라도 두 번째 선택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투표권자인 국민은 물론 심판을 받는 집권세력에도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나서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리인의 지위를 버리든 그들에게도 기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때 국민들은 투표장으로 나설 것이다. 그리고 냉정한 심판자가 될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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