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 2차전 인생 최고 경기” 19년 전 한없이 처량했던 운영팀장, 사령탑으로 LG 29년 한풀이[송년특집]
[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2004년 11월 1일. KBO리그 역사상 가장 긴 한국시리즈(KS)에서 승리했지만 웃지 못했다. 우승 확정과 동시에 비를 맞으며 부리나케 축승회를 준비했다. 직함은 팀장이었으나 팀장과 사원이 일당백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던 시절이다. 준비를 마치고 축승회가 시작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 운영팀장, 지금은 LG 트윈스 감독 염경엽 얘기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됐다. 19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우승 감독’으로 당당히 올라섰다. 2004년 KS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그래도 결국에는 11명의 감독이 이루지 못한 대업에 성공했다. 핀스트라이프 유니폼과 유광점퍼를 입은 모든 이들에게 잊지 못할 2023년 11월 13일을 만들었다.
우승 후에는 어느 때보다 바쁜 비시즌을 보내고 있다. 축하 자리가 많고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염 감독은 “참 행복한 시간이다. 나도 정말 기쁘지만 우리 LG 팬분들도 많이 기뻐해 주셔서 더 기분이 좋다”며 “사실 LG 팬들이 이렇게 많으신 줄 몰랐다. 아무래도 29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많은 기쁨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다. 긴 시간 동안 힘들어하시고 때로는 포기하셨던 팬들이 다 돌아와 주셔서 이렇게 많이 축하받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첫 우승은 아니다. 현대 시절에는 현역 선수와 프런트 직원으로, SK에서는 단장으로 KS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그래도 이번 우승이 유독 남다르게 다가온다. 자신의 꿈인 우승 감독이 된 것은 물론,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바랐던 우승을 이뤘다.
2022년 11월 LG 감독으로 부임한 순간을 돌아보며 “2년 안에 우승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승을 하지 못하면 나는 감독으로 자질이 없다고 인정하고 더 이상 감독은 없다고 봤다”며 “그만큼 LG 전력이 좋았다. 전력이 좋은 팀을 맡아 행운이었다. 이 행운을 결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고 간절하게 준비했다. 생각한 대로 우리 선수들과 우리 코칭스태프가 정말 좋았다. 우리 선수단과 하나 돼 서로 도우면서 이렇게 정상에 올랐다. 야구 인생 최고 순간을 만들었다”고 정상으로 향하는 여정을 돌아봤다.
2011년 11월 억울하게 LG 유니폼을 벗었던 순간도 이제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 됐다. LG 수비 코치였던 염 감독은 비선 실세 의혹에 시달렸다. 구단 사람들은 억측과 오해라고 염 감독을 변호했으나 그는 사표를 내고 LG를 떠났다.
“우승하니까 그때 생각도 났다”고 입을 연 그는 “그때 나는 팬에게 인정받지 못한 코치였다. 그랬던 코치가 감독으로 돌아와 인정받는 우승을 이뤘다. 우승 후 팬들께서 이름을 연호해주시는데 기쁨과 고마움이 함께 몰려오더라. KS 5차전 승리 후 잠실구장을 가득 채워주신 우리 팬분들의 함성이 지금도 뜨겁게 남아있다”고 밝혔다.
가슴 깊은 곳에 자리했던 상처도 사라졌다. 2004년 KS 우승 후 흘린 한 맺힌 눈물이 정상에 오르는 출발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염 감독은 현대 운영팀장이었다. KS 9차전 빗속 혈투 끝에 현대가 승리한 순간 그는 꽉 막힌 도로를 뒤로 하고 비를 맞으며 축승회 장소로 뛰었다. 온몸이 비에 젖은 채 가까스로 축승회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은 여러분입니다’는 플래카드를 붙이는 순간, 눈물과 함께 축승회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염 감독은 “그 문구를 보니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이게 내가 가는 길이 맞나?’고 되물으면서 아무도 없는 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이대로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감독을 바라보진 못했지만 더 좋은 야구인이 돼 당당히 우승을 이루고 우승을 즐겨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번에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우승을 이뤘다”고 밝게 웃었다.
우승 과정에서 최고 경기를 묻자 KS 2차전를 꼽았다. 과감하게 선발 투수를 1회에 내리고 불펜 총력전을 펼치면서 시리즈 흐름을 바꾸는 대역전극을 완성한 경기다. 지난 4년 동안 LG를 괴롭혀온 ‘큰 무대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뒤집은 경기이기도 하다.
“키포인트는 2차전이었다. 최악으로 향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2차전을 잡아낸 게 정말 컸다. 우리 중간 투수들이 큰 무대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중간 투수 7명이 8.2이닝 무실점을 합작한 순간을 돌아본 염 감독은 “2차전은 이번 KS는 물론 내 감독 인생에서도 최고 경기다. 나와 우리 선수단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경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3년 우승이 2024년 우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29년의 염원을 이룬 게 다음 우승을 향한 자신감이 된다.
염 감독은 “올해 우승은 마지막이 아닌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KS 우승 후 팬들께도 내년과 내후년을 말씀드렸다”라며 “올 한해를 통해 우리 LG가 어떻게 가야하고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렸다고 본다. 나도 성장하고 우리 선수들도 성장하는 자양분을 얻은 2023년이었다. 2024년에는 더 높고 크게 뻗어나가겠다”고 LG 구단 최초 연속 우승을 응시했다.
LG 통합 우승은 스포츠서울이 선정한 2023년 10대 뉴스 1위로 선정됐다. 취재진과 편집부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정규시즌 우승을 1면으로 내세운 10월 4일자 신문부터 독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KS 우승 소식을 특집으로 다룬 11월 14일자 신문은 새벽부터 동이 났다. 29년 갈증을 푸는 모든 과정에서 스포츠서울은 야구팬들과 함께 박동(搏動)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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