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와 '아싸' 건축가 [조진만의 건축탐험]
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스타그램은 현재 세계적으로 20억 명, 국내 사용자 2,000만 명을 자랑하는 거대 소셜 네트워크이다. 인스타그램은 오늘날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건축을 보는 방식에서부터 전문가인 건축가가 건물을 디자인하는 방식까지 바꾸었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대중이 건축을 접하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하거나, 비싼 작품집을 구입하는 등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안의 휴대폰만으로 세계의 건축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건축이 보다 우리 일상에 친숙해졌다.
요즘 건축가는 주어진 예산 속에서 잘 기능하도록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인싸 건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표현 방식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건축가를 위한 인스타그램 전략'이라는 책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장한 신조어인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은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며, SNS 게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할 만큼 매력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인싸 레스토랑이 되기 위해 셰프가 정작 음식의 맛보다 인스타그램에 잘 어울리는 공간 분위기에 더 신경 쓰는 것을 경험할 때면 본말전도를 당한 느낌이다. 인싸 건축에 혹해서 사진을 보고 직접 가보면 기대와는 달리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도 마찬가지로 점차 공간의 섬세한 맥락이나 사회적 의미는 희석되고, 찰나에 시각을 자극하는 화려함·독특함과 같은 표피적 취향으로 인싸 건축이 유행하고 있다. 요즘 인싸 건축의 대표 격인 카페 건축과 스테이 건축이 범람하는 것은 독특한 한국만의 현상이다. 나도 이번에는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아싸로 도태될까 봐 곁눈질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때론 흠칫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래머블에 환호하는 현대인은 마치 유목민이 한곳의 목초지를 고갈시키면 다른 목초지로 이동하듯이, 취향 사이를 오가며 이를 소모하고 휘발시킨다.
이것은 아싸 건축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는 20세기 전반, 당시 유행하던 국제주의나 모더니즘 건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아싸였던 루이스 칸(1901~1974)은 50세까지 한 채의 건물도 완성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칸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인류 건축사에 있어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34세에 자신의 첫 설계사무소를 개설하였으나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생활을 유지했다. 49세에 우연히 미국 아카데미의 지원으로 가게 된 로마에서 고전에 몰입한다. 그 시대 대세였던 모더니즘이 부정한 역사로의 회귀를 통해 오히려 그는 독자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칸의 그랑투어라 불리는 이 용기 있는 일탈이 그가 동시대와는 획을 긋는 작품들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마침내 50세에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명작 예일대 아트갤러리(사진) 설계에 착수한다. 73세까지 왕성하게 공사현장을 감독하다가 기차역에서 급사한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빚어낸 건축은 모두 주옥같은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21세기 건축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자하 하디드와 프랭크 게리도 실은 오랜 기간 아싸였다. 하디드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종이건축가라 불리며 초기 10년간 완성작이 전무하였다. 게리는 당대 건축계와 어울리지 못하고 자유분방한 예술가들 주변을 맴돌면서 직관적인 예술적 방법으로 당대 건축과는 판이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였다.
이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수에게 괴짜 취급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다수의 생각과 취향에 휩쓸리지 않을 때, 고유한 상상력과 생명력이 발휘되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생긴다. 본인이 아싸라고 느껴진다면, 곁눈질하지 말고 아싸로 존재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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