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운동권 청산' 강조하다 검증 놓쳤나…역사관도 논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선택한 동료시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 연설에서 취재진의 눈길을 끈 단어 가운데 하나가 '동료시민'입니다. 13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동료시민'이란 단어만 10번 언급됩니다. 동료시민(fellow citizens)은 고대 로마에서 먼저 쓰인 용어입니다. 미국에선 링컨, 케네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할 때 쓰였는데, 각 개인이 평등한 주체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국민이 아닌 '동료시민' 단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모든 사회를 구성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연대 동료의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국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닌 연합 혹은 동반자의 성격으로 보겠다는 다짐인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비정치인 위주로 비대위를 구성하겠다고 앞서 공언했고, 약속대로 비정치인이 많이 배치됐습니다. 비대위원들도 동료시민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만 일반 동료시민과 다른 점은 한 위원장과 함께 집권 여당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선택된 동료시민'라는 것입니다.

한 위원장도 '누가 비대위원이 되어야 하느냐', 달리 말해 '누가 선택된 동료시민이 되어야 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한 바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여러 자기 땀 흘려 돈 벌고 가족을 보호하고 동료시민에 대한 선의를 가진 분들을 상징하는 분들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땀 흘려 돈 벌고, 가족을 보호하고'는 전문성, '동료시민의 대한 선의'는 희생과 봉사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대위원들의 이력을 보면 회계사, 의사, CEO, 시민단체 대표 등 다양합니다. 각자 분야에서 성과를 낸 상징적인 인물들입니다. 전문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업을 제쳐두고 비대위원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희생하고 봉사할 각오도 돼 있습니다.
 

운동권 청산에 초점 맞추다 놓친 것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는 출발부터 '스크래치'가 났습니다. 민경우 비대위원이 과거 여러 발언이 논란이 된 끝에 임명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퇴했습니다. 민 비대위원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공언한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의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한 위원장은 민 비대위원을 소개해면서 "기득권층으로 변한 운동권의 특권 정치 청산에 앞장서주실 분"이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작도 못해보고 과거 발언에 발목이 잡혀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민 비대위원은 서울대학교를 다니며 학생 운동에 투신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두 번이나 구속됐습니다. 이후에도 진보 진영에서 광우병 쇠고기 집회 등에서 활동했지만, 운동권 세력에 등을 돌리고 보수 진영에서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주장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바르고 건강한 신념을 가진 게 아니라면 아무리 선의라해도 동료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을 겁니다.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을 외치려면 자신부터 올바르고, 건강한 신념을 가져야 지적할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민경우 비대위원의 역사 인식

역사를 대학에서 전공하면 필독하는 도서 가운데 하나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입니다. 책에서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절대주의 역사관'과 그렇지 않은 '상대주의 역사관'이 있습니다. E.H.카는 정답이 있는 역사도 있고, 정답이 없는 부분도 있다고 주장하는 중간 입장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한 겁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 수업 시간에 소위 '절대 연도'를 달달 외우는 일에 시간을 할애했다면, 대학교 전공 수업에서는 문헌과 유물·유적을 근거 삼아 타당한 해석(끊임없는 대화)을 하는 데 더 치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 가지 해석을 두고 맞다, 틀리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역사를 공부할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역사학이란 학문적 특성 때문에 과거에 크게 불거진 논란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했던 한국사 국정교과서입니다. 당시 역사학계가 크게 반발했습니다. 역사란 학문은 절대적인 한 가지 잣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교과서 집필진들의 시각을 선택권이 없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국정교과서 추진 전에는 출판사별로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교육부로부터 검증을 받는 검정교과서 체제였습니다.

민 비대위원의 식민지 관련 발언도 앞서 말한 기준에 따르면 맞다, 틀리다 단정할 수 없습니다. 민 비대위원이 일제강점기 시절을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민 비대위원의 역사 인식이 비판받는 것은 동료시민을 이끌어갈 만큼 올바르고, 건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 비대위원의 문제 발언은 대안연대 유튜브 계정에 게시된 두 편의 콘텐츠(2021년 8월 30일, 2022년 11월 3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민 지배 옹호성 발언이 담긴 콘텐츠(2021년 8월 30일)는 논란이 불거진 뒤 비공개 처리 됐습니다.

▲ 민경우 비대위원

① 민경우, 식민지근대화론 찬성하나?

민 비대위원은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을 바탕으로 제작된 '봉오동 전투' 감상평을 말하면서 유럽의 제국주의를 언급합니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힘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 또는 이를 의도하는 이념을 일컫습니다.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민 비대위원은 이러한 제국주의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민경우 비대위원 (2021.8.30. '주사파식 민족주의의 끝판왕! 봉오동 전투'/대안연대 유튜브)

"제국의 청년들이 이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잖아요. 그 대표적인 게 영국이죠. 영국의 청년들이 그러니까 일단 인도니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니 이런 데 가잖아요. 그랬을 때 상당히 그 정예 일꾼들이 가요. 굉장히 우수한 청년들이 거기 가서 영국 제국주의에 뭘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아는 사람 케인스니 뭐 이런 사람들 보면 앨런 튜링 이런 사람들 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뭐 태어나고 이런 게 다 그런 거죠. 영국의 청년들도 그랬고 그다음에 독일의 청년들도 그랬을 거고. 러시아도 그랬을 거고. 일본의 청년들이 그랬을 거죠"

유럽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를 개척을 말하며 일본의 청년도 그랬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일본이 주변 나라를 식민지화 한 것이 개척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역사학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 가운데 하나입니다. 양측의 주장이 5대 5라고 할 순 없습니다. 일부 극우 역사학자, 경제학자들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반박하는 구도입니다. 반대 역사학자들은 '수탈'이었음을 강조합니다. 통계만 놓고 봤을 때 쌀 생산량이 늘어나고 국가 기반 시설이 확충되지만 그 열매가 모두 일본으로 귀결됐었던 사실과 진실을 강조합니다.

민 비대위원은 또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예까지 언급하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발언도 합니다.
 

민경우 비대위원 (2021.8.30. '주사파식 민족주의의 끝판왕! 봉오동 전투'/대안연대 유튜브)

"도요토미 히데요시니 뭐 옛날에 일본이 임진왜란 이후에 그 한반도나 대륙이나 이런 것들을 경영하려는 거대한 구상을 생각하면서,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했던 건 있는데. 그런 고뇌와 그런 생각들도 많이 영화를 통해서 좀 담았으면 좋겠어요."

② 민경우, 김구 등 독립운동가 신화화 지적?

민 비대위원은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면서 홍범도 장군이 과도하게 영웅화 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 술 더 떠 신화화 돼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신화는 단어 뜻 그대로 허구입니다. 실재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단군신화'라고 칭하는 이유도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됐다는 것을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 비대위원은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김구 선생까지도 신화화된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지적합니다.
 

민경우 비대위원 (2021.8.30 '주사파식 민족주의의 끝판왕! 봉오동 전투'/대안연대 유튜브)

"약간 신화화죠. 신화화. 그러니까 홍범도를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홍범도를 그러니까 1920년대에 만주 지역을 했던 독립군의 한 사람으로 묘사할 수도 있는데 근데 지금은 완전히 한국 무장투쟁 독립운동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묘사했잖아요. 그런 묘사들이 너무 많아요. 홍범도도 그렇고 김좌진도 그렇고 전부 다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이어진 독립운동 김구도 그렇고 김원봉도 그렇고. 그러니까 독립운동 전체를 극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묘사들이 반복해서 이어지는데"

③ 민경우, 동학농민운동 정신 비하?

민 비대위원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저항의 역사 위주로 꾸려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문명사 위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1894년 있었던 동학농민운동을 '농민 아저씨들의 되지도 않는 싸움' 이라고 말합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저항의 역사를 서술할 때 이를 두고 혁명, 쿠데타, 운동, 난 등 이름을 붙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은 같은 경우 '동학난'이라고 과거에 칭해진 적이 있지만, 지금은 대체적으로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난과 운동의 차이는 저항하는 주체가 공유하는 일정의 정신이 있느냐 입니다. 동학농민운동 세력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이란 정신을 공유한 만큼 '운동'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민경우 비대위원 (2022.11.3. '한국의 역사인식'/대안연대 유튜브)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 같은 농민 아저씨들 이게 무슨 되지도 않는 싸움하는 거 그게 막 그냥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열심히 배웠던 사람들.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거지. 그게 문명사지. 그래서 말이 되는 상황인 것 같아.

④ 민경우, 반일 감정은 여론 조작?

민 비대위원은 국내에 뿌리내린 반일 감정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여론 조작'이 됐을 수 있다고 의심합니다. 1970년 대 이전에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민경우 비대위원 (2022.11.3. '한국의 역사인식'/대안연대 유튜브)

"내가 볼 때는 이게 대표적인 여론 조작일 수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1917년생이고 어머니가 31년생이셔서 일제시대를 생생히 경험하신 분인데. 그러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는 일제에 대한 나쁜 감정을 거의 갖고 계시지 않으셨어"
"1970년대에 감정적인 그리고 그게 1970년대 이전의 어른들은 정치적인 반일 감정을 나는 안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발언으로 낙마한 인물로는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가 있습니다. 문창극 당시 내정자는 2014년에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됐지만, 지난 2011년 "일제 36년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말한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불거진 끝에 사퇴했습니다.
 

민경우 비대위원의 입장은?

민경우 비대위원은 앞서 논란이 된 노인 비하 발언에 대해서는 즉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촬영된 영상 안에서도 바로 사과를 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식민지 관련 발언 등 자신의 역사 인식과 관련해서는 별도 입장이 없습니다.

민 비대위원은 12월 29일 비대위원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한참 동안 국회 본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두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만났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입장, 본인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에 찬성해서 말을 아낀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취재진에게 갑자기 둘러싸여 말을 하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말을 아낀 것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입장을 묻기 위해 따로 전화도 수차례 걸어봤지만, 취재에는 응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동훈의 비대위, 중도층 포섭은?

▲ 한동훈 비대위원장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 전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중수청' 지지율 반등입니다. 중수청은 중도, 수도권, 청년을 일컫는 줄임말입니다. '중수청'의 지지 없이는 총선 승리는 불가합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 이후 운동권 특권 정치 등을 내세우며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점은 자신의 보수 선명성을 분명히 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다음 총선 때 국민의힘에 표를 줄지 말지 정하지 못하고 있는 중도층과 무당층, 수도권, 청년들의 마음을 어떻게 살지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민경우 비대위원의 사퇴로 과거 발언 논란은 일단락됐습니다.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지만, 중도층 포섭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앞으로는 남은 비대위원들이 동료시민을 향해 무슨 말을 던질지 고민해야 하고, 리스크 관리도 필요합니다. 한 번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 '정치인이 되면 다 똑같구나' 라는 실망감으로 되돌아옵니다. '중수청' 동료시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박찬범 기자 cbcb@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