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위의 이스라엘과 ‘탈식민화’에 대한 관점 [세계의 창]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유대인 집단학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이스라엘을 옹호한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의 발언을 보면 집단학살 서사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언급하며 “아말렉이 한 짓을 기억하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말렉은 구약성서에서 신이 이스라엘 민족에 전멸시키라고 명령한 민족이다. 종교적 근본주의로 집단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최근 “우리는 큰 고통과 국제적 압력에 직면했지만,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국제사회 지지가 없어도 하마스를 끝까지 제거하고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의 포로가 되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아랍 이웃들과 상호 이해를 이루지 않으려는 것은, 화산 위에 건물을 지으면서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일 뿐이다.
네타냐후의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비군사화 발언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12월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비무장화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군사적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탱크와 총으로 죽이는 행위를 우크라이나 비군사화 작전이라고 한다.
물론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같지 않다. 팔레스타인은 타협이 유일한 탈출구지만,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때까지 버틸 권리가 있다. 그런데 지난 2년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독립운동과 제3세계 탈식민화 과정의 관계를 무시한 채 서구 열강에만 공을 들여왔다. 이제 서방이 지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탈식민이라는 주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탈식민은 원래의 땅과 삶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하마스의 폭력을 실제 탈식민화의 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이 있는데, 이는 여러가지로 문제적이다.
첫째, 이스라엘 국가를 팔레스타인 영토를 식민화한 결과라고 보는 것은 안일하다. 나는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모두 그곳에 살 권리가 있다고 보았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의견에 동의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전쟁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사이의 연대에 있다. 많은 이가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지금이야말로 68년 혁명의 구호였던 ‘현실을 직시하되 불가능을 요구하라’를 되살려야 할 때다. 군사력을 통해서만 중동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더 위험한 생각이다.
둘째, 탈식민화는 종종 다른 어떤 과정을 의미한다. 여러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서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부패한 사회 질서가 들어서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 격차가 오히려 더 커졌다. 이들 국가에서 ‘탈식민화’는 또 다른 지배계급의 출현을 가리키는 은유였다. 지난여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한 활동가는 요즘 가난한 흑인들 사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차별받고 살던 그 시절 흑인들의 생활수준이 지금보다는 높았고 치안도 보장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백인이 이런 말을 한다면 당연히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좌파가 하지 않으면 우파가 할 것이다. 다음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탈식민”을 좇으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마오쩌둥이 말한 대로 혁명은 저녁 만찬이 아니지만, 혁명을 이루고 보니 먹을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마스와 관련하여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마스가 전쟁에서 패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하마스가 살아남아 가자지구를 계속 통치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해방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가자지구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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