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미래] 새해 ‘뭔가 안 할’ 쉬운 결심
박성원 |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2024년 새해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계획해보자.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지금까지 했던 일을 좀 더 잘하려는 욕심은 접어두자.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서 몇가지를 골라 새해부터는 하지 말아보자.
그렇다고 일상을 멈추자는 뜻은 아니다. 지난해보다 좀 더 느리게 가자는 것이다. 잡다한 일을 조금 덜어내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는 한해로 삼아보자.
우선, 세상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주제에 무관심해지자. 예컨대 인구감소 문제. 당신은 인구감소에 책임이 없으니 무시하시라. 인구감소는 한국 사회의 인간에 대한 멸시와 모욕, 혐오와 차별이 켜켜이 쌓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니 이런 짓을 벌인 사람들만 반성하면 될 일이다.
당신이 대기업 노동자라면 다른 기업 노동자들과 비교해 실력의 초격차를 유지할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올해는 그러지 말자. 연구개발로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면 몰라도 중소 하청업체의 생산단가를 후려치는 방식이었다면 올해는 그만두자. 제조분야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이 지난 20년 동안 지속해서 감소해 절반까지 하락한 이유를 찾아보라. ‘쇳밥일지’의 저자 천현우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월급 200만원은 ‘통곡의 벽’이라고 했다.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해도 200만원을 넘기기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청년 정치인들이라면 출마 계획을 접는 것이 좋겠다. 지역의 가장 밑바닥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봤자, 양대 거대 정당은 ‘명사’ 영입에 열 올릴 뿐 열심히 일한 당신을 중앙정치의 무대로 끌어올릴 생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운이 좋아 청년 정치인으로 국회에 들어와도 당신이 새롭게 할 일은 없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만의 독특한 창작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가난한 예술인이라면 올해도 안정적인 삶을 바라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대표 사업인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의 경우 선정되면 연간 300만원을 받지만 격년으로 신청해야 한다. 매번 운 좋게 선정되어도 한해 고작 150만원을 받는 셈이다. 이마저도 경쟁률이 높아 선정 요건을 갖춰도 떨어진 예술인이 느는 추세다(국회입법조사처, 예술인 복지사업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2023년). 예술인 월평균 소득은 147만원에 불과해 상당수가 경제적 상황이 매우 취약하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예술인 복지법 개선을 위한 논의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환경활동가라면 그 걱정을 멈추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걱정이 불안으로, 불안이 공포로 확대되고, 공포는 당신을 매우 우울하게 하거나 폭력적 성향을 보이도록 부추길 것이다.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를 막는 첫 과제로 2030년까지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대로 간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연평균 온도 1.5도 상승 시기를 계속 앞당기고 있는 것이 증거다. 2030년까지 해마다 실망이 누적되면서 인류는 2040년도, 2050년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워보자. 기후위기는 스르르 없어질 것이라고.
낡은 것들은 꾸역꾸역 버티고 앉아 있고,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날 기미가 없는 때에는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결심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렇게 줄이고 덜다 보면 기회가 오고, 그때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발산해보자. 그때는 제발 기존에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장기적 시각에서 좌우와 앞뒤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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