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영천 국민보도연맹 조사관 해임 요구
‘허위출장보고’혐의…27일 징계위는 10일 속행키로
“중징계 과하다”조사관 24명·유족 78명 탄원서 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ㄱ조사관이 최근 ‘허위 출장보고’ 혐의로 해임 요구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출장 건수의 20%가 애초 계획과 결과 보고가 달라 ‘조사 자체를 허위로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허위 보고의 ‘고의성’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최종 징계 결정은 연기된 가운데, 이 조사관이 담당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의 유족들은 “해임은 과도하다”며 이례적으로 탄원서를 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7일 고등징계위원회를 열고 내부 감사 결과 비위가 확인된 6명을 심사했지만, 2명에 대해서만 징계 수위를 확정하고 ㄱ조사관을 포함한 4명에 대해서는 징계 결정을 연기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다음 징계위원회는 2024년 1월10일 열릴 예정이다.
징계위에 회부된 조사관들 중 ㄱ조사관은 유일하게 해임 요구까지 받으면서 징계 사유에 관심을 모았다. 통상 금품 수수나 폭행 등 중대한 형사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공무원 해임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상으로는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중과실이거나, 비위의 정도가 약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 직권남용으로 타인 권리침해 등’의 경우 파면이나 해임에 처할 수 있다.
감사 결과, ㄱ조사관은 출장 일정 계획의 20%와 다른 결과 보고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 ㄱ조사관은 “출장에 돌발 상황 등이 생겨 일정이 바뀐 부분을 보고 과정에서 반영하지 못했을뿐 조사를 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감사 담당자는 “단순 날짜 오류가 아니라 조사도 허위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징계위 당시 감사를 총괄한 운영지원과 쪽에서 주장한 허위 보고의 고의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징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는 ㄱ조사관이 맡았던 사건과 감사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ㄱ조사관은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영천 사건)을 비롯한 경북 지역 한국전쟁기 사건을 조사해왔다. 영천은 지난 10월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일부 희생자를 ‘부역자’로 몰아 진실규명 결정을 보류했던 지역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희생자 문경·영천유족회원 78명과 내부 조사관 24명 등 총 102명은 ㄱ조사관에 대한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영천유족회는 회원 16명이 연서명한 탄원서에서 “(ㄱ조사관은) 신청인과 참고인 개인사정으로 조사를 받지 못할 때에는 조사관이 직접 병원 입원실, 요양원, 교통이 어려운 오지 마을을 차량으로 출장조사를 왔다”며 “선처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김만덕 영천유족회장은 한겨레에 “탄원서를 낸 뒤 진실화해위 쪽으로부터 탄원서 제출 경위를 묻는 전화를 두번 받았다”고 말했다.
영천 사건은 김광동 위원장이 지난 10월10일 해당 지역 유족회장을 만나 “전시에는 재판없이 죽일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해 ‘망언’ 논란을 불러일으킨 곳이라는 맥락도 있다. 한 조사관은 “ㄱ조사관이 잘못한 것이 분명 있겠지만, 실제보다 악의적으로 보고서가 작성된 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감사를 총괄한 김민형 운영지원과장은 지난 29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ㄱ조사관의 경우 출장을 고의적으로 악용한 사안으로 해임 처분이 충분히 적절하다”며 “전 직원의 출장기록을 모두 검토했고, 위원장에게는 감사 계획과 결과만 보고했다”며 감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검찰과 경찰 인력 4명을 파견받아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24일까지 한달간 감사를 진행해 12월15일 9명에 대해 징계 요구(7명 근신·감봉 등 경징계, 2명 정직·해임 등 중징계)를 한 바 있다.
※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10월31일 진실화해위 제65차 전체위에서 6명의 희생자가 진실규명 보류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의 경우 부역혐의 희생이 아닌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희생자를 부역자로 판단하는 사례가 되어가는 중이다.
‘부역자’는 통상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이들에게 협조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진실화해위에서 ‘부역 혐의자’는 즉결처분 당한 희생자를, ‘부역자’는 법원 재판을 통해 부역 혐의가 확정된 주민을 가리켜왔다. 부역자 처리지침을 만든다는 건 당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즉결처분 당한 ‘부역 혐의자’ 중 누가 ‘부역자’인지 진실화해위가 판정해 진실규명 여부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져 반발을 사 왔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리스크’,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이낙연, 이번주 창당 선언…‘원칙과상식’도 탈당 저울질
- 한동훈의 ‘비밀주의’가 비대위원장 첫 인사 실패 불렀다
- 이선균 사적 통화 보도한 KBS “사회적 관심 커…반론 충실했다”
- ‘성범죄 의사’ 5년간 800명 육박…수술실 CCTV 촬영은 눈칫밥
- ‘원룸 화재’ 5살 숨져…아빠가 이사할 집 청소하러 간 사이
- [새해 달라지는 것] 0∼1살 부모급여 70만→100만원
- 초유의 ‘무허가 지상파’ 되나...김홍일 방통위, 출범 이틀 만에 말 뒤집기
- 김정은 “언제 가도 통일 안돼”…남북관계 근본 전환 공식화
- [단독] “공수처는 괴물” 김태규 또 최다득표…공전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