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커플놀음 없이 가능한 웃음의 ‘난장’…물려받을 자 누구인가[위근우의 리플레이]
주우재의 눈물샘이 또 터졌다. 지난 24일 방송된 <KBS 연예대상>에서 KBS <홍김동전>으로 쇼·버라이어티 부문 우수상을 받은 주우재는 <홍김동전> 멤버들과 스태프들을 호명하고 감사를 전하며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여타 예능에서 반쯤 시크하고 반쯤 깐족대는 캐릭터를 보여주던 그의 눈물이 누군가에겐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홍김동전> 시청자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3월 그가 아버지의 손편지를 받고 울었던 에피소드는 대놓고 당사자와 시청자들의 눈물을 뽑아낼 작정으로 만든 기획이라 치자. 5월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토크 버스킹에선 자신의 첫인상에 대해 “빛났다”고 말해주는 김숙의 말에 바로 눈물을 글썽였고, 최근 방영분에선 프로그램 팬들이 보내온 팬레터 중 초등학생 저학년 시청자의 첫 예능이었다는 내용에 본인 조카의 첫 예능을 상상하며 눈물이 고였다. 주우재는 유독 <홍김동전>에서 무방비 상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최근 폐지가 확정된 이후 프로그램의 팬덤에서 시청자 게시판이나 커뮤니티, 심지어 트럭 시위를 통해 폐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와도 상통할 것이다. 출연자들이 마음을 열어 자신의 프로그램을 사랑하고 즐거운 공동체를 형성할수록, 시청자 역시 이 세계에 동참하고 소속감을 느낀다. 한국 예능의 분기점인 MBC <무한도전>이 그러했고, 사이즈는 훨씬 작지만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전성기가 그러했으며, MBC <나 혼자 산다>의 몇몇 성공적인 에피소드에서 그러했듯. 이것은 예능으로서 결코 흔치 않은 미덕이다. 그렇기에 사뭇 더 아쉬운 폐지 소식이다.
폐지 소식을 전후해 이미 많은 기사들에서도 지적했듯 <홍김동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지표를 보여준다. 시청률은 1퍼센트를 살짝 넘기는 수준이지만, 지상파 콘텐츠 기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웨이브에선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특히 시청률 대비 2049세대 시청률 지분이 높다. 자발적으로 프로그램 팬카페가 개설되고 커피차 선물이 오는 것에 대해 멤버들이 자부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낮은 시청률에 전전긍긍하는 양가적 모습은 <홍김동전>의 기묘한 정체성이다.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래서 단순히 현재 우리가 재밌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을 빼앗지 말아 달라는 요구만은 아니다. 시청자의 눈에 KBS는 잠재력과 향상심을 갖춘 2년 차 선수에게 많은 출장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미래 가능성보단 당장의 누적 성적만 보고 방출을 결정하는 프로야구 단장에 가깝다. 시청률이 TV라는 고령화된 매체에만 특화된 지표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니 낮은 시청률만으로 폐지를 결정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는 팬들의 비판은 꽤 정당하다. 과연 이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 청원에도 불구하고 폐지 결정은 돌이켜지지 않고 멤버들도 연말 시상식과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둔 만큼, 아쉬움을 부여잡기보단 <홍김동전>이 지니고 있던 미래적 가능성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그 유산을 이을 수 있을지 구상하는 것이 더 나은 송별의 방식일 것 같다.
출연자 조합·관계성 ‘차별점’ 뚜렷
홍진경·김숙, ‘정서적 안전망’ 마련
남자 멤버들은 ‘하남자’ 마다 안 해
기존 예능 ‘패거리적 끈끈함’ 해체
자발적 참여·리액션 연쇄 반응으로
윤리적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어
고령화된 지표 ‘시청률’ 따른 폐지
미래 가능성 아닌 누적 성적으로
오래 이어갈 조합의 동력 끊은 셈
지표들의 충돌도 그렇지만, 형식과 팬덤의 연령이라는 면에서도 <홍김동전>은 어딘가 모순적이다. 스스로를 신개념 예능의 대척점에 있는 ‘구개념 예능’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홍김동전>의 동전 던지기로 운명을 정하는 복불복 시스템에선 KBS <1박2일>의 초창기 야생의 정서를, 제작진의 다양한 과제 앞에서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에선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표방하던 시절의 <무한도전>이 연상된다. 유행은 돌고 도니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다시 구시대 리얼 버라이어티의 웃음이 신선하게 먹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명백히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출연자의 조합과 관계성이다. <홍김동전>의 두 축인 홍진경과 김숙의 조합은 전형적인 리얼 버라이어티 메인 진행자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프로그램 내 가장 연장자지만 서열이나 카리스마로 그룹을 이끌기보다는, 여유를 잃지 않는 좋은 선배이자 누나로서 정서적 안전망을 만들어준다. 이들이 만든 안전한 기분 안에서 조세호와 주우재, 장우영 남자 멤버 셋은 제작진의 자막을 빌리면 ‘하남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드센 누나들 때문에 기 못 펴는 척 불쌍한 남자 후배 연기를 하거나 여성 선배를 만만하게 보고 뻗대는 흔한 시건방짐을 보여주기보단, 철없이 어리광부리는 오합지졸로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망가지고 실수한다. 남성끼리만 모였을 때의 서열 놀이와 패거리적인 끈끈함이나, 남녀가 모이면 기어코 가상의 커플을 만들거나 외모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존의 예능 구도는 해체된다. 남녀 출연자가 남성 중심적, 이성애 중심적 세계관에 포섭되지 않고도 공존할 수 있고, 이러한 조합을 통해 서열과 캐릭터 분업에 의한 목적 지향적인 진행 없이 서로의 자발적 참여와 리액션의 연쇄반응으로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홍김동전>이 찾아낸 중요한 가능성이다. 매 회차 제작진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구개념 예능’이라는 형식이 부담 없이 낄낄대며 볼 수 있는 유쾌한 난장판이라면, 이들 다섯 멤버의 편안한 관계성은 비교적 윤리적 불편함이나 의구심 없이 이 난장을 즐길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만들어준다.
더 좋은 건, 이러한 조합이 끊임없는 내적 동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출연자들끼리 편하고 즐겁다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홍김동전>의 팀워크가 인상적인 건, 서로가 서로의 동기가 되어 서로를 웃기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화제성이 높았던 수저게임 에피소드에서 그들은 승리를 위한 전략적 행동을 하거나 방송 분량을 만들기 위한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서로를 어떻게 골탕 먹이고 다 같이 왁자지껄 놀 수 있을 판을 깔지 더 골몰한다. 프로그램 내 공식 지니어스 주우재는 자신의 설계로 판을 흔들 생각에 미리 설레고, 장우영은 승패보단 자신의 복수가 중요하며, 게임 최약체인 홍진경은 바뀌는 상황마다 오만함과 비굴함을 오간다. 앞서 <홍김동전>이 종잡을 수 없는 지표를 보여준다고 했지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건, 시청률은 낮지만 내적 동기와 동력이 여전히 충만하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예능의 시청률 하락은 내적 동력의 하락과 궤를 같이하기에 외부 자원을 투입해 생명을 연장하다가 폐지 수순을 밟는다. 반면 <홍김동전>은 멤버들이 끊임없이 서로 간 화학작용을 통해 계속해서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형식의 자유로움 덕이기도 하지만 조세호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보다 이곳에서, 주우재가 MBC <놀면 뭐하니?>보다 이곳에서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더 자주 웃고 더 자주 글썽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말하자면 KBS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자가발전이 가능한 아크 원자로를 조합하고도 당장의 퍼포먼스만을 기준으로 동력을 끊어버린 셈이다.
주우재가 ‘또’ 울었던 <KBS 연예대상>에서 KBS <개그콘서트> ‘데프콘 어때요’ 코너로 베스트 아이디어상을 수상한 신윤승은 소감 말미 “KBS도 바뀌어야 한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맞다. KBS도 바뀌어야 한다. 다만 그것이 2023년에도 데프콘 닮은 여성의 외모를 놀리는 개그의 방향, 혹은 신윤승 스스로 <개그콘서트>에서 말했듯 새우 과자를 새우깡으로 말하고 여러 표현의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KBS, 그리고 지상파 예능이 바뀌어야 할 방향성은 시상식 당일 최고의 프로그램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던 <홍김동전>에서 더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남녀가 함께하되 여성 멤버가 중심을 잡는 프로그램, 홍진경의 데뷔 30주년을 웃음과 감동으로 기념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 각 멤버들이 이십대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프로그램, 왕년의 짐승돌이 얼굴에 일자눈썹과 수염, 점을 그려 제작진을 웃기는 프로그램, 여성 체육인들에게 남성 출연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프로그램이 동일한 타이틀이라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과연 이 유산을 물려받을 이는 누구일까. 당장은 이게 얼마나 귀한 유산인지 이해시키는 것부터가 우선인 것 같지만.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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