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캠퍼의 고독과 철학, 순백의 숲으로 부활하라”
2014년 3월, 야산에 생강나무꽃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산수유꽃과 똑같아 구별하기 어려운 꽃을 선생님은 대번에 알아보셨지요. “이 나무, 줄기와 가지의 결이 매끈하지요? 그러면 생강나무예요. 거칠면 산수유고요. 향을 한번 맡아봐요. 어때요, 코끝이 생강 냄새 맡듯 알싸하죠?”
해마다 봄이 돌아오면 노랗게 피어나는 생강나무꽃을 보며 선생님을 그리워하게 되리란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60살에 당신을 쓰러뜨린 뇌졸중 후유증으로 여전히 다리를 저는데도 길도 없는 야산을 성큼성큼 오르던 86살 노인은 38살 편집자의 기력을 압도하고도 남았지요. 단신에다 가녀린 몸집인데도 목소리는 우렁찼고 행동은 재빨랐습니다. 그래서 영영 건강하실 줄 알았지요. 100살을 가뿐히 뛰어넘으실 거라 믿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그날, 당신의 책을 만들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온 저를 거실 한편 캠핑용 접이식 의자에 앉히고 따뜻하게 내린 커피를 내주셨지요. 엉덩이가 채 들어가지 않는 의자에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있으려니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근심걱정 없던 아이로 돌아가 할배와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는 어찌나 푸근하던지요. 아시아기자협회가 만드는 온라인 매체 ‘아시아엔’(THE AsiaN)에 정기적으로 기고하시던 칼럼의 내용을 줄줄 읊자 선생님은 내심 안도하는 눈빛이셨습니다. 당신의 자연주의 철학과 인생 이야기에 감명받아 찾아오는 이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당신의 명성에 기대어 돈푼 좀 만져보려는 장사치가 아닌지 선생님은 나름의 검증이 필요하셨을 겁니다.
모닥불가에 모여 앉은 이들처럼 서로의 말과 온기를 나눈 지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요. 선생님은 당신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책상 앞으로 저를 이끄셨습니다. 그런 뒤 컴퓨터 화면 속 폴더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저 안에 있어요. 여태 써온 모든 글과 사진들. 책은 실장님이 알아서 잘 만들어주세요. 내 원고를 모두 맡길게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도 전이었지요. 선생님이 모두 가져가라고 했던 원고 분량은 엄청났습니다. 그날 가져간 유에스비(USB)메모리에 다 담기지 않아 사나흘 동안 선생님 네트워크에 원격으로 접속해 제 컴퓨터로 복사해 날랐지요. 모든 원고를 빠짐없이 읽고 네 개의 장으로 나눈 뒤 공들여 다듬는 데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그 압도적인 분량 안에서 선생님의 오래된 고독을 읽었습니다. 한계 없는 자유를 만났습니다. 고독과 자유가 샴쌍둥이처럼 한 몸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어서 대중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또렷해졌습니다.
그날 우리는 비즈니스 대화를 후딱 마무리하고 현관을 나섰습니다. 선생님이 늘 다니는 산길과 아라뱃길이 궁금했지요. 한쪽 머리를 갸우뚱 얹고 다소 비틀거리는 선생님을 따라 걷는 동안 빠르게 이동하는 적란운 사이로 햇살이 부챗살처럼 펼쳐졌습니다. 대자연 속 소우주, 외로운 인간들의 행성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불꽃을 일으키는 순간은 영원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인류란 저 푸르디푸른 공중에서 찰나의 형태로만 감지되는 우주의 비밀을 직관하기 위해 걷고 또 걷고, 쓰러져도 걷는 직립 보행의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지요. 그렇게 선생님과 해가 저물도록 걷고 걸었던 하루가 오늘 위기의 중년을 살고 있는 제게 재기의 동력이 되리란 걸 선생님은 예감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하루를 온전히 제게 내어주신 거겠지요.
2021년 12월23일, 함박눈이 고요히 쌓이던 날에 선생님은 그토록 갈구하던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만 93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류를 집어삼키며 자연으로부터 조종 소리가 몰려오던 시기였지요. 생사를 내려놓고 야지에 뒹굴던 아흔 살 캠퍼, 자연이 일터이자 놀이터였던 할배의 메시지가 꼭 필요한 시점에 자연으로 영원히 회귀하셨지요.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어갈 뿐 아니라 대우받고 동정받고 주저앉아 있는 가운데 더욱 늙어간다며, 정년퇴직의 올가미를 벗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고 일갈하던 노익장을 이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목소리가 묻히고 당신의 행적이 지워지는 게 안타까워 생전에 펴낸 단 한 권의 책을 ‘박상설의 자연 수업’으로 되살리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지 탐험가이자 캠핑 선구자로 평생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당신은 인간 디엔에이(DNA) 안에 각인된 자연 회귀 본능을 따를 때 근원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하셨지요. 자연의 치유력을 전파하기 위해 오대산 북쪽에 캠프나비를 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생을 보내셨던 당신의 뒤안길을 짐작해봅니다. 당신이 미처 말하지 못한 아픔과 고독과 철학이 땅에 스며 순백의 자작나무숲으로 부활하리란 걸 믿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김지혜 나무와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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