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김정은의 ‘통일 불가’ 신년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남한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공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6~3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역대 최악의 남북관계, 불안한 2024년 한반도 정세를 예고한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김 위원장 신년사는 올해도 연말 당 전원회의 결과 발표로 갈음한 듯하다. 주목할 점은 그가 선대 유훈인 통일 정책의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구실로 남측이 정권에 관계없이 흡수 통일을 추구해왔고 헌법의 영토 조항을 유지하는 점을 들었다.
이러한 노선 전환은 핵무장 자신감과 공세적 핵사용 교리 확립과 닿아 있다. 김 위원장은 “(전쟁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 다가오고 있다”며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족에게 핵을 쓰지 않는다’던 선대의 공언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 “우리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향후 대화에서 남측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남북한 사람들이 점점 더 남남처럼 살아가는 현실에서,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남북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당위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남이든 북이든 정치지도자가 동족관계를 포기하고 전쟁 불사론을 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정은 신년사는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전쟁에 대한 그의 섬뜩한 입장은 윤석열 정부의 더 강경한 반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북한의 공세적 대응은 지난 30년 북핵외교 실패에 이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과 조응하는 측면이 있다. 남북 정권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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