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총선 의식 말고 '금융·건설업 전염' 차단해야
건설업 덮친 부동산 PF 리스크
태영건설 결국 워크아웃 신청
부동산 호항기 무리한 사업 확장
지방 중소 건설사 상황 더 나빠
증권가 1군 건설사 부도설까지
부동산 PF 부실 경제위기 뇌관
사업성 평가 통한 건설사 정리 필요
시공능력 평가(도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2023년 12월 28일 끝내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종합 건설업체이자 아파트 브랜드 '데시앙'으로 알려진 큰 기업이다. 대형 건설사의 워크아웃 신청은 2013년 쌍용건설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태영건설이 위기에 몰린 배경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채무 부담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이다. 태영건설의 순수 부동산 PF 잔액은 3조2000억원, 순차입금이 1조930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478.7%에 이른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증으로 착공조차 못한 건설현장이 거의 절반이다.
문제는 PF 리스크에 시달리는 건설사가 태영건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3년 9월 말 기준 주요 16개 건설사의 PF 보증액은 28조3000억원이다. 남명건설(창원), 해광건설(광주) 등 지방 소재 중소 건설사들이 이미 부도를 냈다. 증권가에는 1군 건설사의 부도설까지 나돈다.
부동산 PF는 아파트 등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사업비를 빌리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 시행사가 자본을 갖춘 채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담보 없이 부동산 개발의 사업성에 기대어 돈을 빌리기 때문에 대출금리가 높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분양이 잘되고 수익도 낸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때다. 최근 1~2년 사이 부동산 경기가 급랭한 데다 고금리가 겹치면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건물을 지어야 자금을 회수할 텐데 급증한 건설비 부담으로 착공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부동산 PF는 시행사의 PF에 대해 공사를 맡는 건설사가 사실상 연대 보증인 신용 보강을 한다. 시행사가 부도나면 대출을 보증한 시공사가 채무를 떠안는 구조다. 부동산 PF의 부실 이 건설업과 금융권 위기로 전이되며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부동산 PF는 2023년 내내 시장의 최대 리스크로 지적돼왔다. PF 시장이 글로벌 저금리와 부동산 호황기에 힘입어 너무 단기간 내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23년 9월 말 기준 134조3000억원 규모다. 2020년 말 92조5000억원이었던 것이 2021년 말 112조원으로 급증하는 등 매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PF 대출 연체율도 급등했다. 2020년 말 0.55%였던 것이 2023년 9월 말 2.42%로 뛰어올랐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부동산 PF 부실이 금융권 전반의 신용 위기로 번지는 것이다.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등하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PF 연체율이 5.56%나 되고, 가장 취약한 고리인 캐피털의 PF 연체 잔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인 2019년 PF 대주단 협약을 가동해 PF 부실에 대한 만기 연장 등을 지원해왔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사업자들이 버티도록 시간을 줬지만,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한계에 부닥쳤다. PF 관련 우발채무가 지나치게 많은 태영건설이 구조조정 첫 타석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했다. 한국에서 유난히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부동산 개발 시행사의 자금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시행사의 자본 요건을 강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통한 재무적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주택 선先분양과 중도금 비중을 줄여나감으로써 토지 및 부동산의 담보 가치와 개발이익 평가에 기반한 부동산금융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부동산 PF 부실 위험은 부동산 호황기에 낙관적 전망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데 기인한 측면이 크다. 엄정한 사업성 평가를 통한 신속하고 정밀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PF 뇌관이 연쇄적으로 터지지 않도록 한계에 이른 건설사는 정리해야 한다.
2023년 7월 발생한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도 부동산 PF 부실이 뇌관이었다. 정부는 사태를 조기 수습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행여 4월 총선을 의식해 이자 유예, 만기 연장 등의 방식으로 부동산 PF 부실을 이연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한국경제의 잠재 위험 요인 중 하나로 부동산 PF 문제를 꼽았다. 금융감독원은 2023년 12월 문제가 있는 건설·금융사에 대한 적절한 구조조정·정리 등을 전제로 '자기 책임 원칙'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시장 원리에 입각한 옥석 가리기 의지를 내비쳤다. 말에 그쳐선 안 된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건전 기업과 문제가 있는 한계 기업을 잘 가려 부동산 PF 부실이 금융사·건설업 전반으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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