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LCK와 함께한 기록사진가 이세현의 5년 "내 삶의 일부분이었던 시간"
최근 미디어의 중심은 영상이다. 과거 정보를 접할 수 있던 스크린이 한정되어 있을 당시에는 이보다 접근성이 좋은 미디어가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매체인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미디어의 중심이 영상으로 옮겨갔다.
젊은층의 인기를 기반으로 성장한 LCK 역시 마찬가지다. 기반이 되는 경기는 영상으로 진행되는 것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순간을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도 여전히 사진이 가지는 힘은 여전하다. 사진 한 장이 가지는 힘은 몇 년간 쌓인 영상의 힘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기록은 사진으로 남는다. LCK 역시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정도다. 롤파크가 개장한 순간부터 2023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LCK의 모든 순간은 기록사진가 이세현을 통해 사진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2023년 LCK 사진전을 마지막으로 그의 LCK에서의 여정도 마침표를 찍는다. 과연 5년 동안 모든 순간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남긴 이세현에게 그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저는 지난 2019년도부터 2023년까지 LCK의 공식 사진을 맡았던 기록사진가 이세현이라고 합니다. 주로 국가 및 기업 등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행사의 과정과 구성을 기록하는 도큐먼트 쪽을 주 촬영 영역으로 다루고 있어요. 정부 부처에서 공식 행사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현충일 추념식, 광복절 경축식과 같은 큰 이벤트부터 각 기업의 협약식이나 컨퍼런스와 같은 중형 규모 행사까지 공적인 분위기의 행사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나 국가 보훈처 관련 행사를 많이 하다 보니 국내외 관련 사적지들을 방문하고 기록으로 남기면서 보훈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중국 내 임시정부가 이동한 경로를 추적해 사적지들을 기록한 작업은 중/고등 교사분들의 교육자료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독도의 날 특집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LCK 사진작가 참여 요청은 어떻게 받으셨을까요
갑자기 LCK 공식 사진사로 일하게 된 건 아니고, 2018년 LCK 서머 결승 이후부터 그해 있었던 롤드컵까지 먼저 의뢰를 받았어요. 그리고 결과물이 마음에 드셨는지 LCK에서 사진 기록을 남겨달라는 제안을 받았죠. 2019년부터 롤파크가 개장되면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필요해졌거든요.
이전까지 맡으셨던 작업과 방향성이 다른 일인데, 초반 적응도 쉽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변함이 없으니 기본적인 업무에 적응하기는 힘들지 않았고, 초반 적응 시간이 넘어가면서 같은 환경에서도 조금이라도 다른 사진을 남기고 싶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습니다. 매번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찍다 보니 새로운 걸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더라고요. 지금 돌아봤을 때 힘들었던 점은 역시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는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단기간에 7~80명에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외우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선수들의 이름이 익숙해진 후에는 빠르게 사진을 올리는 일에 집중했죠.
LCK 사진 작업 이전까지 했던 작업들은, 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기존에는 식순에 따라 달라지는 행사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일을 했다면, 롤파크에는 현장 분위기보다 선수 하나하나가 중심이 되기에 그 부분을 더 집중해야 했던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편집이 끝난 사진을 요청하는 시기도 달랐을 거로 생각됩니다
맞아요. 사진이 바로바로 올라가야 한다는 점도 달랐죠. 기존 행사 기록 사진은 행사 이후 보통 3일에서 1주일 사이에 결과물을 전달했지만, LCK는 바로 사진을 올려야 했거든요. 24시간 이내 업로드가 기본이고, 중요한 순간에는 더 빠르게 올려야 하는 상황도 있었죠. LCK 작업 초반에는 새벽 5시까지 작업해서 업로드 한 후에 자고 오후 2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일이 반복됐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업로드 속도가 빨라졌고, 2023년에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지원을 받아 편집용 최신 노트북을 장만하며 플리커에 더 빠르게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전체적인 작업 환경이 안정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픈 욕심도 생겼을 듯하네요
처음에는 무리해서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최대한 사진 자체에 집중하면서 일을 했거든요. 기본적인 사진 품질이 보장되고 난 후에 다른 것을 해야 결과물의 밸런스가 깨지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거든요. 가장 먼저 시도해 본 게 승리한 선수가 기쁨을 표현하는 장면이었죠. 승리 인사 후 가장 기쁜 순간을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수들에게 포즈를 요청했고, 그게 쌓이다 보니 신인 선수들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부분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진행된 LCK 사진전에 전시된 제 파트의 사진을 보니 선수들이 자기 감정을 확실히 표현하는 거 같아 보람을 느끼기도 했죠.
좋아하는 선수의 사진을 찍기 위해 롤파크에 카메라를 들고 방문하는 분들도 같은 고민을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초반에는 환경적 요소에 다소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광학 기술이 발전하며 카메라의 성능도 5년 동안 많이 발전했고, 최근 일부 편집 프로그램에서는 AI 노이즈 제거 기술을 제공하기 시작했거든요. 어두워서 노이즈가 심한 사진도 이제 편집 프로그램에 맡기면 이를 해결해줍니다. 다만 편집용 컴퓨터의 사양에 따라 시간이 좀 걸리는데, 4500만 화소 기준 분당 3-4장 정도 처리가 가능합니다. 제가 LCK 합류 초반에 좋지않은 컴퓨터로 일반 사진을 작업하던 속도와 마찬가지지만 더 깔끔한 사진이 가능해졌죠. 이번 LCK 사진전에 전시한 제 사진들도 모두 이 기술을 사용한 사진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LCK에서의 기억을 뒤로 하고 2024년을 맞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을 LCK와 함께했네요. 그리고 반년 정도 휴식을 취하며 다시 제가 하던 기록사진가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갈 듯 합니다. 많은 분이 잊지 않아주시면 제가 라이엇과 협업을 하며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남겨두고요. 돌아보니 영상이 주가 되는 LCK에서도 사진으로 많은 것을 전달했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2019년 제가 촬영을 시작했던 첫 해에 스프링 결승에서 당시 SK텔레콤 T1이 우승하고 나서 '페이커' 이상혁 선수에게 부탁해 관중석을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순간을 찍은 기억이 있습니다. 팬 분들이 당시 이 사진을 정말 많이 좋아해주셨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페이커 선수에게 관객이 꽉 차있는 보다 큰 무대, 역사에 길이 남을 분위기 속에서 같은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긴 합니다. 롤파크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은 좋았어요.
사진으로 많은 것을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졌는데, LCK에서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LCK에서 메인이 되는 영상과는 달리 한 장으로 모든 걸 설명해야 하기에, 사진은 한 장 속에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장의 사진이 전후 30초의 분위기를 모두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데이터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LCK 선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평생의 순간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영상이 주가 현대 사회에서도 저는 사진이라는 영역이 가진 힘은 특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매년 시즌을 마치고 LCK에서 여는 사진전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올해 LCK 사진전에 준비된 제 파트에 나간 사진은 총 12만 장의 사진 중 고르고 고른 사진들입니다.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느끼니까요.
작가로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30대의 절반과 함께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의 일부분이었죠.
지금까지 작가님의 사진을 보고 좋아하면서,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을 거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사진, 그리고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이 질문을 주신 분들은 직업으로 찍는 사진보다는 본인이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을 더 궁금해하실 거 같습니다. 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본인이 보고 행복한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와 위치에서 찍어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좋은 사진이 아닐 것이고, 멀리서 핸드폰 카메라도 찍어도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좋은 사진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사진은 죽은 사진이라는 사진가들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사진은 여러분만의 이야기가 들어있기에 살아있는 사진이고 그 사진이 좋은 사진이 됩니다. 비싸고 좋은 촬영 장비를 사용한다면 그만큼 결과물은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결과물과 마음에 드는 사진은 다르니까요. 아마 제가 좋아하는 사진에 관한 질문도 포함된 거 같은데, 경기에서 승리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는 선수들의 뒷모습을 찍는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동안 LCK에서 사진을 봐준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LCK에서 제 활동은 2023년으로 마무리됐지만, 제 마음은 항상 롤파크에 남아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5년간 저에겐 팬 여러분, 리그 관계자분들, 선수분들 모두가 가족이었습니다. 다시 촬영 기회가 닿는다면 뵐 수 있구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항상 제 기록 사진을 사랑해 주신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며, LCK를 이루는 구성원 분들과 이를 지켜보시는 모든 분들께 행복한 일이 가득한 2024 갑진년 새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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