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초격차, 문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해 12월9일 국내에서 6번째로 애플스토어인 '애플 하남'이 오픈했다. 참고로, 애플은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한국을 3차 출시국으로 분류해 늘 국내시장을 홀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소비자는 무섭다. 홀대론이 퍼지면 불매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애플의 충성고객이 보여주는 팬심과 열정은 가히 BTS나 임영웅 팬클럽 못지않은 수준이다.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의 애플스토어 하남 매장 역시 오픈 전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수많은 언론사가 이를 취재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애플의 로고가 담긴 텀블러를 제공한다는 소식에 1000명의 고객은 문이 열리기도 전에 줄을 섰다. 영화배우나 가수가 등장해도 1000명이나 대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 애플은 매장 오픈과 텀블러만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삼성과 애플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애플을 프런티어 정신으로 읽는 MZ세대
애플 하남의 방문객 대다수는 10대와 20대였다. 애플 로고가 새겨진 텀블러를 받기 위해 전날 밤부터 기다렸다는 이도 있었고, 새벽에 출발해 4~5시간을 기다린 학생도 있었다. 아이폰15 시리즈의 국내 판매량은 출시 직후 한 달간 전작인 14 시리즈보다 무려 40% 이상 더 많았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아이폰에 대한 MZ세대의 인기는 막연한 선망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하지만 그리 간단히 치부할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필자가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을 살펴보면 70% 이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고, 만족도 역시 비교적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30%에 달하는 삼성폰을 사용하는 이들은 만족도 자체도 높지 않았고 언제든지 아이폰으로 갈아타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주목되는 사실은 삼성전자가 언급했듯이 MZ세대가 애플이나 아이폰을 선호하는 이유다. 아이폰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아이폰이 삼성의 스마트폰보다 어떤 점이 좋은지 다양한 설문, 인터뷰를 진행해 분석하면 실망스럽게도 기능상 차이에서 확연한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내긴 어렵다. 기능이나 디자인에서 애플 제품이 삼성보다 "더 섬세하다"거나 "더 세련됐다"고 얘기할 뿐 삼성 제품보다 어떤 요인 때문에 구체적으로 애플 제품을 선호하는지 언급한 이는 드물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해결이 난망하다.
MZ세대 소비자들은 애플을 혁신, 창조, 자유로 얘기한다. 1030세대는 아이폰을 세련되고 예쁘다고 평가한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국 공무원에게 아이폰 구매 금지령을 내려 애플의 시가총액을 이틀 만에 200조원 날리는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은 반발이라도 하듯이 아이폰 출시 첫날 구름같이 몰려 아이폰을 구매했다. 시진핑도 애플의 열성팬을 통제하진 못했다.
국내 1020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도 비슷했다. 삼성의 로고는 그들에게 '대기업' '일사불란' '야근' 등으로 상징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삼성의 스마트폰은 그들에게 '올드하다' '안 예쁘다' '가성비' 등으로 요약됐다. 삼성은 지난해 6월29일 애플 강남스토어와 약 500m 거리를 두고 '삼성 강남' 매장을 오픈해 애플을 정조준했지만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현재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삼성은 국내 소비자에 대한 애플의 홀대를 MZ세대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폰15 출고가 기준으로 국내시장의 아이폰 실질 구매가격은 125만원으로 미국, 중국보다 높다. 심지어 아이폰이 비싸게 판매되는 일본보다도 13만원이나 비싸다.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은 아이폰의 3차 출시국이기에 다른 나라보다 신제품이 전달되는 속도도 훨씬 느리다. 애플의 조직문화가 유연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애플 고객의 충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해 미국 IT 시장조사 업체 '브랜드키즈' 조사에 의하면 2023년 고객 충성도 부문에서 애플은 변함없이 1위를 유지했다. 결국, 이 현상은 제품의 기능적 우위를 굳히는 것으로는 삼성이 애플을 뒤집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애플을 프런티어 정신으로 읽는 MZ세대는 삼성을 '대기업'과 '일사불란'으로 읽는다. 이재용 회장의 초격차가 문화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애플은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국내 젊은 소비자들에게 취약한 점을 인지라도 한 듯이 최근 지속적으로 한국 MZ세대 공략에 나서고 있다. K팝의 최전선에 있는 인기 걸그룹 뉴진스와 협업해 아이폰14 프로로 촬영한 《ETA》 뮤직비디오는 국내외에서 엄청난 주목과 화제를 낳았다. 아울러,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과도 협업해 2022년 아이폰으로 영화 《일장춘몽》을 촬영했다. 애플의 문화 공략은 실로 기민하다.
애플은 서울 가로수길(1호점)을 시작으로 여의도, 명동, 잠실, 강남에 이어 경기 하남에까지 매장을 내며 전국구로 확대, 브랜드 공습을 추구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애플의 신제품 출시 전략에도 안테나를 세워야 하지만 동시에 삼성의 문화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 정신이 깃든 프런티어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 탈권위를 토대로 자율과 유연성이 깃든 문화를 정립하지 않으면 애플에 대한 MZ세대의 열망을 막아내기 어렵다.
애플과 삼성의 문화 격차 여전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914억 달러로 4년 연속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삼성 위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뿐이다. 사실상, 미국 기업을 빼면 아시아를 포함해 세계 1위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기업이 삼성전자다. 그러나 안주하면 밀리는 건 순간이다. MZ세대 인재들은 삼성전자보다 '네카라쿠배'를 외치며 젊은 IT기업을 선호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초격차를 부르짖으며 '타도 일본'을 외쳤다. 이를 위해 제품 혁신에 주력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가전과 반도체, 휴대폰에서 역량을 키웠고 결국 일본의 경쟁력을 압도하며 1차 초격차에 성공했다. 이재용 회장의 타도 애플을 향한 초격차는 제품이 아닌 문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의 과제는 삼성전자 그리고 그룹의 문화 혁신에 있다. 낡고 올드한 문화를 프런티어 문화로 탈바꿈하는 것이 2차 초격차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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