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GP 찾은 美 사령관은 왜 모자를 바꿔 썼나[문지방]

김진욱 2023. 12. 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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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합동참모의장과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이 지난 21일 중부전선 GP를 공동 현장점검한 후, 장병들을 함께 격려하고 있다. 합참 제공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지난 21일, 한국군 현역 최선임자인 김명수 합동참모의장과 폴 러캐머라 미국 육군 대장이 중부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경계작전부대를 찾았습니다. 북한과 마주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데다 GP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져 합참이 공개한 사진은 모자이크투성이었습니다. 장소를 특정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합참은 이번 공동 GP 순시를 두고 “김 의장과 러캐머라 사령관은 북한군의 GP 복원 등 접적지역 상황변화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대비태세를 점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김 의장과 러캐머라 대장의 공동 순시를 두고 "한미가 핵협의그룹(NCG) 등의 정책을 작전 및 행동화로 이행하는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을 한미동맹으로 포장하는 건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왜 그럴까요.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경기 평택시 오산에어베이스에서 열린 주한미군 우주군 창설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세 개의 모자' 러캐머라... 각각 목적·기준 달라

러캐머라 대장의 별칭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러캐머라 대장이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GP를 순시했기 때문이죠. 러캐머라 대장은 흔히 ‘모자 3개를 쓴 사람’으로 불립니다. 그는 △주한미군 2만8,000여 명을 총괄지휘하는 ‘주한미군 사령관’이자 △한미동맹의 군사기구인 '한미연합군사령부 사령관’ △6·25전쟁 때 체결된 정전협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하는 ‘유엔군 사령관’이라는 3개의 직책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캐머라 대장이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 어떤 자격으로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주한미군과 한미연합군 사령관 자격이라면 북한을 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당연히 북한에 대한 경계태세를 주문하고 이를 점검할 필요가 있죠.

하지만 유엔군 사령관 자격이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정전협정이 남북 간 충돌을 방지하고 휴전선의 안정적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남북 사이에서 중립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러캐머라 대장이 수행하는 직책 3가지의 목적과 판단 기준이 상충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지난해 12월 26일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무인기를 날려 보내고 우리 군이 상응하는 조치로 소형 무인기를 MDL 이북으로 비행시킨 사건에 대해 유엔군 사령부는 남북한 모두가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밝혔습니다. 남북한 양측을 상대로 일갈한 셈이죠. 러캐머라 대장이 북한과의 전쟁에서 한미연합군을 이끌고 대응해야 하는 ‘한미연합군 사령관’이지만 정전협정을 수호해야 하는 ‘유엔군 사령관’ 자격도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입니다.

지난 11월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이후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내 얼룩무늬로 된 초소를 복구하고 병력을 투입한 모습이 포착됐다. 국방부 제공

'유엔군 사령관' 명시한 합참, 알고도 둘러댔나

합참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굳이 ‘유엔군 사령관’ 자격임을 명시하면서 보도자료를 발송했기 때문이죠. 특히 유엔군 사령관과 합참의장이 처음으로 최전방 GP지역을 방문한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북한이 이른바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후 우리 당국이 9·19 군사합의의 일부 효력을 정지했고, 북한이 9·19 합의를 전면 파기하겠다고 맞불을 놓은 상태에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군에 따르면 북한은 9·19 합의 이후 폐쇄했던 일부 GP를 복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는 북한군이 총기를 휴대하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우리 군도 상응하는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김 의장은 지난달 27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GP 복원에 우리 군도 상응한 수준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장은 당시 ‘우리 군도 GP를 복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적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며 “신뢰를 깬 건 북한이기 때문에 (우리 군의) 대응조치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상응조치는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5주년 국군의날 경축연에서 김건희 여사,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등과 함께 축하 시루떡을 자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전협정 위반 '경고' 의미 가능성... 군 수뇌부 강경 행동에 제동?

올해 70년을 맞은 한미동맹은 6·25전쟁 이후 우리의 안보를 수호하는 핵심 축입니다.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러캐머라 대장이 한미연합사령관의 모자를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지난 2016년 5월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당시 이순진 합참의장과 MDL에서 고작 25m 떨어진 경기 파주시 JSA 오울렛 GP를 찾은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러캐머라 유엔군 사령관이 김 의장과 함께 GP 지역을 찾은 것은 남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 경고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가 대북 강경 제스처를 취하면서 GP 복원 등에 나서는 것에 대한 불만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러캐머라 의장은 다른 ‘모자’를 쓰고 GP를 찾았을 테니까요. 아전인수로 해석해야만 대북 안보태세가 강해지는 건 아닙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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