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던 여고생 노린 악랄한 성범죄자의 치밀한 계획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언론인 2023. 12. 3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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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인근에 차량 세워놓고 “선생님 교통사고 당했다”고 유인
조수석에 타자 야산으로 끌고 가 성폭행 후 살해

(시사저널=정락인 언론인)

성폭행은 '영혼의 살인'으로 불린다. 한 번 피해를 당하면 정신이 피폐해져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발간한 '2023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 건수는 11만4420건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성범죄의 재범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각종 관련 자료를 종합하면 성범죄자의 60% 이상이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3년 안에 또다시 동종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재범률도 높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26.8%였고, 13~18세 청소년 대상 재범률은 34.1%에 달했다. 더 심각한 것은 성범죄 재범자의 경우 살인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pixabay

'대구 송현동 살인 사건'의 주범 김수길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 살던 문아무개양(17)은 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문양은 반에서 1·2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교우 관계도 좋았던 모범생이었다. 2006년 9월4일 자정쯤 문양은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가 받자 "독서실에 들렀다 집에 가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문양은 다음 날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귀가하지 않았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문양의 부모는 딸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문양의 행적을 역추적해 송현동 일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달서구 대천동의 한 공중전화부스에서 문양이 집에 전화를 거는 모습을 포착한다. 이후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실종 4일째인 9월8일 문양의 집에 "돈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협박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경찰이 발신지를 추적해봤더니 전화는 서울역과 부산 등지의 공중전화부스에서 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던 9월13일 부산의 한 행정관청 CCTV에 노숙인을 시켜 협박전화를 거는 남성의 모습이 확보된다. 경찰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같은 날 오후 대구 남구 서부정류장 인근에서 체포한다.

그는 성범죄 전과자인 중고자동차 판매원 김수길(50)이었다. 김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경찰의 추궁 끝에 "여고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범행동기는 "내연녀와 싸우고 술김에 성욕을 참지 못해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대구 달성군의 한 야산에서 암매장된 문양의 시신을 발견한다. 사체 일부가 훼손돼 있는 등 참혹한 모습이었다.

김수길은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심야에 귀가하는 여고생을 범행 타깃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여고에 전화를 걸어 학부모인 척 윤리 교사의 이름을 알아낸다. 범행 당일 오후 10시5분쯤, 김씨는 티코 승용차를 몰고 송현동 소재 여자고등학교 옆 골목에 차를 세운 후 학교 앞을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노렸다. 김씨는 한 여고생에게 접근해 "◯◯여고가 어디냐"고 말을 걸어 승용차로 유인하려고 했으나 여학생이 학교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냥 지나가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위치를 바꿔 카센터 앞길에 있다가 지나가는 여학생을 발견하고 "◯◯여고 학생이냐, (윤리 교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윤리 선생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학생 한 명이 도와주길 바라고 있다. 같이 가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이 여학생도 "아니요" 하며 그대로 지나가자 두 번째도 미수에 그쳤다.

김씨는 다시 한번 위치를 바꾼 후 또 다른 여학생이 지나가자 같은 수법으로 유인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자 조바심이 났다. 10시40분쯤 여고 인근 송현시장 입구 골목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 미술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문양이 지나가자 불러세웠다. 김씨는 "◯◯여고 학생이냐, 윤리 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도와줘야 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이 말에 속은 문양은 김씨 승용차 조수석에 올라탄다. 문양은 집에서 불과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납치를 당했다.

김씨는 통행이 뜸한 달서구 대천동에 있는 성서4차산업단지 옛 비상활주로까지 간 후 차를 세우고, 왼손으로 문양의 입을 막고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잡아 눌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문양이 겁을 먹자 "소리 지르지 마라, 반항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김씨는 시간이 자정에 이르자 문양의 늦은 귀가로 가족이 경찰에 신고할 것을 염려했다. 그는 문양을 위협해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게 한 후 다시 승용차를 운전해 인적이 드문 달성군 가창면 백련사 근처까지 가서 주차시켰다. 문양이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자 김씨는 "옷을 전부 벗어라, 말을 잘 들으면 살려주겠다"며 차량 안에서 문양을 강간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송현역 CCTV에 찍힌 귀가 중인 여고생 ⓒMBC 제공

출소 1년 만에 또다시 성범죄 저질러

김수길은 17세 때부터 범죄를 저질러 소년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성폭행 등 성범죄를 저질렀고, 2011년에는 대구에서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4년을 복역하는 등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2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이런 그가 출소 1년 만에 또다시 범행에 나섰다. 문양을 납치할 때까지 살인 전과는 없었으나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사건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어 완전범죄를 위해서는 문양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문양이 자신의 차량을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저씨 차는 흰색 프라이드야, 알겠지?"라고 떠봤다. 그러자 문양이 "아니요, 아저씨 차는 흰색 티코예요"라고 정확히 기억하자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문양은 김씨의 말만 잘 들으면 자신을 살려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김씨는 성적 욕구를 채운 후 문양에게 양손을 뒤로 하고 승용차 조수석에 엎드리라고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문양이 "살려주는 거죠"라며 다시 한번 애원했으나 김씨는 "그래, 그래 가만히 있어" 하면서 목을 눌러 질식시켜 살해한다. 김씨는 문양의 시신을 차에 싣고 약 3km 떨어진 산 중턱으로 옮긴 후 유기하고 나뭇가지로 덮은 다음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오전 김씨는 다시 이곳을 찾아 시신을 오욕한 후 구덩이에 던져 넣은 후 암매장했다. 그는 단순 인질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몸값을 요구하거나 노숙인을 이용해 협박전화를 걸게 하며 경찰 수사에 혼선을 줬다.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 후에도 죄책감을 갖거나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인면수심의 행동을 보여 경찰관들도 혀를 찰 정도였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형사들에게 말을 놓으며 '담배 하나 줘'라고 여유를 부렸다. 현장검증 때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려고 한다며 막걸리를 사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관이 막걸리를 사다 주자 즉석에서 절을 올리고 "아저씨가 잘못했다"며 울기 시작한다. 그런데 김씨의 눈에서는 전혀 눈물이 흐르지 않았는데, '우는 척' 연기를 한 것이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 간부는 김씨를 '주인 없는 미친개'라고 표현했다. 주인 없는 미친개를 바깥세상에 풀어놔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문양의 시신은 화장된 후 8세 때 태어나서 처음 가봤다는 화진포해수욕장 인근 바다에 뿌려졌다.

2006년 9월18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백련사 부근 야산에서 경찰이 '여고생 살해 사건' 용의자에 대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반성 없는데 교화개선 여지 있다고 한 판사

검찰은 김씨를 강간살인, 미성년자유인미수, 사체오욕,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재판에서 술에 취한 상태였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상실되거나 미약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이 잔인하며, 살해 동기에 있어서도 참작할 만한 사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데다 이미 두 차례 강간치상 등의 범행으로 처벌받았는데도 출소 후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의 동기, 목적, 방법, 결과의 중대성,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할 때 그에 상응하는 극형의 선고가 불가피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등 피고인에게 아직 교화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공공장소에서 조심해야 할 성범죄자들의 수법

대중에게 노출된 공공장소는 성범죄자들에게 사냥터나 다름없다. 언제든지 미끼를 던져 놓고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어서다. 성범죄자들은 그럴싸하게 자기를 포장하고, 범행 대상에게 접근한 후에는 그들의 감성을 파고든다.

이들은 먼저 인적이 드문 곳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는 곳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피해자들을 유인한다. 대구 송현동 사건의 김수길은 선생님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순수한 여고생의 심리를 이용했다. 이를 위해 학교에 전화해 교사의 이름을 확인한 후 범행에 십분 활용했다.

밤에 길을 묻거나 안내를 부탁하는 남성들도 조심해야 한다. 한 성폭력 전과자는 길가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있다가 여고생에게 '길을 묻는 척' 유인한 후 차에 태워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일명 '도움 요청 수법'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을 유인하는 데도 가장 많이 사용된다.

길을 가던 여고생을 차로 친 후 "병원에 데려다주겠다"며 차에 태워 성폭행한 남성도 있었다. 연쇄살인마 강호순은 대중교통이 많지 않은 외곽 지역을 노렸다. 그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버스정류장에 여성이 혼자 있을 경우 "태워주겠다"고 접근해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주부들은 '호객행위 수법'을 조심해야 한다. 여성이 많은 곳에서 "물건을 싸게 주겠다" "좋은 물건이 있는데 한번 보고 가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다" 등으로 현혹하는 남성들이 있으면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자칫 승합차나 냉동탑차로 유인해 납치한 후 성폭력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소아기호증을 가진 성범죄자들은 학교 근처 등 어린이가 많은 곳에 있다가 "강아지를 보여주겠다" "선물을 줄 테니 같이 가자" "아는 사람이니 함께 가자" "길을 가르쳐 달라" 등으로 유인한다. 아이들의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평소에 예방교육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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