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삼달리’ 신혜선의 키스를 부르는 지창욱의 순정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물결이 일렁이네/ 추억이 일렁이네/ 소녀가 춤을 추네/ 꽃다운 나이었지/ 어느 날 저 바다는/ 엄마가 되었다네/ 내 눈물도 내 웃음도/ 모두 다 품어줬지/ 나는 바다다/ 나는 엄마다/ 나는 소녀다/ 나는 해녀이다.
30일 방송된 JTBC 주말극 '웰컴투 삼달리' 9회는 하도해녀합창단이 부른 방승철 작사·작곡의 ‘나는 해녀이다’로 시작됐다. 회차 제목은 ‘두 미자 이야기’. 말 그대로 용필과 삼달의 엄마인 부미자(정유미 분)·고미자(김미경 분)의 옛 사연이 소개됐다.
2002년 고사리장마가 찾아온 어느 날 해녀회장은 바다가 심상찮다며 철수를 명한다. 전날도 수확이 없었던 고미자는 부미자의 만류에도 물질에 나서고, 그런 고미자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동행했던 부미자는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
용필(지창욱 분)의 아버지 조상태(유오성 분)가 고미자를 용서할 수 없던, 그리고 조삼달(신혜선 분)을 용필의 짝으로 용납할 수 없던 이유다.
그리고 2023년의 고미자도 고사리장마에 때맞춰 물질하던 중 심장 부정맥이 발작을 일으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 사건으로 조용필이 8년간 벌여온 기행의 이유가 밝혀진다. 용필은 고미자의 심장 부정맥을 알았으며 직후부터 고미자의 태왁을 요란한 꽃무늬 천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삼달리 앞바다를 비추는 기상청 CCTV로 고미자의 신상이변을 체크하려던 것. 삼달이 애써 조용필을 잊는 동안 용필은 삼달모 고미자를 세심히 지켜왔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야망은 있었다. 기상청 본청에 올라가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기상기구(WMO)로 진출해보겠다는 삶의 이정표가 있었다. 하지만 조용필은 조삼달을 위해, 그리고 공동어멍 고미자를 위해 그 이정표를 지나쳐 제주에 남았다.
태왁의 실체를 알게된 조상태는 격노했다. “니 어멍이 왜 죽어신디? 니 어멍이 누구 때문에 죽어신디?” 다그치는 조상태에게 용필은 반발한다. “우리 엄마가 왜 누구 땜에 죽어? 엄마가 왜 누구 때문에 죽어어? 그런 거 아니잖아! 아부지 나는 한번도 미워본 적 없어. 우리 엄마 떠났을 때도 그렇고 삼달이랑 헤어졌을 때도 그렇고 나는 한번도 미웠던 적이 없어. 아니, 미워지지가 않아!”
“아직도 니 아방은 그날만 생각하믄 가슴이 내려앉는다게. 심장이, 야이가, 야이가 녹아내린다게. 니 아방은!” 가슴을 치는 조상태를 향해 용필도 제 가슴을 치며 그간의 심경을 토로한다. “나는, 나는 괜찮아? 나도, 나도 막 여기에 욱여넣고 있잖아. 참고 있잖아. 하루에도 열 두 번씩 튀어나올 것 같은데 욱여넣고, 욱여넣고 맨날.. 맨날..이렇게 참고 있잖아!”
그랬다. 용필 역시 하루도 그날의 절망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터뜨릴 대상 없는 분노는 지금도 심장 아래서 욱신거린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는 것으로 면피할 일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세상이라도 아침에 눈을 뜰 가치는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삼달리 갤러리 한 켠에 전시된 엄마와 고미자 어멍의 사진은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사진이 멈춰 세운 그 순간에 두 미자는 무사했고 행복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원망과 미움에 매몰되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왕경태에게 엄마 고미자의 꽃태왁 사연을 들은 조삼달의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용필의 옆 자리는 조상태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써 애써 잊으려던 중이다. 그런데 이토록 걱정하고 챙겨주면 어쩌라는 말인가. 도대체 잊을 수 없게,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 어쩌라는 말인가. 감동이 원망을 불러오고 원망이 미련을, 미련은 또 기대를 재촉하는 와중에 또 조용필이 등장했다. 예의 “너 괜찮아?”란 시그니처 멘트와 함께. 그리고 말끄러미 바라보는 눈동자. 술김이 아니다. 저 순정 넘실대는 눈동자를 보고 어떻게 키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삼달이 시작한 둘의 입맞춤이 길게 이어진다.
확실히 조용필은 순정남이다. 그리고 그 내림은 조상태로부터 이어졌다. 소시적부터 조상태는 부미자를 사랑했다. 부미자의 꿈이 육지 나가 가왕 조용필의 배필이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기어이 부미자와 결혼했고 부미자의 죽음 이후로 20년을 넘기도록 그녀를 놓지 못하고 있다.
조상태도 알 것이다. 부미자의 사고를 이유로 고미자를 미워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고미자가 아내 부미자처럼 사고를 당했을 때 황망하게 달려가는 동안 얼마나 걱정이 되었던가. 호흡을 유지한 채 후송되는 것을 보고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만큼 얼마나 안도했던가. 어쩌면 조상태가 고미자를 미워하는 것은 아내 부미자를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수도 있다.
이제 아들의 마음은 알았다. 자신과 쏙 닮은 순정을 알았다. 흐르는 물을 막지 사람 좋아하는 마음을 어찌 막을까. 마지막 몸부림같은 조상태의 아집도 결국은 후퇴할 것이다. 다만 용필과 삼달의 예쁜 사랑을 너무 오래 가로막지 않았으면 싶다. 어깃장 부려봐야 제 아들 가슴만 아플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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