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주애에 쏠린 외부 관심 즐기는 김정은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2023. 12. 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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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불과한 김정은이 어린 딸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노림수 두고 해석 분분

(시사저널=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2024년 새해 북한을 바라보는 몇 개의 렌즈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건 김정은의 후계 문제다. 핵이나 미사일 이슈 못지않게 북한 체제와 주변 정세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은 사안이라는 측면에서다. 수령 유일 지배 시스템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대(代)를 이어가는 이른바 '혁명의 계승'은 절체절명의 사안이란 점에서 봐도 그렇다.

최근 북한 권력 내부의 기류로 볼 때 2024년에도 김정은과 노동당 선전·선동 부서의 김주애 띄우기는 더욱 거침없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논란이나 의문 속에서도 10세 주애를 내세운 북한의 '후계자 김주애' 자리매김 행보는 2023년 꾸준히 이어져왔고,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나 군부대 방문, 열병식 참관 등 공개 석상에 딸을 지속적으로 동행토록 하면서 후계 수업의 보폭을 넓혀주려는 듯한 김정은의 의지도 상당히 확고해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딸 주애가 2023년 12월18일 화성-18 고체연료 ICBM 발사를 시찰하고 있다. ⓒEPA연합

김정은은 왜 후계자 조기 옹립을 서두를까

사실 김주애가 화성-17형 ICBM 발사 참관을 위해 2022년 11월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딸 바보' 김정은의 치기 어린 행동 정도로 여겨졌다. 후계 문제로 연결시킬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도발에 올인하면서 북한 사회 내 엘리트와 주민의 불만이 고조되는 걸 의식한 듯 "미래세대의 안전을 위한 것"이란 논리를 내세우자 주애를 미래세대의 대표주자로 내세운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공식 등장 횟수가 늘어나고 주애를 북한 관영매체가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호칭하던 데서 '존귀하신' '존경하는' 등 단계적으로 높여 부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무엇보다 북한 정보 판단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관련 언급에서 뉘앙스 변화가 감지된다. 평가절하하거나 주시해 보자는 수준에 그치던 상황에서 "일련의 행보를 보면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2023년 12월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물론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북한 내부 상황 가운데 김씨 패밀리와 관련한 민감한 사안은 인적 정보망을 통한 정보 수집 채널인 휴민트(humint) 가동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김정은의 이름을 국가정보원이 '김정운'으로 잘못 파악한 건 대표적인 사례다.

최고위급 탈북 망명 인사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한미 정보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김정은·김여정의 존재나 스위스 유학 관련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이 김정은의 자녀 가운데 아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이나 정보 판단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베일에 싸인 평양 권력 핵심을 들여다보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김주애의 등장과 관련해 제기되는 해석 가운데 유력한 건 김정은이 후계자 조기 옹립을 위해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심혈관계 이상과 사망으로 제대로 된 후계수업을 받지 못한 채 27세에 집권한 경험 때문에 딸 주애에게 제왕학을 조기 학습시키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은 꾸준히 등장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종의 질병으로 인해 김정은이 어린 딸로의 4대 세습을 일찍 결정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전혀 다른 주장도 아직 살아있기는 하다. 김주애 '가케무샤'(影武者) 설이 그것이다. 김정은이 염두에 둔 진짜 후계자는 따로 있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주애를 내세워 시선 끌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현실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6·25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전리품관을 돌아보는 김일성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장. 어린 아들 김정일과 딸 경희가 보인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023년 8월17일 공개했다. ⓒ이영종 제공

4대 세습 탐색 과정에 외부 여론 떠보기?

10세의 어린 딸 김주애를 일찌감치 후계자로 등장시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단순히 자신의 건강 문제만으로는 현재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주애 띄우기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올해 40세의 나이로 집권 1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급변 상황이 없는 한 상당 기간 장기집권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후계자 문제를 조기에 꺼내는 건 권력누수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또 건강 이상으로 보기에는 지난해 러시아 방문과 잇단 군부대 방문, 핵·미사일 관련 행보가 활발하게 이어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김정은 유고 시 대안으로 자리했던 여동생 김여정의 존재와 관련해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다. 노동당 규약을 고쳐 유사시 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의 권한을 대행할 '노동당 제1비서' 자리를 만든 것도 사실상 김여정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 상황에서 급작스레 어린 김주애를 등장시킬 이유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최종 낙점되는 과정을 복기해 봐도 북한 후계자 결정이 만만치 않은 사안이란 점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입헌군주제 국가의 사례를 들여다보는 등 3대 세습에 혹시 북한 주민들이 반발하지나 않을까 고심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 "믿을 건 핏줄뿐"이란 생각을 굳혔고 아들로의 승계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배우 출신 성혜림과 낳은 장남 김정남에서 무용수를 지낸 고용희 소생의 정철을 거쳐 막내인 김정은으로 최종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이런 과정을 살펴봐도 4대 세습과 관련한 후계 문제도 결국 김정은의 결심에 달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 후계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논리 체계를 다룬 '후계자론'은 수령의 대를 이을 계승자의 자격과 관련해 △수령의 풍모를 빼닮을 것 △세대를 달리해야 할 것 △자질이 뛰어나다면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등의 언급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항목은 김주애가 딸이라서 후계자가 되기 어렵다는 통념을 불식시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김여정은 후계자가 되기는 어렵고, 다만 어린 조카들로의 권력세습을 연결해줄 교량 역할을 해줄 여지는 있다는 점도 암시한다.

후계를 염두에 둔 듯한 김정은의 쾌속 행보와 우리 정보 당국의 '후계 가능' 판단에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대목은 남아있다. 김정은이 딸을 부인 리설주나 여동생 김여정보다 부각시키고 군부 고위 장성들이 깍듯하게 예우하도록 하는 연출 상황에서 우리가 미처 파악하기 어려운 북한의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정은이 딸 주애에게 쏠린 외부 시선을 즐기는 듯한 기류도 감지된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좀 더 분명한 북한의 의도는 올해 김정은의 대외 행보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딸 주애를 대동하거나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에 비공식적으로라도 등장시킨다면 후계를 염두에 둔 것임을 확인케 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란 점에서다.

10세 안팎의 딸을 후계자로 내세운 곱지 않은 모양새에 쏠린 눈총을 의식한 듯 북한은 김정일이 10세 때 김일성 주석의 공개 행보를 따라다닌 사진을 잇달아 공개했다. 북한이 김주애 내세우기와 4대 세습 탐색 과정에서 외부 비판 여론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대목은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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