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케이팝 열성팬인 20대 대학생이 '올해의 여성 100인'이 된 이유는?
BBC는 매년 전 세계에서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여성 100명을 선정해 '올해의 여성'*으로 발표합니다. 지난달 발표된 '2023 올해의 여성 100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23살 대학생 이다연이 선정되었습니다. 또 인권 변호사 아말 클루니, 올해 여성 발롱도르 수상자인 스페인 축구선수 아이타나 본마티, 미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구글 AI 편향성을 지적했던 팀닛 게브루, 페미니스트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할리우드 배우 아메리카 페레라 등이 이 명단에 올랐습니다.
*올해의 여성 100인은 BBC 월드 서비스의 각 나라 서비스 팀 네트워크와 BBC 미디어 액션팀이 제안한 명단을 바탕으로 선정합니다. 한 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거나 주요 사건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갖고 있거나,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후보에 오릅니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과 사회 각계 목소리를 반영하고, 지역 대표성과 공정성도 고려해 선정합니다. 특히 올해는 기후 행동과 환경 운동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지도자 28명이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BBC는 평범해 보이는 한국인 대학생 이다연을 왜 선정했을까요? '올해의 여성 100인' 홈페이지에선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다연은 '케이팝포플래닛'을 통해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을 모아 기후 위기에 대항하고 있다. 2021년 설립된 '케이팝포플래닛'은 한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및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기후 행동 이행과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단체는 버려지는 실물 앨범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유명 케이팝 인사들이 디지털 앨범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이제 이 씨는 음악산업을 넘어 케이팝 스타를 자신들의 얼굴로 자주 내세우는 명품 패션 브랜드들의 기후 관련 약속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kq37U2BHH40 ]
내가 BBC 올해의 여성? 스팸인 줄 알았어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일이라 너무 깜짝 놀랐고요. 어쨌든 100명 안에 든 거니까 또 너무 영광이고 감사하고…. 그런데 저는 제 성과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케이팝포플래닛에는 저 말고도 여러 활동가 분들이 더 계시고 같이 이뤄낸 성과니까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 자체가 받은 게 아닌가, 더 나아가서는 팬들이 다 도와주셔서 저희가 캠페인 할 수 있던 거니까 케이팝 팬들의 액티비즘이 받은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함께 '기후 행동'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2021년 3월 만들어졌습니다. 주로 온라인에 기반해 활동하지만 필요한 경우 오프라인 캠페인도 활발하게 벌여왔습니다.
"저희가 출범하기 전에도 케이팝 팬들은 이미 '기후 행동'을 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따서 숲을 조성한다든지, (멸종 위기) 야생 동물을 입양한다든지, BTS 팬덤인 아미는 하루 만에 1만 달러를 모아서 기부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계셨는데, 저는 이런 활동들도 '기후 행동'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이런 힘을 본격적으로 모으면 기후 위기를 감소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인도네시아 캠페이너 누룰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케이팝 앨범이 쓰레기가 되는 이유
"이전부터 케이팝 팬들은 실물 앨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엔터사들이 케이팝 팬들에게 똑같은 앨범을 몇 장씩이나 계속 반복해 살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있거든요. 첫 번째 이유는, 팬들이 가장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게 포토카드거든요. 랜덤 포토카드라고 해서, 엔터사들이 이 수요를 알고 포토카드 종류를 더 늘린다든가, 최근에는 굿즈에 포토카드를 넣어서 계속 사게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상술이 발전해 나가고 있어요.
두 번째 이유는 팬 사인회인데요, 팬 사인회라는 게 사실 팬이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거든요. 그런데 이 팬 사인회에 응모를 하려면 앨범을 많이 구매를 해서 당첨 확률을 높이거나 또는 줄 세우기 추천 방식이라고 해서, 많이 구매하는 순서대로 명단에 올라가거든요. 인기가 많은 그룹들은 그냥 몇백 장까지 사야 하는 구조입니다.
또 마지막으로는 그냥 가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앨범 판매량이 그대로 성적에 집계되기 때문에 응원을 하려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아요."
엔터 기업들이 실물 앨범을 여러 장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게 케이팝포플래닛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처음엔 온라인 청원으로 시작해, 150개국에서 1만 명 이상의 케이팝 팬들 서명을 모으고 국회 포럼을 통해 '4대 기획사'에 전달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행동'에 나섰습니다. 팬들에게 골칫덩이가 된 앨범들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3주 만에 8천 개 이상이 모였습니다. 이 앨범들을 각 기획사별로 분류, 포장해서 반환하기로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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