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23년 반도체'...HBM부터 화웨이 7나노 칩까지
(지디넷코리아=이나리 기자)올해 반도체 시장은 그 어느 때 보다 다사다난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스마트폰, 가전 등 IT 수요 감소는 반도체 시장 실적 감소로 이어졌고, 특히 메모리 시장에 여파가 가장 컸다. 주요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전략적 감산에 들어갈 정도였다. 반면, 생성형 AI 시장 성장에 따라 AI 반도체와 고성능 메모리 수요는 급성장했으며 이는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미국, 대만, 일본, 인도, 한국 등 각국 정부 주도의 투자 계획이 이어졌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는 더욱 강화됐다. 그 가운데 중국 화웨이는 첨단 7나노미터(mn) 공정의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견조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 밖에 낸드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일본 키오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병도 시도됐다.
■ 생성형 AI 열풍…AI 반도체 HBM 수요 급증
올해 생성형 AI인 챗GPT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AI 반도체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AI 반도체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자, 엔비디아 H100 GPU과 같은 AI 반도체의 리드타임(주문해서 받기까지 기간)은 52주로 늘었고 가격은 2배로 뛰었을 정도다. 전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80% 점유율로 독점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에는 AMD, 인텔도 서버용 AI 반도체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경쟁에 뛰어들었다.
AI 반도체 시장 성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대폭 끌어올린 고성능 제품으로 AI 반도체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대형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HBM3을 독점 공급하면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내년 HBM3E 양산 시대를 앞두고 삼성전자, 마이크론까지 가세하면서 HBM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내년에 ▲엔비디아는 HBM3E가 탑재되는 H200, B100를 출시 ▲AMD는 HBM3이 탑재되는 MI300, HBM3E가 탑재되는 MI350을 출시 ▲인텔은 HBM3이 탑재되는 가우디3을 출시할 계획이다.
■ 낸드 업계 지각변동 예고했던 키오시아-마이크론 합병 중단
지난 10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는 일본 키오시아와 4위 마이크론이 합병을 시도했으나 중단됐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낸드 시장의 약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게 되면서 산술적으로 1위인 삼성전자(31%)를 앞서고, 3위인 SK하이닉스는 내려가게 된다. 업계에서는 낸드 시장에 지각변동일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웨스턴디지털은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분리해 키오시아홀딩스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경영 통합을 시도했다. 통합 지주회사의 최종 출자 비율은 웨스턴디지털이 50.1%, 키오시아가 49.9%이고, 실질적인 경영권은 키오시아가 갖게 되고, 본사는 일본에 위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키오시아에 간접 출자한 SK하이닉스의 반대로 양사의 합병 논의가 중단됐다. 또 최종적으로 합병을 마무리하려면 계약 후 2년 내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특히 중국이 반대할 것이란 전망도 합병 중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키오시아 최대 주주는 베인캐피털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다.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한미일 연합 특수목적법인(BCPE Pangea Intermediate Holdings Cayman)를 통해 2018년 키오시아홀딩스에 약 4조원을 투자해 지분 15%가량을 확보했다.
결국 10월 말 웨스턴디지털은 키오시아와 합병 논의가 중단되자, 공급과잉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낸드 사업을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등을 제조하는 데이터스토리지 법인과 낸드플래시 법인 2개 상장사로 나눠진 것이다.
■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에 7나노 칩 탑재...반도체 굴기 성공했나
지난 8월 말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고강도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고성능 7나노미터(mn) 반도체가 탑재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해 주목받았다. 이 칩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이 7나노급인 N2+ 공정에서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기술 및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는 화웨이가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고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는 점 때문이다.
화웨이는 2019년 5월 국가 안보 문제로 인해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미국 공급업체와 다른 업체들은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SMIC는 고급 기술을 군사 사용자에게 전용할 수 있다는 우려로 2020년 12월 거래 제한 목록(엔터티 목록)에 추가된 바 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핵심 기술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2배로 늘렸으며 일정 수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7나노 칩 개발에 대해 주목하며 수출통제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0월 상원 상무위원회에 출석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라며 “대중국 수출 통제 집행 강화를 위한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은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 중국 수출 규제에 대해서도 계속 강도 높은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 대상으로 AI 칩 수출 금지를 강화하자,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 흑연 수출을 맞으면서 맞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 반도체 공급망 확보 경쟁 심화…유럽·일본·인도까지 가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별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유럽, 인도, 일본, 베트남까지 구체적인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글로벌 기업의 유치에 성공했다.
유럽연합(EU)은 파격적인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인텔,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유럽 내 제조공장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인텔은 지난해 독일,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투자를 확정한 데 이어 올해 6월 독일, 폴란드, 이스라엘 투자를 추가했다.
먼저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300억 유로(43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올해 건설을 시작해 2027년 가동할 계획이다. 독일 정부도 당초 68억 유로 보다 더 큰 규모의 100억 유로(약 14조3천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는 46억달러(5조9천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패키지, 테스트 공장을 건설해 2027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대만 TSMC도 이달 초 뒤늦게 독일 드레스덴에 100억 유로(약 14조 3천억원)를 투자해 12나노, 16나노 공정의 300mm(12인치) 파운드리 팹 건설을 확정 지었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는 지난해 말 일본 소니, 덴소와 합작법인 JASM을 설립하고, 일본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1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지난 7월 TSMC는 구마모토현에 2공장 추가 건설을 결정했다.
JASM 1공장은 일본 내 최초 16㎚(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생산 능력을 갖춘 12인치(300㎜) 웨이퍼 팹(반도체 생산공장)으로 구축되며, 내년 2월께 완공돼 2분기부터 정식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구마모토 2공장은 내년에 착공해 2026년 말 7나노 첨단 공정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달에는 삼성전자도 일본 정부의 러브콜을 받아 요코하마시에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R&D) 거점을 세우고 2025년에 가동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지역에 2028년까지 400억엔(약 3600억원)을 투자하고, 일본 정부는 절반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인도는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 입어 올해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이끌어 냈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지난 6월 인도 구자르트 지역 반도체 후공정(테스트, 조립) 시설 건설에 1, 2단계에 걸쳐 총 27억5천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1단계 건설은 올해 시작해 2024년 말에 가동될 예정이며, 2단계 프로젝트는 2020년대 후반에 시작한다. 또 세계 반도체 장비 1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얼리얼즈(AMAT)도 같은달 벵갈루루에 4년간 4억 달러(약 52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링 센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나리 기자(narilee@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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