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부터 달랐다”...김홍국 하림 회장, 양계장서 시작해 재계 13위 총수로

2023. 12. 3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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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인수 마루리되면 하림 자산 약 43조
CJ그룹 보다 앞선 재계 13위로 뛰어올라

[비즈니스 포커스]



하림이 국내 최대 선사 HMM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하림은 재계 13위 그룹으로 올라서게 된다. 병아리 장사로 시작해 대기업을 일군 김홍국 하림 회장의 사업 여정은 11살 때 시작됐다.

그는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10마리를 받아 키웠다. 닭장수에게 이를 팔고 나니 돈이 생겼다. 재밌었다.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사서 키워 파는 것을 되풀이했다. 10마리밖에 없었던 병아리는 금세 100마리를 넘었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사업에 눈을 뜬 시간이었다.

 김 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북 익산에 닭·돼지 농장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규모도 상당했다. 그의 농장에는 5000마리가 넘는 씨닭과 수백 마리의 돼지가 있었다. 20대 초반 김 회장은 익산에서 제일 큰 양계업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계열화 사업으로 육가공업계 점령

김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 최고경영자(CEO)로도 꼽힌다.
김 회장이 하림을 육가공 업체 최강자로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직접 축산업에 뛰어들며 느꼈던 수많은 경험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는 돼지, 닭 등 1차산업인 축산물의 가격 변동이 심해 늘 걱정이었다. 반면 축산물을 재료로 사용해 만든 2차산업인 가공식품의 가격은 안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회장이 농장과 공장, 시장을 연결한 이른바 ‘삼장(三場) 통합’ 계열화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 배경이다. 즉 농장에서 닭을 기르고, 공장에서는 가공을 담당하며, 시장에서는 이렇게 만든 식품을 판매할 경우 축산물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 구상을 실현해 나갔다.

김 회장은 1986년 하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코리아데리카후드를 설립하며 그가 구상한 삼장 통합 경영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업계 최초로 병아리 위탁사육 시스템을 도입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회사가 직접 닭을 기를 경우 부지 매입과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를 줄이기 위해 고안한 것이 병아리 위탁사육 시스템이다. 계약 농가에 시설비와 사료 및 모든 관련 부재료를 하림이 공급하는 조건으로 위탁사육을 실시했다.

획기적인 전략을 앞세워 하림의 사업은 더욱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2년 뒤인 1988년 하림식품을 설립하고 마침내 목표로 하던 축산 분야 수직 계열화를 이뤄냈다. 하림식품은 농가에서 생산된 육계 전량을 인수해 도계 가공처리 후 유통시키는 역할을 했다.

때마침 운도 따랐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치킨 체인점이 인기를 끌면서 닭고기 수요가 급증했다. 하림식품은 그 수혜를 톡톡히 누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전 직원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생산에 매달려 일해야 겨우 주문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주문이 넘쳐났다. 하루 매출이 3000만원에 달할 정도였다.

하림식품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에 힘입어 김 회장은 1990년 10월 전북 익산 망성 지역에 현대식 공장을 건설했다.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고 하림그룹의 돛을 올렸다. 이후에도 하림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히 1990년대 한국에서 치킨 프랜차이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이 업체들에 닭을 공급하는 하림도 급성장을 이어갔다.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끝에 1997년에는 코스닥시장에도 입성했다. 한국 최고의 ‘닭고기 기업’이라는 명성과 함께. 김 회장이 애초 세웠던 목표를 달성한 순간이기도 했다.

 

 숱한 M&A로 사업 확장 승부

김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이내 새로운 목표를 내놓는다.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이다. 이때부터 김 회장은 감춰온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서다. 그의 원칙은 간단했다. ‘기존 회사와의 시너지 여부’와 ‘업종의 성장 가능성’ 등 두 가지였다.

이런 원칙에 기반해 김 회장은 ‘M&A의 귀재’라고 불릴 만큼 숱한 M&A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회사 몸집을 키워나갔다. 김 회장은 2001년 사료 생산 회사인 천하제일사료를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직접 앙계장 등에 공급할 사료 사업까지 손을 뻗쳤다. 그해 한국농수산방송(현 NS홈쇼핑)도 사들이며 B2C 강화에도 나섰다.




이후에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활발한 M&A를 진행했다. 2007년 돈육가공업체 선진과 2008년 대상그룹의 축산물 사육 가공사업부문인 팜스코를 차례로 인수했으며, 2011년에는 당시 세계 19위의 미국 닭고기 업체 앨런패밀리푸드까지 손에 쥐며 마침내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2015년에는 하림의 명운을 건 대대적인 승부수를 띄운다.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바로 물류다. 자산 4조원이 넘는 해상화물운송업체인 팬오션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김 회장은 다시 한번 하림의 새 비전을 제시한다. 해외기업 ‘카길’이 바로 하림이 가야 할 길이라고 선포했다. 세계 1위 곡물 회사이자 해운업계 큰손이기도 한 카길은 미국에서 소고기 및 다양한 식품들을 한국으로 수출한다. 카길이 직접 운용하는 벌크선 약 600척을 활용해 비용절감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림이 인수한 팬오션 또한 상업 곡물 수송분야 세계 선두였던 회사였다. 항만네트워크 구축 외에도 곡물시장 정보에 빠삭하다. 팬오션 인수를 통해 김 회장은 핵심사업인 닭고기 등 축산을 비롯해 식품가공업, 사료 부문 사업에 해상 물류 역량을 더해 ‘한국판 카길’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팬오션 인수에 하림이 1조원 이상을 투입하면서 ‘승자의 저주’ 우려도 나왔지만 김 회장의 결정은 옳았다. 2015년 이후 팬오션은 꾸준히 성장했다. 현재 하림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23년 3분기 기준 하림의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상운송과 곡물유통업을 담당하고 있는 팬오션의 사업 영역이다.

HMM 인수까지 확정될 경우 하림의 해상 물류 역량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국내 1위 벌크선사 팬오션과 함께 세계 8위 컨테이너선사 HMM까지 거느리며 ‘해운 공룡’으로도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팬오션과 HMM의 시너지를 강화해 국가대표 국적 선사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하림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서울 양재물류센터까지 완공되면 하림은 곡물 및 사료, 축산물의 생산부터 식품 제조 및 가공, 육상 및 해상 물류로 이어지는 ‘종합식품물류’ 기업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한국판 카길’이 되겠다는 김 회장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이번에도 ‘승자의 저주’ 우려는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해운 업황이 침체된 데다 하림 자산이 HMM보다 적어 ‘새우가 고래를 품는다’는 우려도 나온다. 6조원 넘는 인수 금액을 두고서도 무리한 투자라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하림이 어떻게 거액의 인수자금을 마련할지도 관심사다. 김 회장이 2024년 어떻게 산적한 과제들을 정리하고 물류사업의 방향을 정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하림이 HMM을 품에 안으며 국내 재계 순위도 요동치고 있다. 본계약이 마무리되면 하림의 자산(현재 17조910억원) 규모는 HMM(25조8000억원)을 더해 약 43조원이 된다. 재계 순위 13위에 오르게 됐다.




하림은 주력이었던 식품 분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국적선사로도 발돋움할 전망이다. 김 회장이 병아리 10마리를 밑천 삼아 맨손으로 일으킨 하림이 국내를 대표하는 종합식품물류 기업으로 도약을 앞두고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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