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조직적 채용 세습’ 유죄 확정

법원 “사기업 채용 재량 무제한 아냐”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응시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임원 아들 등을 합격시켜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엘지(LG)전자 임원 박아무개씨에게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박씨는 현재도 다른 엘지그룹 계열사에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임원 아들 등을 부정 합격시켜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엘지전자 임원 박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상고기각으로 확정했다. 엘지전자 인사업무를 맡았던 박씨는 2014∼2015년 한국영업본부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엘지전자 한 생산그룹장(임원)의 아들 등 일부 지원자를 최종 합격시켜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박씨가 합격시킨 임원 자녀들은 학점이 모자라 서류전형 합격은커녕 응시 자격조차 갖추지 못하고, 인·적성 검사나 면접에서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최종 채용됐다. 검찰 수사에서 박씨는 신입사원 채용청탁이 늘어나자 이를 효율적으로 취급하기 위해 ‘채용 청탁 관리 방안’을 만들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탁 대상자 가운데 선별된 이들을 관리대상자(GD)로 지칭해 특별관리하고, 이들을 “서류전형 통과시켜 1차 면접에 한해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다.

1·2심은 박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엘지전자 같은 대기업 채용은 전체 절차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채용을 결정함으로써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인사권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합격자를 결정해 사회 통념상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절차의 공정성을 허무는 행위는 사회구성원들에게 큰 박탈감을 일으킨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하급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 과정에서 박씨는 청탁에 따라 채용이 이뤄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기업의 채용 재량”이라며 업무방해죄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엘지전자가 사기업으로서 채용 과정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는 점은 당연하다”면서도 “그 채용 재량이 법률을 위반하거나 사회통념상 공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정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며 박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식회사라는 기업의 형태, 채용 단계에서 외부에 공고한 내용, 공개경쟁채용제도에서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투명성·공정성·형평성의 법적 수준, 사회통합적 공감대 등을 고려해 ‘채용 재량’의 범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