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성·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잃다…감세·내수악화 악순환
2024 정부 예산안 되짚어보기
한정된 자원 배분…동의 구했어야
국회 심의 밖 예비비도 많이 늘려
내수악화·경기둔화에 감세까지
정부지출 감소로 시작된 악순환
2024년도 대한민국 정체가 밝혀졌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확정되었다는 얘기다. 2024년 대한민국이란 657조원을 쓰는 정치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예산을 어디에 지출하는지에 따라 대한민국의 본질이 드러난다.
내년 예산은 재정의 책임성,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 국가가 복지지출을 늘리고, 경기를 부양하고 연구개발(R&D) 등 지출을 확대하면 재정의 책임성이 증가한다. 반면, 지출을 너무 늘리면 재정 건전성은 악화한다. 재정의 책임성과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국가재정 운용의 본질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재정의 책임성을 더 추구할 수도 있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재정의 책임성과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 놓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물가상승률 못 따라잡은 재정 지출 증가율
2024년 예산이 재정 책임성을 위배했다는 것은 명확하다. 내년 총지출(657조원)은 올해(639조원)보다 불과 2.8%만 증가한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3.5%가 넘는다. 실질적 정부지출 규모는 줄어들었다. 재정 책임성의 희생으로 재정 건전성은 달성했을까? 내년 통합재정수지는 무려 -45조원이다. 지출보다 수입이 45조원 더 적다는 의미다. 지출은 불과 2.8%만 증가하는데도 재정수지 적자가 큰 이유는 총수입이 2.2% 감소하기 때문이다. 총지출은 +2.8%지만 총수입은 -2.2%니 재정 건전성은 올해보다 악화한다.
재정의 책임성과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어려운 일을 해낸 원동력은 국세 수입 감소다. 국세 수입은 정부안 기준 8.3% 감소한다. 일단 국세 수입 감소는 정부의 감세 영향도 있다. 법인세율을 내리고 세금 감면도 확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법인세율을 내려도 투자가 확대되어 세수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세수는 줄고 투자 증대 효과는 증명되지 않았다. 관련 실증연구들을 보면 법인세 인하와 기업 투자 증대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법인세율을 내렸을 때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실증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증거 기반 정책이 중요하다. ‘뇌피셜’(자기만의 생각)로 정책을 만들면 안 된다.
정부는 세수 감소의 이유가 감세 효과보다는 경기 둔화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감세 효과보다 경기 둔화 효과가 더 중요한 것은 맞다. 다만 경기 둔화로 인한 세수 감소가 재정당국의 면책 사유는 아니다. 특히, 전세계 경기가 살아나고 수출도 회복되는 상황에서 내수 악화로 발생한 경기 둔화는 재정당국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정부지출 감소가 내수경기를 얼어붙게 하고, 내수 악화가 세수입 감소를 만들고, 세수입 감소가 정부지출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재정당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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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자연증가분으로 ‘사회복지’ 늘어
분야별 예산 증감률을 분석하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알 수 있다. 말보다는 숫자가 더 중요하고 객관적이다. 정부의 실질적 최우선 과제는 예산 증감률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판단한 2024년 최우선 과제는 ‘통일·외교’ 분야다. 19.5% 증가로 압도적 1위다. 특히 통일 부문을 뺀 ‘외교통상’ 부문만 보면 올해보다 32% 증가(1조6천억원)한다. 내년 ‘외교통상’ 부문 증대 원인은 국외원조(ODA) 금액 증가다. 전체 국외원조 금액은 올해보다 무려 44%(2조원) 폭증한다.
우리나라 국외원조 금액은 세계 16위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13위인 것을 고려하면, 국외원조를 늘릴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다만 예산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이 핵심이다. 정부는 2024년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국외원조 등 외교통상 부문 증대를 꼽은 것이다. 만약 정부가 우리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저개발 국가의 인도적 지원을 위해 국외원조 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다면, 그 취지는 존중한다.
다만 국민에게 이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만약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장치였을 뿐이라면 이는 실패한 전략이다. 2조원의 국외원조 금액 증가액을 고려해 보면 ‘오일머니’로 엑스포 유치에 졌다는 핑계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 원안 국외원조 금액에서 2100억원이 삭감됐다.
증가율이 두번째로 높은 분야는 ‘예비비’(8.7%)다. 예비비는 국회 예산심의권 바깥에 존재하는 항목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2024년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과제는 국회의 예산심의권 밖에 존재하는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다만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8천억원이 삭감되어 최종 예비비는 4조2천억원으로 확정됐다.
‘사회복지’ 분야도 8.7% 증가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17조9천억원이 늘었다. 이 중 가장 많이 증액된 부문은 공적 연금과 노인 부문(12조원)으로 기초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 지출액 증가분을 담았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해 자동으로 증가한 것에 불과하다. 주택 부문도 4조원이 증가했다. 정부가 주택이나 전세자금 융자사업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랑하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금액을 1조7천억원 늘린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약자 복지’의 핵심이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박수를 보낸다. 다만 전체 사회복지 지출 증가액 중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안에서 가장 많이 감액된 부분은 과학기술 분야(-7.5%)와 교육 분야(-6.9%)다. 정리하면, 2024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부의 정책 최우선 순위는 외교 지출과 국회 심의 없는 지출이었다. 그리고 가장 덜 필요하다고 생각한 분야는 과학기술 분야와 교육 분야였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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