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자동차

서울문화사 2023. 12. 3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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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가 도쿄의 한 사찰에서 신형 그란투리스모를 공개했다. 이름 그대로 더 멀리 더 편하게 달리기 위한 경주 차였다.
마세라티의 신형 2세대 그란투리스모.

왼쪽으로 달리는 나라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전 메이저리그 최초로 두 번이나 만장일치로 MVP에 선정된 오타니 쇼헤이다. 오타니는 공을 던질 때는 오른손잡이지만, 배트를 쥘 때는 왼손잡이다. 광고사진 속 오타니는 왼손에 화장품을 쥐고 있었다. 오타니 쇼헤이와 좌측 통행의 나라. 나의 도쿄 첫인상이다. 이번 출장의 목표는 아시아 최초로 도쿄에서 공개되는 신형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란투리스모를 보기까지는 하루가 더 남아 있었다.
신형 그란투리스모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버전으로 생산된다. 시작 가격은 약 2억 원 대.

행사장은 쓰키지 혼간지. 쓰키지 혼간지는 각양각색의 빌딩으로 빼곡한 도쿄에서도 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메이지 신궁을 설계한 건축가 이토 주타는 쓰키지 혼간지를 고대 인도 양식의 석조건물로 지었다. 인도풍 불교 사찰에서 이탈리아 럭셔리 GT카 행사가 열린다니. 묘한 일이다. 주차장에는 두 대의 마세라티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레칼레 GT와 그레칼레 트로페오를 번갈아 타며 도쿄만 건너 지바현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레칼레 GT와 트로페오는 완전히 다른 차였다. GT에는 2.0L 4기통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이, 트로페오에는 3.0L V6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이 올라간다. 두 차가 더욱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운전석 탓도 있다. 트로페오는 일본 내수용 자동차처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지만 GT는 왼쪽에 있다.

일본에서는 수입차 운전석이 좌측에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한 이유도 있다. 일본의 톨게이트에는 요금 정산소가 양쪽에 있어 결제를 위해 차에서 내리거나 기다란 쓰레기 집게로 현찰을 건넬 필요가 없다. 도쿄에서 지바에 오가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번호판의 비밀이다. 자동차 브랜드들은 일본에서 시승차를 운용할 때 번호판 숫자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인다고 한다. 실제로 GT와 트로페오 번호판에는 각각 300, 530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두 차의 최고출력과 동일하다. 자동차 브랜드에서 돈을 더 주고서라도 번호판 숫자를 최고출력에 맞추는 것이 일종의 관례라고 한다. 대단한 디테일이다.

마세라티의 두 번째 SUV 모델 그레칼레. 이름은 ‘지중해의 강력한 북동풍’을 뜻한다.

마세라티여야만 하는 이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일본에서 마세라티 오너스 클럽을 운영 중인 오너를 만나기로 했다. 에코 신이치 회장은 30년 전 마세라티 오너스 클럽 재팬을 창립했다. 지금은 전국에 수백 명이 활동하고 있는 클럽이지만 처음부터 거창한 뜻을 품고 클럽을 만든 것은 아니다. “제가 마세라티를 좋아하기 시작하던 무렵 알레한드로 데 토마조라는 분을 만났어요. 마세라티를 소유했던 데 토마조의 창립자죠. 그분이 일본에 오너스 클럽을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사실 그때는 일이 바빠서 귀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오너스 클럽 이벤트에 참석한 후로 마음을 바꿨죠. 오너스 클럽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음악, 음식, 자연을 가족과 함께 향유하는 문화임을 깨달았거든요.”

나가야마 류이치는 오너스 클럽에서 사무과장을 맡고 있다. 그는 다른 이탈리아 슈퍼카를 제쳐두고 마세라티를 선택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마세라티 디자인은 동시대의 페라리, 람보르기니보다 언제나 차분했어요.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힘이 넘친다는 인상을 풍기죠. 인테리어는 클래식하고요. 스티어링휠을 쥐고 있으면 손으로 만든 차라는 게 느껴집니다. 모던과 클래식이 안팎으로 조화를 이루는 게 마세라티의 강점이죠. 그런 점에서 제게 ‘궁극의 마세라티’는 뒤편에 전시된 3200 GT입니다.”

신이치 회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마세라티는 이탈리아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점에서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종종 비교되곤 합니다. 제가 느끼는 페라리, 람보르기니는 주말에 애인과 함께 즐기는 차예요. 화려하고 강렬하죠. 마세라티는 조금 다릅니다. 주중에는 비즈니스에 사용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차라는 이미지거든요. 페라리를 사려는 사람은 그 차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마세라티를 사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는 ‘나’의 모습이 확실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마세라티를 활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시승차 번호판 숫자는 엔진 최고 출력과 일치했다.
그레칼레 트로페오에 올라간 3.0L V6 트윈 터보 엔진. 최고 출력은 530마력에 달한다.

 

“마세라티를 사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는 ‘나’의 모습이 확실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마세라티를 활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세라티 오너스 클럽 재팬의 에코 신이치 회장(오른쪽)과 나가야마 류이치 사무과장 (왼쪽).

자동차가 사람을 고른다

그란투리스모 공개 행사장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수장이자 마세라티 파트너로 활동 중인 후지와라 히로시도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차’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좋은 차는 내가 원할 때 언제, 어디서든 운전할 수 있는 차다.” 언제, 어디서든 운전할 수 있는 차. 그란투리스모가 만들어진 이유다. 지금은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GT, 즉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마세라티는 원래 레이싱카 제조사였다. 그전까지 생산된 모든 마세라티 자동차는 공도가 아닌 서킷에서 달렸다. 전쟁이 끝나고 호황기에 들어서자 ‘장거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레이싱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 차가 194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A6 1500 그란 투리스모다.

행사장에 공개된 그란투리스모는 A6 1500 75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에디션이다. 전 세계 75대뿐이다. 전면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은 마세라티의 슈퍼카 MC20과 비슷했다. 날렵한 헤드 램프, 보닛 양쪽에 물 흐르듯 파고든 에어덕트가 대표적이다. 타원형 그릴과 커다란 삼지창 엠블럼은 낮에 본 3500 GT의 그것이었다. 2세대 그란투리스모는 총 3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다. 3.0L V6 네튜노 트윈 터보 엔진을 장착하되 세팅을 달리해 각각 490마력, 550마력을 내는 모데나와 트로페오, 순수 전기 에너지만으로 761마력의 힘을 내는 폴고레다.

그란투리스모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낮에 신이치 회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처음 차를 사는 분들께 조언을 드리자면 차를 만져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냄새도 맡아보고요. 그러다 보면 ‘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차를 만나게 될 겁니다. 디자인, 성능, 헤리티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차와 교감하는 느낌이 오는 차를 사길 권합니다.” 신이치 회장의 조언대로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안팎으로 살펴본 그란투리스모는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할 만한 차였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마음만 맞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란투리스모 모데나의 가격은 2천4백40만 엔, 한화 약 2억2천만원부터 시작한다.

Editor : 주현욱 | Cooperation :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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