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딱 망한 부자의 자손들이 다시 부자가 되는 이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가 계속 부자로 살아가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려받을 재산이 없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다 별 재주가 없어도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이 더 부자로 잘산다. 물려받는 부로 경제 상태가 결정되는 건 대부분 불공정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서 이를 방지하려는 정부 정책들이 만들어진다. 부모 재산에 따라 경제력 차이가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것이 경제 정책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가 있다. 부자의 자식이 더 잘사는 것이 정말 부모 재산을 물려받아서일까. 부모 재산을 물려받지 않았다면 부자의 자식은 그냥 평균 수준의 재산만 가지게 될까. 이에 대한 실제 사회실험 사례가 있다. 중국 공산혁명 당시 지주들은 모든 땅을 몰수당하고 몰락했는데, 그 후 지주의 자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관한 연구다. 앨버트 알레시나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연구팀이 중국인 3만6000여 명을 조사해 2020년 그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공산화로 몰락한 지주들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이고 지주와 보통 농민, 소작인으로 빈부 격차가 나뉜 사회였다. 땅을 많이 보유한 지주들이 부자이면서 사회 상층부를 차지한 지배계층이었다. 1900년대 초 전통 중국 사회에서 지주들은 보통 사람보다 평균 20%가량 소득이 많았다. 중국 마오쩌둥은 지주와 보통 농민의 빈부 격차가 중국 사회문제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으며, 결국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중국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획득했다. 정권을 잡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대대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지주들로부터 모든 땅을 몰수해 가난한 농부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지나서는 토지를 완전히 국유화했다. 지주는 한 조각의 땅조차 소유할 수 없게 돼 완전히 몰락했다. 지주 수십만 명이 살해당했고, 살아남더라도 지주와 그 가족은 사회 최하 계층으로 떨어졌다. 공산사회는 계급사회다. 지주의 자식들은 공산 사회에서 가장 적대적 취급을 받는 자본가 계급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 활동에서 차별받았다. 중국은 빈부 격차가 거의 없는 평등한 사회가 됐다. 모두 가난한 게 문제이긴 했지만, 어쨌든 빈부 격차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지주의 자식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 못살았다. 1940~1965년 태어난 지주의 자식들은 보통 사람보다 소득이 5%가량 적었다. 지주 계급은 완전히 몰락했다.중국은 1980년대 이후 개방화 정책을 실시했다. 보통 사람이 돈을 벌어도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모두가 돈이 없고 평등한 사회였으니, 이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권력자의 자녀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그러면 보통 사람이나 과거 지주의 자손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때는 지주의 자식들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지주의 손주들이 활동하는 시기였다. 개방화 전 지주의 자식들은 보통 사람보다 못살았다. 그런데 개방화 이후 지주의 손주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 잘살았다. 2010년 기준으로 보통 사람보다 12%가량 소득이 많았다.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계층을 꼽으라면 공산당 당적을 가진 공산당원들이다. 공산당 당적은 엘리트만 가질 수 있고, 그만큼 보통 사람보다 수익이 컸다. 그런데 공산당원보다 지주 자손들의 평균 수입이 더 많았다. 할아버지가 지주였던 사람이 공산당원보다 2%가량 소득이 많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지주였던 사람들이 지금 더 잘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할아버지의 부가 아버지에게 이어지고, 다시 손주에게 이어진 것이라면 이해된다. 그런데 아버지 대는 완전히 몰락했다. 모든 땅을 빼앗기고, 자본가 출신으로 낙인찍혀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못살았다. 그런데 어떻게 손자·손녀들은 공산당원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정도로 되살아났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물려받은 재산은 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주의 자손들은 재산을 물려받아서 부자가 된 게 아니다. 재산 이외에 다른 더 중요한 요소가 있는 것이다.
부자는 기준 자체가 높아
알레시나 교수 연구팀이 그 원인과 관련해 3가지를 발견했다. 일단 지주의 자손들은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 중등교육까지 마친 사람이 평균보다 7% 많았다. 그리고 평균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었고, 뭔가를 해보려고 더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즉 교육, 일하는 시간, 진취적 경향 등 3가지에서 차이가 있었고, 바로 여기에서 소득 차이가 발생했다. 부자가 되는 데 필요한 건 재산이 아니다. 교육, 일하는 시간, 진취적 경향이 필수 요소이고, 부자의 자손이 계속 부자인 이유는 이런 사회적 자본을 대대로 전수받았기 때문이다.이런 사회적 자본을 물려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는 기준의 문제다. 어느 정도 배우면 되는지, 어느 정도 공부하면 충분한지 등에 관한 기준 말이다. 자식이 하루 5시간씩 열심히 공부한다고 치자. 그럼 어떤 집에서는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만 하다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좀 쉬면서 하라고 조언하고, 공부 말고 다른 것도 중요한 게 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박사, 고위 공무원이라면 뭐라고 말할까. 이들은 하루 5시간씩 공부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최소 하루 8시간은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몇 달 열심히 해도 안 되고 몇 년을 해야 한다. 이런 부모는 자식이 하루 5시간씩 공부한다고 하면 싫은 소리를 한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더 해야 된다고 눈치를 준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하루 8시간이면 충분히 일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고위 임원까지 오른 사람, 성공한 사업가는 알고 있다. 하루 8시간만 일해서는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에서 하라는 일만 열심히 하면 그 일을 아무리 잘해내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보통 가정에서는 자식이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주어진 업무만 잘해내면 칭찬한다. 하지만 소위 성공한 사람이 있는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뭔가를 더 하라고 옆구리를 찌른다.
부자의 자식들은 공부든, 일 처리든, 사업이든 최소한 이 중 한 분야에서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기준으로 키워진다. 부자가 일부러 자식에게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기보다 자기 기준 자체가 보통 사람보다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식에게 뭔가를 시킬 때 자기가 생각하는 최소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부자는 그 기준 자체가 높다. 자식도 부모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보통 사람보다 기준이 높아진다. 어느 정도 배워야 하는지, 얼마나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그 기준에 따라 일하다 되니 보통 사람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잘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연히 소득 차이가 발생한다.
중국 지주의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를 배우고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물려받았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그 기준대로 일하다 보니 자손들은 저절로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며 또 여러 시도를 한다. 그 결과가 완전히 망한 지주의 손자·손녀가 공산당원보다 더 잘살게 된 이유가 됐을 테다.
부자들, 자손에게 경험 물려줘
혹자는 과거 지주는 땅을 소유만 할 뿐이고 농부들에게 땅을 빌려줘 소작료만 챙겼는데 무슨 업무 지식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농민과 지주들을 자세히 묘사한 펄벅의 소설 '대지'를 보면 농사일에 전문 지식이 없는 지주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쌀이 좋은지 구별 못 하는 지주, 계량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주는 소작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사기를 당해 결국 땅을 팔고 지주 자리에서 내려오고 만다. 지주 자리를 지키려면 소작인보다 농사일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했다.부자가 자식,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산이 아니다. 부자의 재산을 몰수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중국의 사회적 경험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재산 이외에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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