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시도로 영구장애 얻은 조현병 환자…병원 책임일까? [법원 앞 카페]

우종환 2023. 12. 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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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사진=Ideogram

정신질환의 일종인 ‘조현병’은 언론보도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주로 ‘조현병 증상이 있는 어떤 사람이 어떤 범행을 저질렀다’와 같은 내용들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9년 조현병 증세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흉기로 살해한 ‘안인득 사건’입니다.

의학에서 조현병은 환각과 망상 같은 증상을 보이며 자신의 생각과 실제를 잘 구별하지 못 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거죠.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의 5~10%는 자살로 사망하고, 20~40%가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고 알려진 만큼 자살 위험이 큰 병이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스스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결국 병원 안에서 자살시도를 했다가 목숨은 건졌지만 영구장애를 얻게 됐습니다. 이 경우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요?

조현병 진단과 가정사, 자진입원

49살 남성 A 씨는 20살이었던 1994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약 20년간 대학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으며 증세를 조절해왔습니다. 그러다 2015년쯤부터 A 씨의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당시 함께 살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이로 인한 외로움을 호소하면서 자살충동도 커졌다고 의료진에게 진술했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 A 씨는 2주치 처방약을 한 번에 먹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의식을 회복한 뒤 A 씨는 두 달 정도 폐쇄병동에 스스로 입원했다가 퇴원했습니다. 당시 병원은 A 씨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따로 살던 어머니와 A 씨 누나들 사이에 유산 갈등이 생기자 A 씨의 스트레스가 악화한 걸로 판단했습니다.

이후 다시 통원치료를 이어가던 A 씨는 어느 정도 증상 악화 없이 생활하다가 2019년 다시 증상 악화를 겪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함께 살게 된 어머니와 생활 과정에서 망상과 불면 증세를 겪었고 결국 같은 해 11월 경기 고양시에 있는 D 대학병원 폐쇄병동에 자진입원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19년 12월 20일이었습니다. 이날 점심쯤 어머니가 A 씨를 면회해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간 뒤 오후 3시쯤 간호사의 인솔로 다른 환자들과 함께 병원 내부를 산책하던 중 A 씨는 갑자기 병원 흡연구역으로 가 흡연구역 난간을 넘어 뛰어내렸습니다. 당시 난간 너머는 5m 정도 낮은 공간이 있었고 난간 높이는 1.3m 정도였습니다.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A 씨는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척수가 손상돼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됐고 상체도 불완전한 상태가 됐습니다. 스스로 배뇨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평생 관을 삽입한 채로 살아야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자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신의 상태를 병원이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며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병원에 배상책임"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결론은 ‘병원이 배상해야 한다’ 였습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최규연 부장판사)는 D대학병원이 A 씨에게 3억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앞서 언급한 조현병의 특징을 강조했습니다. 5~10%가 자살로 사망하고 20~40%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고 보고된 만큼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들에게는 환자의 자살 시도를 염두에 두고 주의 깊게 감시·관찰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스스로 폐쇄병동에 입원한 만큼 더욱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반면, 재판 과정에서 병원 측은 A 씨가 자살을 시도할 거라고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A 씨의 면담기록을 들었습니다.

병원이 제시한 A 씨 면담 기록

2019. 11. 26.
- 자살 시도 없다고 함

2019. 12. 10.
-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인지 확인하자 “자살 안 해요”라고 말함

2019. 12. 11.
- “자살 생각 없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자살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전 지금 자살할 생각 없어요. 자살할 수도 있겠지만요. 이유는 없어요”라고 말함

2019. 12. 12.
- “지금은 좋아요. 나쁜 생각 더 안 들어요”라고 말함

기록만 보면 A 씨의 상태가 매우 호전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오히려 이 면담 기록이 A 씨의 자살 위험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기본적으로 A 씨는 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 두 차례 자살 시도 경험이 있었고 이를 병원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이런 면담을 했지 않느냐는 겁니다. 또 12월 11일 면담기록과 달리 같은 날 당시 간호학과 학생들이 “A 씨가 청산가리를 먹고 죽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고한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A 씨가 직접 ‘자살 안 한 다’는 말을 몇 회 한 것만으로 자살위험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12월 11일에 자살 계획을 세웠음이 실제 보고되기도 한 점 등에 비춰 A 씨는 이 사건 사고 무렵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높았다고 보이며 병원 의료진들도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 1심 선고

또, 법원은 A 씨가 어머니와 관계를 불편해 했던 점, 사고 당일 어머니를 면회한 뒤 불안한 상황을 호소한 점도 지적하며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병원 측은 사건 A 씨가 갑작스럽게 자살을 시도한 만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 상황에서 간호사가 A 씨의 행동을 미처 보지 못한 건 불가항력이 아니라 처음부터 감시와 관찰을 제대로 할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나아가 해당 흡연구역의 상태를 고려하면 평소에도 자살 시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곳임에도 조치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큰 책임은 환자에게

다만, 법원은 A 씨의 자살 시도에 병원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병원이 계산한 A 씨의 실제 손해액은 앞으로 평생 지불해야 할 치료비와 장애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어 생긴 손해액을 합쳐 15억 원 정도였습니다. 법원은 병원이 이 중 25%만 책임을 져 3억 7,000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별도로 책정한 위자료 2,000만 원까지 합쳐 나온 게 배상액 3억 9,000만 원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원은 A 씨가 자신의 조현병 증세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만큼 책임도 그 수준에서 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어느 정도 정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임에도 자살 시도를 한 건 본인 책임이라는 겁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경위, 입원기간 중 A 씨의 태도나 증상, 자살 시도를 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상당히 장기간 조현병을 앓아서 정상인과 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A 씨에게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위험성 등을 판별할 충분한 의사결정능력이 있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A 씨는 스스로 자살을 시도한 잘못이 있고 이러한 잘못은 이 사건 사고의 중요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 1심 선고

법원은 병원이 A 씨에게 항정신병약물인 클로자핀 복용을 권유했지만 A 씨가 거부한 점, 의료진에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A 씨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봤습니다.
환자-병원 책임 나누는 기준

A 씨의 경우처럼 정신질환 환자가 병원에서 자살시도를 한 경우 통상적으로 법원은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지난 2010년 대법원은 영동세브란스병원 옥상에서 투신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에게 병원이 30% 배상책임을 지라고 선고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12년 한국의료법학회지에 등재된 ‘정신질환자의 입원 중 손상에 대한 법적 판단 –판례분석을 통한 연구’(박지혜·배현아)에 따르면 병원이 책임을 지는 기준으로 사법부는 ‘인력’, ‘시설’, ‘예견가능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병원이 정신질환자를 관리할 충분한 인력을 갖추었느냐, 또 돌발행동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춰졌느냐, 의료진이 환자의 돌발행동을 예견할 수 있었느냐를 따져본다는 거죠. A 씨의 경우에는 산책 당시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을 관리한 점, 흡연 구역 난간에 보호 시설이 안 된 점, A 씨의 자살 시도 가능성을 병원이 충분히 예견하지 못한 점 등이 모두 인정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해당 연구는 우리 법원이 환자의 책임도 결코 낮게 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연구진은 “대법원은 정신질환자가 완전한 의사결정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신체 위험성 등은 판별할 수 있는 의사능력은 갖고 있었다 할 수 있음으로 병원의 지시에 순응해 병세를 호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정신질환 환자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100% 못하는 것은 아니므로 진료를 충실히 받으며 돌발행동을 스스로도 억제해야 할 책임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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