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한민 감독 "'노량: 죽음의 바다' 해전, 100분의 오케스트라였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희한하게 이번엔 이순신 장군이 꿈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어요. 거슬린 게 없으셨던 건지. 아니었다면 호통치려고 나오셨을 것 같은데.(웃음) 그런 점에서 나름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김한민 감독이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2014년 '명량'을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노량: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꼬박 10년의 세월을 이순신이라는 하나의 이름만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 기나긴 여정을 매듭짓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지난 20일 개봉 이후 11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말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노량: 죽음의 바다'의 연출을 맡은 김한민 감독을 만났다.
"관객들 사이에서 절제된 연출에 대한 좋은 반응이 많더라고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대사, 이 전쟁을 어떻게 올바르게 끝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정성을 확보하다 보니 그렇게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나 명나라도 다들 각자의 입장이 있었을테니까요. 그걸 잘 살려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진정성 있을 것 같았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노량 해협의 겨울 바다에서 살아 돌아가려는 왜와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항복을 받아내려는 조선의 난전 그리고 이순신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다. 김한민 감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주변의 우려를 뚫고 이순신 3부작의 피날레를 완성했다. 그는 10년간 파고들었던 이순신에 대해 "보면 볼수록 위대한 면모가 느껴지는 분"이라며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임진왜란은 한마디로 처참했고 지리한 전쟁이었죠. 너무 오래 끌었어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보면 1년째인데 지리한 전쟁으로 느껴지잖아요. 당시엔 국제적 원조도 특별히 없는데 얼마나 처참했겠어요. 그런 전쟁의 중심에 이순신이 있었죠. 영웅을 넘어 성웅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굉장한 혜안을 가진 분이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전쟁을 끝내선 안 된다'는 대사는 제가 판단한 거예요. '노량'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오래 생각해봤어요. 이순신이 그토록 치열하게 적을 응징하고 더 나아가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결의를 드러내는 데 그 한 줄의 대사가 결국 '노량'을 만든 의미고, 그분의 대의라고 생각했죠. 난중일기 어디에도 그런 대사는 없지만 이순신이 전투에 나간 맹세에서 그 단초를 발견했어요. 이순신이 가장 바라던 전쟁의 종결이 아니었을까, 확신에 찬 상태로 만든 대사였어요."
'명량'의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의 박해일에 이어 이번엔 김윤석이 노량에서의 마지막 전투에 나서는 이순신을 연기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슬픔과 치열한 전투를 준비하는 장군으로서의 고뇌까지, 인간 이순신의 다양한 면모를 깊은 연기력으로 그려냈다.
"'명량'에선 용맹스러운 장수로서의 무게를 원했고, '한산: 용의 출현'에선 젊고 정보전에 능한 지장으로서 면모를 잘 보여줄 배우가 필요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선 용장과 지장의 면모를 모두 갖춘 배우로서 김윤석이란 존재가 상당히 귀했죠. 지혜로운데 혜안까지 가진 느낌을 줘야 했는데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한 배우가 흔하진 않더라고요. 김윤석이 그런 아우라를 갖고 있었고, 실제로도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줬어요."
특히 약 100분간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웅장한 규모와 긴박감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명량' 때부터 쌓아온 제작진의 촬영 노하우가 모두 담긴 결정체로, 김한민 감독과 제작진은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이번에도 물 한 방울 없이 VFX 기술와 초대형 세트로 모든 장면을 구현했다.
"그 치열한 전장에 이순신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고민이 컸어요. 또 치열하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지, 얼마나 큰 규모로 동원할 건지도요. 근데 이미 전쟁의 규모감은 전작에서도 표현했으니까 이번엔 3국 병사들의 시점을 따라가 보기로 했죠. 그렇게 해야 이순신이 왜 이 싸움을 준비했는지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복병은 사운드였어요. 박진감 있는 사운드를 덮으니까 장면이 안 살고, 또 너무 센티멘탈하게 가면 안 됐어요. 긴장감을 살리면서 정서를 자극해야 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뮤트'했죠. 전혀 다른 세계에 이순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아주 최소한의 사운드만 가져갔어요. 100분 간의 오케스트라에서 답을 찾아가는, 아주 과감한 콘트라스트였죠. 주변에선 '상업영화에서 이런 거 해도 되냐, 너무 실험적인 것 아니냐'고도 했지만, 그 처절한 전장에 선 이순신을 표현하려면 이렇게 갈 수밖에 없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로 긴 여정을 마친 김한민 감독은 이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린다. 이번엔 임진왜란을 다룬 드라마 '7년 전쟁'이다. 영화로는 SF물도 기획 중이다.
"차기작은 임진왜란 7년의 정치외교사를 다룬 드라마에요. 이순신 3부작을 하다 보니 임진왜란을 들여다보게 됐고 정치외교적인 면에서 매우 흥미롭고 강렬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땐 이순신이 완전 주연은 아니고요. 또 SF 영화도 계획 중인데 사극과 사이파이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아요. 시대가 다를뿐 메시지를 던지는 면에선 과거든 미래든 큰 차이가 없어요. 기대해 주시면 좋겠고요. 돌아보면 이순신 3부작을 모두 선보이기까지 운이 좋았어요. '명량' 때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개봉을 못 할 뻔했고, '한산: 용의 출현' 때는 코로나19 위기가 있었죠. 다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과정이 정말 큰 자산이죠. 이게 한국 영화에 잘 활용됐으면 해요. 또 이순신을 널리 알리고, 그분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 소중하게 상기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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