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도 지하철역 게이트 설치한 한국기업 아시나요?[워싱턴브리핑]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내 포트 토튼(Fort Totten)역. 전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로 들어서면 가슴 높이 정도의 투명한 도어가 눈에 띈다. 이는 부정승차를 막기 위한 장애물(barrier·배리어)로, 워싱턴DC와 인근 주(州)들을 잇는 지하철 등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워싱턴DC 교통국(The Washington Metropolitan Area Transit Authority·WMATA)이 올해 중반부터 각 역사내 개찰구에 설치하고 있는 '스윙도어 스타일 배리어'다.
이 같은 배리어 설치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워싱턴DC 교통국이 손실 감소를 위한 대책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교통국은 지난 2019년부터 워싱턴DC를 오가는 98개의 전 역사에 신형 자동 개집표기를 설치했는데, 여기엔 28.3인치(약 72㎝) 높이의 조개 모양의 배리어가 부착돼 있었다.
그러나 배리어의 낮은 높이 등으로 인해 부정승차율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더 커졌다. 교통국은 산하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철 및 버스의 부정승차로 연간 약 4000만 달러(약 520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으며, 돈을 내지 않고 전철을 탑승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약 13%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교통국은 부정승차를 막고자 역사내에 설치된 신형 개집표기에 성능이 개선된 배리어를 달기로 했다. 교통국은 우선 지난 3월 포트 토튼역을 시범역사로 정해 기존 게이트에 48인치(약 122㎝) 높이의 스윙도어 스타일의 배리어를 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설치해 테스트를 진행한 뒤 프로토타입보다 높이와 강도, 내구성 등이 향상된 55인치(약 140㎝) 배리어를 최종 모델로 확정했다. 이후 교통국은 지난 7월부터 펜타곤 시티(Pentagon City)역을 시작으로 워싱턴DC와 인근 버지니아 및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9개 역사에 최종 확정된 배리어를 추가로 설치·완료했다.
WMATA 홈페이지에 따르면 교통국은 내년 1월까지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 타이슨스 코너(Tysons Corner) 등 7개역에 이같은 배리어의 추가 설치를 완료한 뒤 향후 1년 동안 나머지 81개 역사에 대해 설치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교통국의 배리어 전면 교체 결정은 새로운 배리어 설치 후 부정승차율이 70% 이상 감소하는 데이터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 등이 지난 8월 교통국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배리어를 교체한 6개 역사의 부정승차율이 모두 7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포트 토튼역은 부정승차율이 71%가 감소(13%→4%)했고, 베데스다역은 78%(7%→2%)나 줄었다. 특히 마운트버넌 스퀘어(Mount Vernon Square)역은 부정승차율이 84%(15%→2%) 낮아졌고, 당초 39%의 부정승차율을 보였던 애디슨로드(Addison Road)역은 11%로 감소(72%)했다.
이 같은 워싱턴DC 교통국의 중점 사업을 담당하는 곳은 미국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 '에스트래픽'이다. 에스트래픽은 지난 2019년 워싱턴DC 교통국이 발주한 약 4000만 달러(약 520억원) 규모의 역무자동화시스템(AFC·Automatic Fare Collection) 및 유지보수 사업을 따냈고, 추가 수주까지 이어지면서 5200만 달러(약 675억원) 규모로 확대된 워싱턴DC AFC 게이트 사업을 지난해 말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배리어 교체 역시 추가 수주가 이뤄진 사업이다.
에스트래픽은 글로벌 교통솔루션 업체로, 지난 2013년 삼성SDS로부터 독립해 설립된 기업이다. 이미 국내에서 고속도로 요금징수 등 각종 교통솔루션 시스템 시장에서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물론 방글라데시 등 해외에서도 많은 사업들을 수주하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워싱턴DC 지하철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평판을 토대로 지난 4월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4700만 달러(약 610억원) 규모의 지하철 AFC 게이트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이 같은 실적에 최근 에스트래픽은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출액 3000만 달러(약 390억원)를 돌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3000만불탑을 비롯해 서비스탑,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며 3관왕을 달성했다.
에스트래픽 미주법인을 담당하고 있는 김범수 이사는 최근 뉴스1과 인터뷰에서 "저희가 삼성 시절부터 WMATA와 관계를 갖고 있었다"면서 "시장점유율이 높은 미국 회사가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쉽게 잘 대응을 안 해주다 보니 고객(WMATA) 입장에선 불편이 누적돼 왔던 차에 과감하게 기술력 등을 검증하고 저희와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DC 지하철 AFC 사업 초기엔 인력 투입 등 난제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경험이 있는 미국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중요한 엔지니어들은 한국 본사로부터 일단 파견을 받았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필요한 인력들을 현지에서 채용해 나갔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김 이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저희가 납기 일정을 다 맞춰서 사업을 진행하고 완료했다. 그러다보니 고객 입장에선 신뢰가 많이 쌓인 것"이라며 "한국에 모르던 작은 업체가 그렇게 한 것을 워싱턴을 통해 레퍼런스(평판)가 확보가 됐고, 좋은 레퍼런스로 (다른 지역에) 소개가 되면서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DC와 샌프란시스코를 뚫은 에스트래픽 미주법인의 다음 목표는 뉴욕이다. 현재 뉴욕은 낙후된 지하철 시스템에 대한 교체 요구가 높은 지역이다. 최근 긍정적인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워싱턴DC 지하철 AFC 게이트 교체 사업에 대한 소식을 접한 뉴욕 교통공사의 중간 관리자급 인사가 에스트래픽 미주법인 사무실 등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의향을 전해 왔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제일 큰 시장을 상징하는 게 한국에선 서울이듯, 미국에선 뉴욕"이라며 "저희가 뉴욕까진 어떻게든 (수주)해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스트래픽도 미국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미국 정부의 '바이 아메리카' 지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이 아메리카'는 연방정부 재정 투입 인프라 사업에 있어 의무적으로 미국산 제품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제조품 등은 미국내 제조 요건에 더해 총 부품 비용 중 미국산 비중이 55% 이상 돼야 한다.
김 이사는 "저희가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있어 노하우가 미국 시장에 많지 않기 때문에 전문적인 기관들이나 업체에 컨설팅을 요청해서 받고 있는데, 그런 게 어려운 면"이라며 "저희가 미국내 제조는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미국 업체를 통해 조립을 해서 최대한 기준을 맞추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예상할 때 '이 정도면 된 것 같다'라고 할 수 없으니 그런 게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이사는 미국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에게 미국 시장에 도전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한국도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지만,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이고 시장 자체도 크다 보니 주저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며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두드리다 보면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고, 실패를 하더라도 한국 기업들이 자꾸 와서 뭔가 시도를 하면 한국의 국격이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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