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없어도 ‘내 집 마련’ 도전... '줍줍' 무순위 청약 길잡이 [내돈내산]
분양가 높으면 무순위도 주의해야
편집자주
'내 돈으로 내 가족과 내가 잘 산다!' 금융·부동산부터 절약·절세까지... 복잡한 경제 쏙쏙 풀어드립니다.
내 집을 마련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청약통장부터 개설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신축 아파트 분양자를 선정하는 청약을 신청하려면 대개의 경우 청약통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청약통장을 일찍 만들고 꾸준히 납입해야 청약 당첨자로 선정되는 데 유리합니다. 예컨대 전용면적 40㎡ 이하 국민(공공)주택의 경우, 1순위 청약자 사이에 경쟁이 발생하면 납입 횟수가 많은 순서로 당첨자를 결정하거든요.
그렇다면 청약통장이 없거나 가입기간이 짧은 사람, 예치금이 적은 사람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가 없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무순위 청약’이라는 특별한 기회가 남아 있거든요. 특별공급이나 일반공급보다 참여 조건이나 절차도 간단한 편입니다. 내 집 마련에 나선 왕초보들을 위해 무순위 청약제도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무순위 청약이 뭐예요?
정부는 택지가 한정돼 있는 만큼, 까다로운 자격 기준을 마련해 아파트를 분양합니다. ‘생애최초 특별공급’은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자인 사람에게, ‘노부모 부양 특별공급’은 장인, 장모, 시부, 시모 등을 3년 이상 부양한 사람에게 청약 신청의 기회를 주는 식이죠. 민간 건설사가 건설하는 민영주택이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건설하는 공공주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신청자가 청약에 당첨이 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중에 부적격 당첨자로 적발돼 계약 기회를 잃기 때문이죠.
무순위 청약은 기존에 선정된 청약 당첨자가 당첨을 포기하거나 당첨이 취소된 주택(잔여 물량)의 주인을 다시 정하는 절차입니다. 예전에는 사업자가 잔여 물량 당첨자 선정 방법을 임의로 결정했는데요, 이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2019년 제도가 정비됐습니다. 투기과열지구의 잔여 물량에 한해 한국부동산원이 운영하는 청약홈(당시 아파트투유)을 통해 당첨자를 선정하도록 한 것이죠.
청약홈 자주 방문해 공고 확인해야
무순위 청약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사후접수 무순위 청약’은 청약홈이나 지역 광고 등에서 쉽게 접하는 유형입니다. 처음 청약을 시행했을 때 경쟁이 발생한 경우, 즉 공급 세대 수보다 신청자가 많거나 같은 상황에서 잔여 물량이 발생했을 때 공개 모집으로 입주자를 다시 선정합니다. 특히 투기과열지구와 청약과열지역 등 규제 지역에 공급되는 무순위 청약 아파트는 청약홈을 통해서만 입주자를 모집하기 때문에 청약홈을 자주 방문해 공고를 확인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청약통장이 없어도 청약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이죠. 추첨으로 당첨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가점을 고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공급 유형별로 신청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됩니다. 사후접수 무순위 청약은 당초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 구성원’만 신청할 수 있었는데요, 2023년 2월부터는 공고일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성년자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도록 문이 넓어졌습니다. 다만 공공주택은 여전히 ‘무주택 세대구성원 성년자’에게만 허용합니다. 민영주택은 다주택자도 청약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청약’입니다. 청약 당첨자가 불법 행위를 저질러서 계약이 취소된 잔여 물량의 입주자를 선정하는 방법이죠. 규제 지역에서 주택법이 정한 주택의 전매 제한 기간을 어긴 경우, 청약통장을 매매하는 등 공급 질서를 교란한 경우가 대표적 불법 행위입니다.
계약이 취소된 주택에 대한 청약도 청약통장에 가입할 필요 없이 유형별 신청 자격만 갖추면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계약이 취소된 청약자가 애초에 어떤 유형으로 청약에 당첨됐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일반공급이었다면 해당 주택이 건설되는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주에게 청약 자격이 주어집니다. 특별공급이었다면 원래 공급된 유형의 자격을 갖춘 사람만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죠.
이밖에 무순위 청약은 아니지만 사업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하는 ‘임의공급’ 역시 청약통장이 필요 없습니다. 임의공급은 최초·무순위 입주자 모집공고 당시 경쟁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공급세대 수>신청자)에 시행합니다. 미계약 물량이 아니라 ‘미분양 물량’이 공급 대상인 셈이죠. 사업자가 임의로 청약 자격을 정하고 청약 접수도 사업자의 홈페이지 등에서 받습니다.
올해 전국에서 분양한 아파트 215곳 가운데 67곳(31%)이 청약 경쟁률 0%대를 기록했는데 이들 상당수가 임의공급으로 처리될 전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청약 경쟁률이 1에도 못 미치는 아파트의 경우, 예비입주자도 없기 때문에 바로 임의공급에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분양가 높다면 무순위 청약은 신중을
무순위 청약은 흔히 ‘줍줍’이라고 불립니다. 추첨제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만큼, 아파트를 ‘주웠다’고 할 정도로 운이 좋다는 뜻도 담겨 있죠.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규제 지역이나 공공택지 등에서 공급되는 주택을 무순위 청약으로 분양받는다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복권에 당첨됐다’며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미 분양이 이뤄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나 계약이 취소된 사례라면 수년 전 분양가로 새집을 얻기도 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청약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한 물량도 무순위 청약이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업계에서는 그 이유를 분양가가 너무 높게 책정된 탓이라고 분석합니다. 분양가가 높게 책정된 만큼, 나중에 집값이 떨어질 경우 재산상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거지로서 인기가 떨어지는 지역의 무순위 청약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분양시장에서 수요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심해진 결과, 서울에서도 무순위 청약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 동대문구에서는 일반공급 물량 1,467가구 가운데 152가구의 무순위 청약이 진행된 사례(이문아이파크자이)도 있었습니다. 미계약이 속출하면서 무순위 청약을 거듭하는 아파트도 있습니다. 이를 ‘N차 무순위 청약’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청약 경쟁률 수십 대 1’이라는 건설사의 홍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꾸준한 관심이 관건
결국 무순위 청약 역시 청약에 성공하려면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공공택지에 분양하는 주택처럼 분양가에 이점이 있는 단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청약홈에서 ‘청약 알리미 서비스’를 신청해 관심 지역에서 공고되는 무순위 청약을 전달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주문경 한국부동산원 청약부장은 “계약이 이뤄진 지 한참 뒤에도 국토교통부에서 분양사무소로 현장 점검을 수시로 나가 위장 전입이나 청약통장 불법 매매 등을 계속 잡아낸다”며 “계약 취소 물량의 무순위 청약 공고가 언제 날지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다만 무순위 청약이 진행되는 아파트가 규제 지역에 공급된다면 당첨 이후의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사후접수 무순위·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청약 모두 당첨자로 선정되면 ‘명단이 당첨자로서 관리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죠. 투기과열지구와 청약과열지역에서 각각 10년, 7년간 재당첨이 제한된다는 뜻입니다. 당첨 후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향후 5년간 규제 지역에서는 1순위 청약 신청조차 불가능합니다. 청약 자격이 없는데 당첨된다면 이 역시 부적격 당첨자로 규정돼 최대 1년간 청약 신청이 불가능합니다.
주 부장은 ‘무순위 청약의 문턱이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다’면서도 이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일단 부적격 당첨자로 선정되면 향후에 불이익이 큽니다. 제약 기간 동안에는 청약과 관련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죠. 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식의 접근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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