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계약 갱신 거절 ‘실거주’ 사유…대법 “집주인이 증명해야” [민경진의 판례 읽기]
[법알못 판례 읽기]
실거주 목적을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한 임대인에게 실거주에 대한 증명 책임이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순히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표명한 것만으로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집주인이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는 집주인의 실거주를 둘러싼 임대·임차인 간 갈등에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1·2심 실거주 이유로 계약갱신 거부 ‘적법’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023년 12월 7일 집주인 A 씨가 세입자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 인도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은 임대인의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진정하다는 사정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원고의 갱신 거절이 적합하다고 본 잘못이 있다”는 취지로 이같이 선고했다.
A 씨는 2019년 1월 B 씨 부부에게 서울 서초구 소재 아파트를 보증금 6억3000만원에 같은 해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임대하는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A 씨의 남편은 임대차계약 만료일을 약 3개월 앞둔 2020년 12월 B 씨에게 임대차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코로나로 사업이 어려워져 금전적으로 매우 어렵고 자녀들을 제주 국제학교에 보낼 수도 없게 됐다”며 “자신이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를 급매로 팔고 가족 모두가 (이 사건 아파트에) 들어와서 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B 씨는 일단 수긍하는 답변을 했다가 이후 내용증명우편을 통해 “계약갱신을 청구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A 씨는 “임대차계약 만료 후 자신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할 계획”이라며 “갱신 청구를 거절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후로도 B 씨가 아파트 인도를 거부하자 A 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 제1항은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조문 1항의 8호는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직계비속 포함)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할 경우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정한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임대차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노부모를 서울로 모셔 와 다니던 병원에서 가까운 이 사건 아파트에서 거주하게 할 계획이었다”며 “임대차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전화 통화와 내용증명 등을 통해 피고에게 실거주 목적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실거주 요건 조항’이 정한 갱신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B 씨 측은 “원고는 원고 가족 또는 원고의 노부모가 이 사건 아파트에서 거주할 예정임을 증명하지 못하면서도 실거주 요건 조항을 악용해 거짓으로 부당하게 갱신 거절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또 “적법한 갱신 거절 기간 만료일 전까지는 이 사건 아파트에서 원고 가족이 실거주할 예정이라고만 이야기하다가 소송을 제기한 다음에야 원고의 노부모가 실거주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1·2심 재판부는 집주인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임대인이나 그 직계존속·비속이 해당 주택에 실제 거주할 의사가 없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드러난 경우가 아닌 한 통상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실거주 요건 조항 해당 사유를 원인으로 하는 임대인의 갱신 거절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대법 ‘실거주 의사’ 인정 기준 제시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임대인과 그 가족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며 “임대인이 실제 거주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인정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대인의 의사가 진정하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실거주 의사’ 인정 기준도 새롭게 제시했다. 대법원은 판결 과정에서 “임대인의 주거 상황, 사회적 환경, 임대인이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임대차계약 갱신 요구 거절 전후 임대인의 사정, 거주 의사와 배치·모순되는 언동의 유무, 이런 언동으로 인해 임차인의 신뢰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실제 거주자에 관해 말을 바꿨음에도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하급심에선 임대인에게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있는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임대인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가 임대인에게 있다는 점과 임대인에게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에 관한 법리를 처음 명시적으로 선고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임차인 권리 지나치게 보호한다는 지적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 제1항에 규정된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1회에 한해 사용할 수 있고, 임대료 인상률은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임차인 보호를 취지로 2020년 7월 시행됐다. 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을 부추기는 조항이란 지적도 잇따랐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49건이었던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접수는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시행된 2020년 154건, 이듬해 307건으로 급증했다. 조정에 실패한 경우 법정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계약갱신청구권 관련 첫 대법원 판결은 임대인 승소로 결정 났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22년 12월 1일 임대인 C 씨가 임차인 D 씨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소송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D 씨는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했고, 이후 C 씨는 종전 임대인으로부터 해당 주택을 양수했다. C 씨는 D 씨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했고, D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지만, 2심은 원고 패소로 결정했다.
대법원은 “주택을 양수한 임대인도 종전 임대인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갱신 거절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적법한 갱신 거절 기간인 임대차계약 종료 전 6개월에서 2개월 이내에 이뤄진 갱신 요구 거절은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임대주택 양수인의 갱신 거절권에 대해 하급심 판단이 엇갈린 가운데 나온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이 밖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둘러싼 분쟁은 ‘실거주 목적’ 등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허용한 거절 사유에 대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견해차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법원에서조차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이 나왔을 정도로 혼란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나오면서 법조계 안팎에선 계약갱신 청구를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 해결에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전셋값을 올려 받기 위한 ‘허위 실거주 목적’의 갱신 청구 거절이 어려워지는 만큼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과도한 임차인 보호라는 지적도 나온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 입장에선 임차인 퇴거 후 실제 입주하는 것이 아니고선 실거주 입증을 스스로 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소유주의 사용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는 판결”이라고 우려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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